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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더 언더독>으로 대학로 무대 서는 배우 김준현
진돗개로 변신할 김준현 씨
제 꿈은 그냥 배우예요. 진솔하고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배우. 그 꿈을 간직하되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거예요.
인터뷰를 위해 대학로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공연을 취재하다 보니 기자에게는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익숙한 대학로인데, 이 배우에게는 대학로가 낯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보다 더 오래 공연과 인연을 맺은 베테랑 배우인데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아이다>의 라다메스, <잭더리퍼>의 앤더슨,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모차르트!>의 콜로레도 등 유독 대극장 라이선스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온 배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선택한 작품은 12월 유니플렉스에서 공연될 창작뮤지컬 <더 언더독>. 덕분에 기자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준현 씨를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됐군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는 건 16년 만인 것 같아요. 대학로에 오면 뭔가 자유로워지죠. 소극장 공연을 자주 접하지는 못하지만, 충격도 받고 자극을 받는 공연도 많아요. 이번 기회에 대학로와 좀 친해지려고 해요.”
제작진이 약 4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선보이는 창작뮤지컬 <더 언더독>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인간에게 버려진 유기견들이 보호소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입니다.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에 소재가 색다르고 개성 있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개막 3주 전이지만 아직 정신없어요. 좀 더 좋은 공연을 만들려다 보니까 계속해서 수정작업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연습하면서 배우들이 느끼는 게 중요한데 다들 ‘잘 될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등장견물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캐릭터가 모두 ‘개’입니다.
“맞아요. 진돗개, 마르티스, 세퍼트, 골든리드리버, 달마시안, 푸들 등이 나오는데 종마다 특성에 맞게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마르티스 인형이 소품으로 사용되는데, 배우들이 평소에도 안고 있어요. 밥을 먹거나 술을 한잔 할 때도 항상 데리고 다니거든요. 서로 안고 소주 한잔 마시는 거죠. 요즘은 동네 돌아다니는 개들도 그냥 지나치기 못하겠더라고요.”
반려동물은 키우세요?
“예전에 코카스파니엘을 오랫동안 키웠는데 병에 걸려서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안락사 시켰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부터는 못 키우겠어요. “
워낙 강하고 남성다운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셨잖아요. <더 언더독>에서도 진돗개를 맡으셨는데 그 일환인가요?
“포스터에 보면 제 얼굴이 있고 진돗개가 있는데 좀 순둥이예요(웃음). 강한 이미지도 있고, 부드럽고 연민을 자아내는 역할이기도 하죠. 사실 지금껏 연기했던 인물들도 강한 면이 더 눈에 띠였을 뿐이지 강한 자, 악한 인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죠. 그걸 생각하면 불쌍한 인간들이고. 콜로레도가 모차르트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솔로를 부를 때 자아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라다메스라고 하면 장군의 이미지만 있는데 한 여자를 위해 죽음을 같이 맞이하는 그런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고요. 약한 면을 부정하려고 하니까 더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지 어쩌면 더 약한 사람들이죠. 진짜 강한 사람은 강하게 표현하지 않거든요.”
<더 언더독>의 경우 김준현 씨를 비롯해서 배우진을 보니 공연장이 쩌렁쩌렁하겠습니다.
“(김)법래 형도 있고, 제작진이 유니플렉스를 다 날리려고 오는 사람들 같다고(웃음). 컴퍼니 대표님이 대학로 중극장에서 대극장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캐스팅을 했다고 해요. 무대 역시 중극장을 꽉 채우는 세트로 대극장의 축소판처럼 만들 예정이고요. 색다른 시도죠.”
