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브로드웨이 제작자가 되다! - 뮤지컬 <구텐버그>
꿈꾸는 사람들의 열기와 호흡을 담았다
진정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빛나는 눈빛. 뮤지컬 <구텐버그>는 그 반짝임으로 기억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
무대 위의 두 남자는 한껏 들떠있다. 빨라진 호흡과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눈을 빛내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워워, 침착하게, 조금만 천천히’ 서로를 다독이는 몸짓을 보면서 깨닫는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가슴을 가장 뛰게 만드는 것, 차오르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 있을까. 그렇다. 이건 꿈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 <구텐버그>에서 버드와 더그의 꿈은 시험대에 오른다. 무명작가인 두 사람은 서로를 천재로 치켜세우며 필생의 역작을 완성해냈지만, 아직까지 세상은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 제작자를 찾아야 하는 이들은 백커스 오디션(Backer’s audition)을 준비한다. 제작자들을 초청해 놓고 리딩 공연으로 자신들의 작품-‘구텐버르’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보여주려면 전문 프로듀서와 배우를 섭외해야 하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버드와 더그는 단 둘이서 20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도전을 시작한다.
화려한 무대장치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단출한 공간. 버드와 더그는 각각의 배역이 적힌 모자와 한정된 소품만으로 자신들의 가능성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두 사람은 묘기에 가까운 ‘모자 바꿔 쓰기’를 선보이며 열정적으로 연기한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건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자신들이 왜 구텐버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각각의 음악과 서사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성심껏 설명한다.
버드와 더그의 작품 ‘구텐버그’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구텐베르크로 알려진 인쇄기 발명가다. 두 사람은 습작을 쓰고 폐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구텐버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들 사이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객들은 브로드웨이 제작자가 되어 ‘뮤지컬 구텐버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과연 구텐버그는 인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할까’라는 궁금증만큼이나 ‘버드와 더그의 이야기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도 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버드와 더그는 당신의 러브콜을 기다린다.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 <구텐버그>
뮤지컬 <구텐버그>는 유쾌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휑한 무대 위에서 맨 몸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의 몸짓이 웃음을 유발하고,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그들 가슴의 열기가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바람을 세상 앞에 꺼내놓을 때의 긴장과 흥분, 그 기운에 도취된 두 남자를 바라보는 일 또한 즐겁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매력적인 네 배우-조형균, 김신의, 정문성, 정동화가 연기한다니, 뮤지컬 <구텐버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2006년 ‘뉴욕 뮤지컬 극장 페스티벌’에서 첫 선을 보인 뮤지컬 <구텐버그>는 원작자 스캇 브라운과 앤서니 킹이 더그와 버드를 연기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3년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되었으며, 이듬해 수현재 씨어터로 자리를 옮겨 재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구텐버그>는 처음 그 자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으로 돌아와 관객들과 만난다.
더그와 버드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은 변함없지만 작품은 다시 한 번 변화를 꾀했다. 가장 핫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중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연출과 음악에 있어서도 한 단계 도약했다. “라이선스라는 느낌보다는 창작 작품을 새로 만드는 것처럼 많은 부분을 바꿨다.”는 김동연 연출과 “반 창작이라고 할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원작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저희 나름대로의 재치를 발휘해봤다.”는 양주인 음악감독의 말 속에서 달라진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1월 22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