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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낙관,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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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의 음악은 묘한 도중(途中)의 지점에 있다. 가라앉되 꺼지지 않고, 떠오르되 증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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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앨범 <9와 숫자들>에서 주를 차지했던 신시사이저는 받쳐주는 느낌으로 남았다. 대신 기타 중심의 밴드 사운드에 때로 스트링이나(「엘리스의 섬」, 「전래동화」) 브라스 편곡(「검은 돌」, 「싱가포르」)으로 웅장함을 더하지만, 그런 장치가 금방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의 세계관을 표현함에 있어 악기의 운용은 절대적 역할이 아니다. 우선하는 내러티브 뒤에 그것을 보듬거나 빛내는 곡과 연주가 자리하고 있다.

 

밴드 특유의 ‘아이러니’가 여전하다. 멜로디가 상승하는 와중에 보컬의 톤은 끊기거나 하강하며, 슬픔과 염세를 말하면서 음색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담담하다. 그 역설을 강화하기 위해 밴드가 힘을 싣는 것은 가사를 전달하는 보컬 쪽이다. 전작 <보물섬>이 주로 개인적 일화 같은 가사에 목표 없이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상실감을 그려내었다면 <수렴과 발산>은 더 넓은 테마 아래 있다. 음반은 영문 제목처럼 ‘고독과 연대’, 즉 홀로일 때의 외로움부터(「전래동화」, 「사랑했던 경우엔」, 「평정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내민 손을 잡는 데서 오는 든든함까지 가닿는다(「안개도시」, 「엘리스의 섬」).

 

전작에 비해 거친 날것의 느낌은 줄어들었지만, 문학적 가사로 사적인 내용에 일반론을 펼쳐내는 장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9 (송재경)의 가사는 일상적인 단어들 사이 묘하게 문어체를 삽입하며 이질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뿜어낸다. 「검은 돌」의 ‘나의 별명은 낙화들의 침대, 나의 병명은 만성적인 후회’, ‘창밖의 계절은 벌써 축제와 사색의 대결’과 같은 가사가 그 예다. 별 것 없어 보이는 테마를 날카롭게, 또는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능도 「언니」, 「다른 수업」 등의 트랙에서 빛이 난다.

 

9와 숫자들의 음악은 묘한 도중(途中)의 지점에 있다. 가라앉되 꺼지지 않고, 떠오르되 증발하지 않는다. 이들의 세계관 속 ‘삶’은 언젠가 꺾여버릴, 아니 심지어 ‘이미 꺾여버린 것들’ (「드라이 플라워」)일지도 모를 어떤 것이다. 그러나 밴드는 그 비관 속에서 고독을 비난하지도, 연대를 회의하지도 않은 채 둘 모두의 역할을 긍정한다. 이 묘한 낙관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앨범의 동시대성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하고 또 착한, ‘칠흑 같은 어둠은 절망을 주지만 서로의 눈빛을 모아 함께 밝혀보자던 나의 그대여’ (「엘리스의 섬」)와 같은 가사가 ‘재미는 없을’지언정, 말 그대로의 따뜻함을 주지 않는가. 시기적으로, 여러모로 위로가 필요한 2016년이었기에 더더욱.


조진영(9512apha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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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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