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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들려주는 색다른 음악편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손열음 씨
지금까지는 제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어요. 해보고 싶은 곡, 해보고 싶은 형식, 해보고 싶은 장소 등. 그래서 후회 없어요. 20대가 탐색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그걸 바탕으로 진짜로 원하는 걸 선별하려고 해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독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나라면 내일(5.25)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앞두고 있는데 오늘 인터뷰를 하지는 않을 것 같고, 나라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5년 넘게 칼럼을 쓰지도 못했을 것 같고, 나라면 트로트 가수와 한 무대에 서는 공연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더 궁금했던 그녀, 바로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입니다. 국내에는 흔치 않은 30대 여성 스타 피아니스트, 그만큼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손열음 씨를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기획사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투어 중이에요. 한국에서는 부산, 통영, 대전, 서울에서 공연이 있는데, 그 전에 파리에서 공연이 있었어요. 파리 공연 뒤에 잠깐 독일 하노버 집에 들렀다 지난주에 한국에 왔어요.”
지난 4월만 해도 국내에서 다양한 무대에 섰고, 6월 10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손열음의 음.악.편.지> 두 번째 공연을 이어갑니다. 도대체 1년이면 몇 개 도시에서 몇 회 정도 연주를 하는 걸까요? 체력과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솔직히 내일 공연이 있으면 저는 전날 인터뷰는 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웃음).
“둘 다 나쁜 편은 아니에요(웃음). 체력은 타고난 게 있고, 집중력은 편차가 심해서 일할 때는 무섭게 하고, 쉴 때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글쎄요, 1년에 20~30개 도시에 가나... 연주는 50~60회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은 같은 레퍼토리로 이미 몇 개 도시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지금 좀 여유가 있는 거죠.”
협연을 많이 하니까 각 팀의 특징도 파악이 되겠네요.
“맞아요. 사실 독일이나 미국 악단과는 연주를 많이 해봤는데, 프랑스 팀은 처음이에요. 재밌는 게 유럽의 나라들은 다 붙어 있는데도 스타일이 정말 달라요. 독일 사람들이 깊이를 추구하는 면이 크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멋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조금씩 다른 게 신기하기도 하고, 연주자 입장에서 그런 부분을 맞추는 게 재밌기도 해요. 음악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맛이 있거든요.”
익숙한 것보다는 색다른 걸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재작년 출간한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바탕으로 꾸며지는 <손열음의 음.악.편.지> 시리즈 공연은 꽤 즐겁게 준비하시겠는데요?
“연주에서는 그런 것 같아요. 가장 재미없다고 느끼는 게 매번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 협주곡을 5번 연주해야 한다면 저도 모르게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죠. <손열음의 음.악.편.지> 시리즈 공연은 롯데문화재단에서 제안하셨는데, 우리나라는 클래식 시장이 오래 되지 않아서 저변이 넓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음악회가 유명 연주자나 인기곡 위주로 진행되는데, 이번 무대는 참신한 기획력과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자리라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6월 10일이 두 번째 공연인데 가수 박현빈 씨가 출연하더라고요. 클래식 연주자들이 국악이나 대중음악 하는 분들과 함께 공연하는 건 봤어도 트로트 가수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제 책에 트로트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롯데문화재단에서 제안하셨어요. 사실 트로트를 찾아듣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면이 있잖아요. 트로트가 한국 가곡보다는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왜냐면 과거 가곡은 서양음악에 한국 가사만 붙인 거라서 괴리가 있는 반면, 트로트는 한국 정서의 결정체니까. 박현빈 씨는 성악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음악회가 낯설지는 않을 것 같고, 클래식 음악도 불러달라고 요청은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물론 박현빈 씨의 히트곡도 함께 전해 드릴 예정이에요.”
클래식계가 보수적이잖아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라는 말이 나올 법 한데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상관하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클래식계가 누구를 칭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더 신경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좋아하실 텐데 아직 접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에요. 그리고 균형의 문제잖아요. 제가 이런 공연만 하는 게 아니고 정통 클래식 연주도 하니까.”
나름의 기준은 있다는 말씀이네요?
