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10주년 <쓰릴 미>, 신입생 피아니스트 이범재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쓰릴 미〉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범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연습하고 연주할 때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무척 우울했는데, 어느 순간 두 인물에 공감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이범재 피아니스트.jpg

 

뮤지컬 <쓰릴 미>, <인터뷰>, <더맨인더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머더 포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두 명에서 많게는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이들 무대에는 또 한 명의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죠. 바로 피아니스트인데요. 여느 뮤지컬과 달리 단 한 대의 피아노로 극을 이끌어가는 이들 작품에서 피아니스트는 극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결정짓는, 그야말로 연주자 이상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공연을 예매할 때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까지 확인하는 관객들이 많아졌다면 무대에서 그들이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그는 배우 못지않은 관심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초연과 재연에 이어 <쓰릴 미> 10주년 공연까지 참여하게 된 피아니스트 이범재 씨인데요. 새로 투입될 배우들과 <쓰릴 미> 연습을 끝내고 나온 이범재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피아니스트도 연습시간은 배우들과 비슷해요. 개인적인 연습 뒤에 드라마 들어가면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제가 복이 터졌죠(웃음). 보통 많아야 트리플 캐스팅 정도인데 <쓰릴 미>는 크로스 페어까지 하면 7팀이거든요. 그래서 매일매일 공연이 새로워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셨습니다. 보통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하면 클래식을 생각하게 되는데, 어떻게 뮤지컬에 참여하게 됐나요?

 

“제가 피아노를 좀 늦게 시작해서 제대하니까 27살이더라고요. 좀 더 대중적이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뮤지컬은 4년 전에 변희석 감독님 조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종합예술이잖아요.”

 

<쓰릴 미>를 예전에 관람한 적이 있나요? 쉬운 작품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여러 면에서 무척 힘든 작품이잖아요.

 

“작품은 못 봤는데 워낙 얘기를 많이 들어서 마치 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연하면서도 낯설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아직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연습하고 연주할 때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무척 우울했는데, 어느 순간 두 인물에 공감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겉으로는 동성애, 살인 등의 설정이 있지만, 그 안에 있는 두 인물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주를 할수록 감정 등을 더 잘 맞춰가는 것 같아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관객들에게 배우 못지않은 사랑을 받으셨잖아요. 특히 초연 때부터 참여했으니까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쓰릴 미>는 10주년에, 그 어느 작품보다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커서 부담이 많이 됐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뮤지컬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건 <라흐마니노프>가 처음인데 공연 끝나고 박수 쳐주실 때 밀도가 다르더라고요. 무척 감사했죠. <쓰릴 미>는 한 달 정도 됐는데 <라흐마니노프> 공연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회 차도 많지 않아서 아직 시험 보는 기분이에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가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틈이 있었는데, <쓰릴 미>는 틀이 확실하고, 감히 제가 바꿔칠 수 있는 부분도 없거든요. 게다가 10주년이라서 이미 보셨던 관객도 많고, 관객들도 저보다 선배인 셈이죠. 저 빼고는 배우, 제작진 모두 이미 해보셨던 분들이라 저 혼자 신입생이에요. 그래서 ‘내 해석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겁을 많이 먹었어요.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웃음).”

 

그러게요, <쓰릴 미>의 경우 관객들이 무서울 정도로 분석을 하시거든요. 혹 겁먹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전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셨는지요(웃음)?


“아직 이렇다 할 실수는 하지 않았는데, 요즘 땀이 너무 많아져서 걱정이에요. 2월 초부터 체질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힘들어서 그런지 평소에도 땀이 너무 나는 거예요. 음악감독님이 놀라실 정도예요. 연주하면서도 잘 미끄러지니까, 제가 미스 터치는 잘 안 내는 편인데 틀릴 때가 있어서 관객 분들도 지적을 하시는 것 같고. 방법이 수술밖에 없다는데 그럼 사흘은 연주를 못한다고 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뮤지컬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클래식 무대와는 많이 다를 텐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일단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요(웃음). 물론 피아노 솔로나 다른 악기와 협연할 때도 힘든 점이 많지만 뮤지컬은 작품 자체는 물론이고 그날그날 배우들의 감정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특히 <쓰릴 미>처럼 피아노 한 대로 갈 경우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극이 무너지니까 그 점이 가장 부담스럽죠. 아티스트로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보지는 않았는데, 뮤지컬에서는 같이 호흡해야 하니까 인내심도 배우게 됐어요. <라흐마니노프> 초연 때는 원 캐스트라서 44회를 연달아 연주했는데, 힘의 분배도 중요하더라고요. 피아노도 몸을 쓰는 악기이고, 미세한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소리가 달라지거든요. 공연이 있을 때는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고 해요.”

