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에는 페미니즘 책을 다시 보자
보이지 않는 큰 권력들에게 끝까지 투쟁하는 날
전무후무한 대국민통합을 이루기 전, 2016년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어른들과 보이지 않는 큰 권력들에게 끝까지 투쟁하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던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전한다.
출처_pixabay.com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다. 이를 맞이해 나온 기사들과 여러 글을 여러 해 동안 읽으며, 착잡하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보이지 않은 이들과의 연대감을 느낀다. 상반되는 이 감정들은 슬프게도 해가 갈수록 견고해져 간다. 어떤 해에는 3월 8일이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기사들이 적게 나오기도 했고, 어떤 해는 오히려 상처만 남은 글들을 목격했었다. 무엇보다 가장 씁쓸했던 건 읽는 즉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반응들. 나는 지인들과 차라리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농담마냥 주고받았다. 2016년 예스24 연말 결산에 따르면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2.6%로 두 배 이상 늘었고, 20대 여성의 구매 비중이 2015년 10.7%에서 2016년 26.0%로 상승했음에도 말이다.
다행히 2017년 여성의 날에는 많은, 그리고 훌륭한 글들을 많이 읽었다. 2016년 사회적 이슈로 페미니즘이 떠오르고, 항상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상흔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의지들이 보였다. 한쪽에서만 일어난 미동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변화하고 싶다고, 변화해야만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비명 혹은 울음 같기도 했지만, 단단했고 흔들림 없었다. 그 목소리들에 밀려 나와 여럿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들 목록을 써본다. 여전히 가슴을 아프게 하는 댓글을 읽으면서.
중고교 시절,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문학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나름 포지셔닝하고 있었던 나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한국문학에서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남성작가들이 도구화하여 글을 쓰는 일이 많을까? 굳이 이 소설의 맥락에서 이 장면이 필요할까. 혹은 어떤 시가 불러오는 상징에서의 불편함이 가끔 찾아왔다. 몇몇 친한 국어 선생님께서 여러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했지만, 기존 문단에서 칭송받는 어른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찝찝’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학교에 사서 선생님께서 부임해오셨다. 한강 소설가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셨던 깊은 내공의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갈리아의 딸들』을 꺼내주셨다.
소설은 가상 국가 이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패러디 기법을 사용한 이 페미니즘의 고전소설에서는 남녀역할이 싹 바뀌어있다. 여성은 움(wom), 남성은 맨움(manwom). 사뭇 호칭의 길이부터 다르지 않은가. 현실 세계에서는 남성은 맨(man), 여성은 우먼(woman). 우리의 사고세계를 지배하는 언어부터 바뀐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웃프다. 남성들에게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설. 소설이니까 가능한 세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웃픈 감정이 그대로인 걸 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나아진 건 없는 걸까.
매일 아침 살이 얼마나 쪘는지, 44 혹은 55 모델 사이즈에 집착하게 한다면 한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도서. 우리가 정말 원해서 ‘몸’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 우리나라에 조금 늦게 소개된 것 같아서 아쉽지만, 여전히 저자 나오미 울프의 물음은 유효하다.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미(美)에 관한 관심이 식은 적이 있었나. 이토록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업적, 사회적 배경을 두들기며, 우리의 몸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헤집는 저자의 실력을 보면 이 책이 28살에 나온 결과물이 정말 맞나 신기할 따름. 책 속에서 인용되고 있는 20세기 중반의 여혐 발언들이 아직도 쭉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말이다. “여성은 계속 아이를 낳는 것 말고는 달리 주인공이 될 수 없다.”(베티 프리단) 아, 여기에 하나 더 해졌다. “여성은 계속 아름다워야 한다.”
2015년 이 책 덕분에 다른 페미니즘 도서들이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았을까. 맨스플레인(mansplain)을 작렬하는 설명충에게 제목만으로도 턱, 하고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책. 좁은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 책에 실린 9편의 에세이들은 페미니즘의 넓은 범주(책 속에서 솔닛은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라고 명명한다.)를 고스란히 아우른다. 키득거리면서 웃을 수 있었던 첫 편과는 다르게 솔닛은 젠더와 인종, 그리고 경제, 사회, 환경에 관련된 모든 차별과 억압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권리가 곧 폭력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에서
이 글을 쓰던 중 대한민국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가 전(前) 대통령이 되었다. 전무후무한 대국민통합을 이루기 전, 2016년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어른들과 보이지 않는 큰 권력들에게 끝까지 투쟁하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던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전한다.
드물고 어려운 고귀한 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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