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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우리 악기의 신기원

잠비나이 〈A Hermitage (은서; 隱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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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거친 흡입력으로 듣는 이를 포획하고, 귓전을 때리는 다양한 악기 속에서 실컷 구르다 보면 어느새 움 트는 에너지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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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는 2016년 한 해 동안 동서양을 오가며 그야말로 ‘열일’을 했다. 영국 최고의 록 페스티벌 글랜스톤 베리, 미국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프랑스의 헬페스트(Hellfest)까지 그들이 수놓은 음악 기행은 한국의 그 어떤 뮤지션보다 폭넓고 강력했다. 평단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영국 굴지의 음악 매거진 <더 콰이어터스> (The Quietus)는 이 앨범을 상반기 베스트앨범 15위에 올렸고 포스트록 밴드 익스플로젼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를 키워낸 미국의 유명한 인디 레이블 벨라 유니온(Bella Union)은 잠비나이를 새 식구로 맞아들였다.

 

연일 뜨거운 외국의 러브콜이 반증하듯 잠비나이의 음악은 해외에서도 이질감 없이 어울린다. 그들이 주조하는 음악적 흐름이 메탈, 포스트 록, 사이키델릭 록을 위시한 세계 대중음악의 골자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우위를 점하는 건 도구의 새로움이다. 청각을 유린하는 날카로운 사운드와 성긴 듯 얽힌 쫄깃한 멜로디를 완성하는 건 다름 아닌 한국의 악기다. 사운드의 중심에서 소리치는 해금과 거문고는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와는 다른 매력으로 만듦새의 층위를 높인다.

 

앨범은 첫 곡 「Wardrobe(벽장)」부터 거칠게 내달린다. 자칫하면 그 질료가 어쿠스틱임을 놓칠 정도로 날카로운 곡 안에는 다국적 악기가 질서 있게 엉켜있다. 거문고는 강하고 빠르게 베이스를 깔고 해금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섭게 이끈다. 일렉트릭 기타는 후방에서 음의 피치를 높여 신경을 긁고 전체적으로는 앰비언트 사운드가 낮게 깔리며 세심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그려낸다. 각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악기는 곡의 어둡고 무거운 질감을 살려내며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빠르게 휘젓다가 일순간 침잠하고, 같은 선율을 반복하며 아슬아슬하게 음을 쌓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식의 불친절함은 음악적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매력적인 서사에 불을 붙이는 건 한국 악기가 지닌 서정성이다. 듣는 이를 몰아지경까지 몰고 가는 「Deus benedicat tibi」의 파괴성은 분명 도입의 태평소와 해금의 울림에서 시작된다. <잠비나이> 이후 6년 만에 재녹음 된 「Naburak」 속 서슬 퍼런 감정의 기저에는 시종일관 빠르고 둔탁한 거문고가 놓여있다.

 

전작보다 날이 선 어두움을 곡 단위로 응축해 표현해냈다. 때문에 전작보다 덜 유기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더 생명력이 긴 매력적인 앨범이다. 시작부터 거친 흡입력으로 듣는 이를 포획하고, 귓전을 때리는 다양한 악기 속에서 실컷 구르다 보면 어느새 움 트는 에너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에너지는 언제나 예스럽게 표현되던 우리 악기의 신기원이다. 한국의 색과 소리를 바탕으로 일궈낸 독특한 새 장르의 탄생. 현재까지는 잠비나이가 독보적이다.


박수진(muzik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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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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