 

각 페어의 성향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계실 텐데, 지금까지 만난 페어는 어떤가요?


“페어마다 스타일이 너무 달라요. 모두 형인데, 일단 정상윤-에녹 페어는 불 같아요. 훅훅 오고가죠. 최재웅-김무열 페어는 굉장히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됐어요. 이창용-송원근 페어는 그냥 제 친구들 같고요. 페어마다 성향이 다른 만큼 피아노 한 대로 그 심리를 따라가는 묘미와 쾌감이 있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해요.”

 

배우만큼 피아니스트의 성향도 많이 다른가요?


“확연히 다르긴 해요. 연주자마다 특성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오)성민 씨는 굉장히 날렵하다면 저는 좀 더 무게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어딘가에서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 악기로 해요. 그런데 피아니스트는 주어진 악기로 연주해야 하죠. 그게 가장 힘든데, 한 피아노에서 두 명이 번갈아 연주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요즘 제가 땀이 많이 나니까 성민이가 연주하기 전에 ‘범재가 건반에 기름칠을 했다’고 닦느라 바쁘대요(웃음). 성민이 연주에서는 노련함이 많이 보여요. 제가 <라흐마니노프> 때 새 피아니스트를 데려왔더니 현장에서 사람들이 ‘새 손가락’이라고 했거든요. ‘그럼 나는 헌 손가락인가?’ 했는데(웃음), 지금은 제가 ‘새 손가락’이겠죠. 저도 빨리 익혀서 더 노련하게 치고 싶어요.”

 

<쓰릴 미> 배우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인데요. 굳이 비교하자면 이범재 씨는 ‘그’와 ‘나’ 중에 어느 쪽에 가깝나요(웃음)? 성격은 밝아 보이는데요.


“평소에는 조용히, 고요하게,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요. 오히려 우울한 감성도 있는 편이고요. 좀 억울한 게 저는 ‘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로 봐요. 저는 부드러운 칼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연애할 때는 다 퍼주는 편이에요. 뒤통수치지는 않고요(웃음).”

 

<라흐마니노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오신 데다 <쓰릴 미> 10주년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어깨가 상당히 무거울 텐데, 마지막으로 각오 한 말씀 들어 볼까요?


“상반기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아직 신입생인 만큼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되 잘 하고 싶어요. 오래 활동하신 분들의 조언을 많이 듣는데, 사실 뮤지컬 안에서 연주자로 살아남는다는 게 힘들거든요. 하지만 관객 분들의 큰 박수와 격려 때문에 더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언젠가는 음악감독을 하고 싶어요. 또 궁극적으로는 창작활동을 하고 싶기 때문에 제 앨범 작업도 하고 있고, 다음 달부터 매달 한 곡씩 피아노곡도 발표할 계획이에요. 최종 목표는 음악감독이지만, 아티스로서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어요.” 

 

<쓰릴 미>는 3인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가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거나 배우들의 심리를 따라가지 못하면 극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배우 누구나 <쓰릴 미>의 ‘그’와 ‘나’가 될 수 없듯이, 피아니스트로서 모두가 <쓰릴 미>무대 위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닌 것이겠죠.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 편의 공연을 만들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가 작품을 이해하고 배우들과 호흡하며 연주한다는 건 또 다른 ‘연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쓰릴 미>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범재 씨는 어떤가요? 그의 바람처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 그 어렵다는 <쓰릴 미> 무대에서도 ‘연기력’을 입증 받았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 뮤지컬 [쓰릴 미]
    • 부제:
    • 장르: 뮤지컬
    • 장소: 삼성동 백암아트홀
    • 등급: 15세이상 관람가 (19세이상 관람권장)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