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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의 빛과 그림자

프롬 〈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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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은 점차 사운드와 멜로디로 이루어지는 '첫인상의 영역'에서 해석과 생각을 요하는 '감상의 영역'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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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의 앨범에는 저마다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곡들이 하나씩 있다. <Arrival>같은 경우에는 「도착」이 그러했고, <Moonbow>에서는 「후유증」이 그랬다. 이번 앨범에서는 「서로의 조각」(정확하게 말하자면 기리보이와 함께한 버전)이 그렇다. 애초에 프롬 자신도 앨범 보도 자료에 붙여 작가 노트의 형식으로 의도를 명시하곤 하는데 세세하게 따져보면 앨범의 모든 수록곡들이 그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하나의 주제에 과하게 집착했다면 앨범 전체가 단조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각 앨범에 해석의 트리거가 되는 곡들을 심어둠으로써 듣는 사람들이 그 주제의식을 염두에 두도록 유도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음반이 일관적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일조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소위 '영리한 전략'이라고 칭하고 싶지는 않은데, 각 앨범의 주제의식들이 어떤 장치라기 보단 이유진(프롬의 본명)이라는 순수한 개인의 생각과 소회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프롬의 이러한 사적 스토리텔링은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데 「좋아해」나 「마중가는 길」처럼 서사와 곡의 연계가 강한 곡도 있지만 「이만한게 다행」처럼 멜로디가 가사가 유리되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의 연장선처럼 <Erica>의 모든 음악이 가사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반짝이던 안녕」은 평범한 프롬의 발라드로 들리고, 「Blue night」역시 밋밋하다. 중저음 보이스로 가사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당신의 계절은 무엇입니까」 정도가 제 역할을 다하며 선방한다.

 

「서로의 조각 (with 기리보이)」가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이런 상대적 요인도 있는 듯하다. 리버브를 먹여 메아리치는 기타 사운드에 기리보이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은 <Erica>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이다. 고독한 개인을 상징하는 중저음의 남녀와 서늘한 기타소리, 그리고 듀엣의 합창이 의미하는 사람들의 관계라는 주제의식이 하나의 노래에 명확하게 담겨있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무심하게 노래하다가 한숨을 쉬듯 툭 떨구는 보컬의 운용까지 듣는 재미를 보장하는 트랙이다. 앨범 말미에 어쿠스틱 솔로버전도 수록되어 있으나 두 사람의 절묘한 호흡으로 인해 듀엣으로 부른 버전이 상징적인 의미도 훨씬 깊다. 프롬은 곡을 쓰는 시점부터 남성 보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는데 전에 없던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음악가로서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Erica>는 말하자면 프롬의 빛과 그림자가 조금씩 담겨 있는 앨범이다. <Arrival> 당시만 해도 프롬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독특한 포크 팝 사운드가 먼저 뇌리에 남는 아티스트였지만 점차적으로 그 목소리와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찾아왔고 그 결과 대체적으로 프롬의 곡들은 예상 가능한 범주가 생겼다. 반면에 「서로의 조각」은 변화의 여지를 남겨주는 의미 있는 넘버이자 전체적인 커리어를 통틀어도 기억에 남을 노래이다. 더불어 가사는 여전히 좋고 개인의 사유를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인드도 이번 앨범에서 빛을 발한다. 프롬은 점차 사운드와 멜로디로 이루어지는 '첫인상의 영역'에서 해석과 생각을 요하는 '감상의 영역'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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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프롬 (Fromm) - 미니앨범 1집 : 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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