2005년 일본 극단 사계에서 활동할 때부터 2010년 한국 무대로 돌아온 이후에도 줄곧 대극장 공연에만 참여하셔서 김준현 씨 하면 ‘대극장, 라이선스’로 고정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인연이 계속 그렇게 닿았을 뿐 대극장 작품만 고집한 건 아니었어요. 사실 대극장, 소극장 배우를 분류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극장 규모에 따라 연기에 있어서도 좀 다른 면이 있지만 그래서 다 공부가 되니까요. 대극장만을 고집하는 건 배우로서도 마이너스죠. 연기 폭도 좁아지고. 예전에는 영상매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불편해 했어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준비되지 않은 나를 찍는다는 생각에 불편했거든요. 그런데 배우라면 어떤 장르든 넘나들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메커니즘이 다를 뿐 거의 비슷해지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데는 익숙해지셨나요?
“좀 편해진 것 같아요. 일본에 있다 한국에 왔을 때 초반에는 아쉬운 것들이 많았어요. 그 아쉬운 부분을 찾는 데 몇 년 걸렸죠. 지금은 좀 많이 찾은 것 같기고 하고, 그래서 도전하고 싶은 것도 있고. 사실 배우는 자신감이 없으면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자만심이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래 남자배우들을 만나면 ‘오빠’에서 ‘삼촌’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대한 씁쓸함도 있던데요.
“그게 배우의 인생이죠. 주조연을 하다 단역을 하다 사라질 수도 있고, 사라졌다 나중에 할아버지로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그런데 오빠에서 삼촌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삼촌이 됐을 때 오빠를 보며 부러워하는 건 욕심인 것 같아요.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현실에 맞춰 사는 게 최고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요. 조연이 됐는데도 자기가 주인공인 것 마냥 연기하는 사람들도 이기적인 거잖아요.”
그래도 나이에 맞는, 지나가면 다시 하기 힘든 역할들이 있잖아요. 이 캐릭터는 몇 년 안에 꼭 해봤으면 좋겠다는 배역이 있을까요? 지저스도 한국 무대에서는 안 보여주셨잖아요.
“지저스는 예전에 이지나 연출님과 독대를 했는데 ‘준현 씨는 유다지!’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글쎄요, 생각한 게 있었는데 지금 떠오르지 않네요. <오페라의 유령>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팬텀은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일본에서 연습만 하다 무대에는 못 섰거든요. 팬텀은 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배우로서 많은 변화와 도전이 있었던 지난 10년이었는데, 앞으로 10년은 무엇을 향해 달리실 건가요?
“저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체 게바라의 명언을 좋아하는데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꿈은 간직하고 살자!’ 어릴 때 좌우명과 같거든요. ‘현실에 충실하면 미래는 온다’ 제 꿈은 그냥 배우예요. 진솔하고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배우. 그 꿈을 간직하되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거예요. 무언가를 갈망하고 쫓으며 살지도 않았고요. 물론 1~2년 뒤에 배우로서의 삶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배우 김준현을 찾지 않으면 제 인생은 끝나는 거니까. 그런데 그걸 생각하면 불안해서 지금을 어떻게 살겠어요. 지금 잘하면 작품은 또 이어지겠죠.”
그럼 질문을 바꿔보죠. 올해만 해도 쉬지 않고 줄곧 무대에 서고 계신데, <더 언더독>이 끝난 이후 다른 작품까지 한 달간의 달콤한 휴가가 생긴다면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여행을 하고 싶은데, 외국에 혼자 가는 건 좀 용기가 없어요. 길게 가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시간이 안 맞고. 언어도 문제고. 그래서 홈쇼핑의 영어강좌를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웃음).”
역시 사람에게는 의외의 모습이 있죠? 무대에서 이른바 ‘상남자’ 역할만 맡았던 김준현 씨가 외국을 혼자 여행할 용기는 없다고 하네요(웃음). 매니저가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하던데, <드림걸즈> 때 슈트 입은 모습도 잘 어울렸으니 ‘실장님’처럼 달콤한 캐릭터도 잘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일단 진돗개로 변신할 김준현 씨부터 만나야죠.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는 창작뮤지컬 <더 언더독>은 12월 2일부터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됩니다. 대학로에서 만나는 김준현 씨의 색다른 모습과 참신한 소재의 작품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해 보시죠.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