“지금까지는 제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어요. 해보고 싶은 곡, 해보고 싶은 형식, 해보고 싶은 장소 등. 그래서 후회 없어요. 20대가 탐색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그걸 바탕으로 진짜로 원하는 걸 선별하려고 해요.”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요?
“여러 갈래가 있는데, 일단 한국에서 고착화된 클래식 음악회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독일은 뛰어난 작곡가들의 조국인 만큼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이제는 정말 다양한 기획으로 관객들을 유도해요. 요즘은 즐길 거리가 너무 많으니까 좋다는 걸 잘 알려주지 못하면 멀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또 음악회에 가면 빈 무대에 사람이 나와서 말도 없이 인사만 하고 연주하고, 말도 없이 들어가잖아요. 관객들은 그 사이사이 불편하고.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전통인데도 절대 바뀌면 안 되는 형식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해요. 그리고 이른바 스타 연주자들의 프로그램을 보면 제가 생각할 때는 그야말로 본인 장기자랑 같아요. 곡들 간에는 그 어떤 내러티브도 없어요. 저처럼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한테는 좋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지 않는 일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클래식 연주회에는 서사가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물론 클래식 음악을 원래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한 공연도 제대로 하고 싶고요.”
이런 얘기를 들어도 그렇고, 손열음 씨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기존의 클래식 연주자들을 만났을 때와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그냥 음악 하는 청년 같아요(웃음). 세대가 바뀐 걸까요?
“엄청 좋은 말인데요(웃음). 제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해요. 그런데 세대가 바뀌었다는 말도 맞을 거예요. 사람들도 달라졌지만 생태계가 바뀌면서 클래식 음악계도 무척 치열해지고 저희도 생활형 인간이 되고 있거든요. 다들 스스로 짐 끌고 여기저기 연주하러 다녀요(웃음).”
수많은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수많은 도시에서 연주하고. 그 치열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만큼 많은 도전이 필요했다는 얘기네요. 늘 새로운 자리라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맞아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적응될 만하면 떠나야 하고, 피아노는 제 악기를 쓸 수도 없잖아요. 바이올린이나 성악 하는 분들은 반주자가 따라 다니지만, 저희는 항상 혼자고요. 하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걸 싫어했는데, 무대에서는 편안했어요. 그만큼 무대가 저한테는 특별한 공간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활동한 만큼 외로울 법도 한데, 지금은 하노버 집이 더 편한가요?
“한동안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일인데, 저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더 혼자 있고 싶어 해요. 그런 차원에서 하노버가 더 편하죠. 그곳에서 저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고, 서로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니까요. 조용하고, 모든 속도가 느리고, 제가 하고 싶은 게 다 안 돼서 좋고요(웃음). 한국에 오면 여러 가지로 편하지만, 모든 게 되니까 내가 원하는 게 바로바로 안 되면 화나잖아요. 그래서 조급해지는 면이 있어요. 하노버는 뭘 해도 다 안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피아니스트로서 열심히 달릴 시기잖아요. 마지막으로 각오를 들어볼까요?
“네, 꿈이 있으니까. 일단 콩쿠르는 저를 알리는 계기였고, 유럽 시장에 진입한 지는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서바이벌, 자리를 잘 잡는 게 저의 목표죠. 그리고 한국에서는 제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무언가 전해드리는 공연이나 일을 하고 싶어요. <대관령 국제 음악제> 같은 경우 정경화, 정명화 선생님을 도와서 부감독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 잘 조력하고 싶고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했는데, 음반이 출시되면 올해 안에 다시 음악회로 찾아뵙고 싶어요.”
‘열매를 맺음’이라는 뜻의 ‘열음’. 국어선생님인 어머니가 직접 지은 한글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손열음 씨와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름대로 다양하고 재밌는 열매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어떤 열매들을 맺어갈지 기대되고요. 6월 10일 <손열음의 음.악.편.지> 두 번째 공연이 끝나면 다시 하노버로 돌아간다는 손열음 씨.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세 번째, 네 번째 공연, 그리고 또 다른 정통 클래식 연주회로도 무대 위 손열음 씨를 만날 수 있겠죠. 그렇게 그녀의 음악편지는 앞으로도 반갑고 정겨운 얘기들로 채워질 것 같네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