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가인의 솔로 이력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그는 시류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선명한 콘셉트와 내러티브를 지향했다. 자연스럽게 그룹 시절부터 이어진 강렬한 비주얼, 퍼포먼스가 더욱 부각됐다. 음악적 조력자의 면면도 화려했다. 이민수, 김이나 콤비를 비롯, 윤상과 윤종신, 정석원 등 베테랑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의 정교한 프로듀싱은 가수 본인의 준수한 역량과 시너지를 발휘하며 솔로 가수 가인을 궤도에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End Again>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커리어 사상 첫 정규 작에서 과거의 성공 문법을 상당수 폐기했다. 새로운 페르소나를 향한 열망은 줄이고 순수와 낭만이란 큰 카테고리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인다. 매번 분주하게 가면을 바꿔 쓰더니, 이제는 천연덕스럽게 민낯을 드러낸 모양새다. 「Carrie (The first day)」와 「Carnival (The last day)」로 구성한 스토리도 전작 <Hawwah>에 비하면 한결 산뜻하다.
뜻밖의 재미를 연출한 겉모양과 달리 음악의 첫인상은 다소 싱겁다. 무엇보다 이민수-김이나의 콤비 플레이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타이틀곡 「Carnival (The last day)」은 전개와 악기 사용, 심지어 일부 프레이즈까지 아이유의 「분홍신」과 닮아있다. 여기에 벤딩과 하이노트의 발성 등 보컬 운용마저 아이유가 떠오르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로 인해 관악 세션과 퍼커션을 탄력 있게 운영한 수준급의 편곡, 끝(죽음)을 ‘카니발’에 빗댄 신선함과 매끈한 선율을 고루 갖췄음에도 가인만의 매력은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
애매한 전반부와 달리 후반 두 트랙의 스탠스는 분명하다. 갈래는 다르지만, 「A tempo」와 「두 여자」 등에서 보여줬던 가인 표 대형 편성 발라드의 연장선이다. 변성 화음을 활용해 물 흐르듯 유려한 전환을 연출한 「반딧불이의 숲」은 단연 음반의 하이라이트. 고상지가 선사한 노래는 가인의 날렵한 음색과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아름다운 소리 풍경을 만들었다.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여러 소리 요소를 블렌딩한 「비밀」 역시 근사하다.
콘셉트의 측면에서 음반은 답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치밀한 스토리텔링과 이미지메이킹 없이도 그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절반의 성취에 그친다. <End Again>은 가수의 능력과 그만의 개성을 명쾌하게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뮤지션 가인의 야심찬 연작 프로젝트가 제대로 빛을 보기 위해선 이어질 속편 <Begin Again>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관련태그: 가인, End Again, Begin Agian, 솔로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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