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골목에서 만난 삶
『골목 바이 골목』
영화감독 김종관이 연출한 「최악의 하루」,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서촌 일대의 골목들을 이번에는 영상이 아닌 활자로 만난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책에서는 골목이 주인공이다.
좋은 문장이 떠오르고 생각이 논리의 흐름을 타고 커질 때도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내 몸 어디를 뒤적여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컵을 보고 컵 이상이 생각나지 않고 볼펜을 보고 볼펜 이상이 생각나지 않는다. 며칠을 편안하고 멍청하게 산 끝에 그런 위기가 오면 난 편한 운동화를 신고 걸을 곳을 찾는다. 돈과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조금 더 먼 곳을 찾기도 하지만, 아니라도 가까운 곳을 찾아본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곳은 작은 골목들이다. 서울에서 가장 천천히 시간이 흐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변해가는 장소들. 가지 않았던 곳과 가보았던 곳 전부. 아는 골목이라 하더라도 계절과 시간을 흘려보내며 조금씩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가던 길의 다른 시간과 계절에서, 익숙한 길 옆으로 난 샛길을 발견하는 것으로도 낯선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때문에 산책은 가끔 여행이 된다. 여행은 발견과 자극을 준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땀을 흘리며 걷노라면 이리저리 흩어졌다 모이는 생각의 흐름을 얻게 된다.
내가 산책하는 조용한 골목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다.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며 세상을 넓히는 시절로 떠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와 늙어가는 이들도 있다. 노인들은 어릴 때처럼 자신의 세상을 골목 안으로 축소시킨다. 볕이 드는 자리에 의자를 두고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산책자를 지켜본다. 노인과 골목을 뒤로하고 산책자인 나는 이 작은 여행에서 더 넓은 항로를 꿈꾼다. 누군가가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 타국 혹은 도시에서 아이와 노인을 만나고 그들을 기억한 채로 나의 골목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낯섦을 찾고 먼 곳에서 익숙함을 찾는 여행을 끝내고 언젠가 내 자리로 돌아온다면 볕이 드는 자리에 책상을 두고 여행에서 가져온 좋은 문장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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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를 연출하고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지은 김종관 감독, 그가 골목에서 만난 수많은 이야기 전작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통해 사랑에 대한 관능적인 글쓰기를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감독 김종관의 신작 『골목 바이 골목』을 그책에서 출간한다.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