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비슷한 그룹이 많아져 위기를 느꼈을 법에도 흐릿하고 옅은 타이틀곡으로 일관한다. 「Luv」 식의 아련한 곡들은 이제 에이핑크의 장기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신곡을 써준 작곡가 블랙아이드필승 또한 비슷한 느낌을 고수하는데 우선을 두었다. 정규 3집에서도 진취가 아닌 안정과 수비를 택한 에이핑크다.
변화에 대한 논쟁 속에서, 늘 같은 모습으로 걸어온 에이핑크에게 다른 길을 가라는 조언은 어울리지 않을 테다. 은은한 곡이 팀의 청순한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더욱 효과적이기도 하다. 「내가 설렐 수 있게」는 그러한 장점을 알고 있듯 아주 나긋하게 노래한다. 다른 걸 그룹이 빠른 곡을 통해 활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들은 느릿하고 여유로운 곡으로 우아함을 내민다.
발라드가 많았던 지난 앨범과 달리 댄스곡의 비중이 늘어났다. 때문에 음반은 기존의 사근사근한 스타일과 새로움을 주고자 하는 노래들이 서로 혼재하여 놓여있다. 이 과정에서 「Boom pow love」 같은 씩씩함이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Catch me」처럼 곡이 홀로 튀는 경우도 나타난다. 긍정적인 부분은 낯선 선율과 리듬을, 부드러운 가창으로 조절하며 다시 에이핑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순간이다. 중심보컬 정은지나 윤보미의 역할이 크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음색이 어떤 곡에서든 달콤함을 만들어낸다. 「Oh yes」와 「Drummer boy」는 보컬의 느낌이 좋은 감상으로 이어지게 한 예다.
「네가 손짓해주면」 역시 설렘은 간직한 채 밴드 반주로 규모를 키운다. 노랫말과 멜로디에서는 소녀의 세계임을 알리면서 사운드로 새로움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시도가 여리기만 했던 이들의 음악에 작은 변동을 가하고 있다. 변화가 미비해 몇몇에게는 여전히 정체됨으로 느껴지거나 얌전하고 아른거리는 노래가 단조롭게 다가올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한 구간의 테이프를 이렇게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우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급작스런 변화로 파급력이 식었던 이전 걸그룹들을 생각해보면, 이 팀은 힘이 사라질 때까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며 한계에 접어들고자 한다. 여전히 치열한 소녀들의 세상에서, 그 시대의 문을 연 에이핑크는 지금 제 방식대로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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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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