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강희는 <시스터 액트>를 보고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에 가득했던 착한, 그리고 행복한 기운이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끈 것일 테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십 년 남짓한 연기 생활 동안 악하고, 또 불행한 사연을 가진 역할에 천착해왔다. 그는 밝은 역할에 대한 갈증은 없느냐는 질문에 ‘배우는 나를 불러준 사람이 원하는 역할에 따를 뿐’이라고 답했지만, ‘저 이번에 인생 최초로 착한 역할 맡았잖아요.’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그에게 인생 최초의 착한 역할을 주문한 작품은 <쪽마루 아틀리에>(유림 작/연출) 다.

<쪽마루 아틀리에>는 박수근 화백, 그의 작품, 가족과 이웃에 대한 이야기다. 단출한 쪽마루를 아틀리에로 삼아 묵묵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작업을 이어갔던 박수근 화백을 그린다. 연출가는 박수근 화백에 대해 “어떤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위해 자신을 속박하고, 남을 희생시키기도 하는 것에 반해 그는 언제나 가족과 이웃을 작품보다도 우선으로 생각하는 작가였다”고 말한 바 있다. <쪽마루 아틀리에>는 박수근 화백의 이런 모습과 닮아있다. 박수근을 그리는 이 연극에서, 가장 말이 없는 인물 또한 박수근이다.

박수근 화백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연기하는 데 한계가 많았어요. 박수근이 분명히 주인공인데, 박수근이 이끌어가는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죠. 얌전히 하모니카를 부는 정도가 감정표현일 정도로요. 그래서 주인공이 오히려 존재감이 너무 없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했어요.

지켜보는 연기를 너무 잘하신 것 아닐까요? 존재감이 없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1장부터 5장까지 각 장을 이끌어가는 배우들 덕분일 거예요. 본인만 돋보이려고 이기적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아무도 없거든요.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착하게, 착한 사람들을 연기하는 게 <쪽마루 아틀리에>라는 생각을 해요. 4장이 특히 그래요. 아무런 사건도 없이 그저 마음과 마음, 착함과 착함이 만나고 부대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잖아요.

박수근 화백을 연기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요?

공연팀 모두가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으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왔어요. 박완서 선생님께서 쓰신 『나목』을 다 함께 읽었고, 박수근 화백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같이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내의 일기>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연기를 위해서 박수근 화백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참 많이 봤어요. 젊었을 때 정말 미남이시더라고요. 그런데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한, 세상 물정을 모를 것 같은 구석이 있어요. 웃음이 많고요.

지난 6월 <쪽마루 아틀리에> 시범공연부터 12월 본 공연까지 긴 시간 참여하면서 작품에 배우로서 의견을 많이 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연출님이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어서, 배우들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대본이 지금의 5배 정도 분량이었어요. 리딩을 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웃음) 저희는 각 장면에 대한 연출님의 의도도 고민하면서, 서로 의견을 내어 조금씩 바꾸어나갔어요. 예를 들면, 2장에서 폭풍 장면이 원래 글로 자세하게 표현된 부분이었는데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눈 끝에 지금처럼 배우들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장면으로 바뀌었죠.

박수근 화백이 붓을 소중히 다루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박수근 화백을 제일 잘 나타내는 장면 같았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붓을 내팽개치는 아들에게 소리치지 않고, 그저 소중한 붓을 곱게 주워 담을 뿐인 분이죠. 요즘 공연을 하면서 이제야 깨달은 게 있어요. 그렇게 아끼는 붓보다 소중한 게 아들이고, 가족이라 그들에게 큰소리 한번 친 적이 없는 분이었다는 점이요.

실제로 박수근 화백의 따님이 공연을 보러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 작품에 딸 인숙 역할을 하는 배우가 있잖아요. 그 배우를 정말 신기하게 바라보시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씀하실 때도 저를 계속 보고 계시는 게 느껴졌어요.

저희한테는 ‘배우가 아버지와 정말 비슷해서 놀랐다’고 하셨어요.

정말요? 처음에는 이 역할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어요. ‘애비가 신인 줄 아느냐’라는 대사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정말 신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가 작전 없이 연기하기로 했죠. 따님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셨다니까 찡하네요.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쪽마루 아틀리에>가 만 6세 이상부터 볼 수 있어서 아쉽겠어요.

제가 작년에 <달>(고순덕 작, 토니그래함 연출)이라는 베이비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저희 아들이 볼 수 있는 공연에 출연하고 싶어서요.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입 벌리고 침 흘리면서 정신없이 보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더라고요.

<쪽마루 아틀리에>가 3년 후에도 공연되어서 아드님도 꼭 보면 좋겠어요.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웃음) 이 작품이 가족극이다보니, 어린이 관객이 많은 날은 연기하면서 더 재미있어요. 저희 작품의 조명 특성상 관객석 반응이 꽤 잘 보이거든요. 어린이 관객들은 배우들이 ‘저기를 좀 봐’ 하면서 어딘가 가리키면 고개가 손가락 끝을 따라 돌아가고, 놀라게 하면 놀라고, 작품을 따라 바쁜 것이 눈에 보여서 좋아요.

이 기사를 보실 분들에게 공연 <쪽마루 아틀리에>를 소개해주세요.

박수근 화백의 작품 중에 <나목>이라고 있잖아요. 저는 이 작품이 박수근 그 자체 같아요. 남들은 모두 잎이 다 떨어져 벌거벗었다고 하는 나무를 두고, 박수근 화백은 새싹이 돋을 나무라고 말해요. 세상에서 희망을 찾고, 그림에도 희망을 담았던 분이죠. <쪽마루 아틀리에>를 본 관객분들은 이 희망을 얻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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