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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뮤지컬 <페스트>

객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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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 창작뮤지컬 <페스트>는 6년의 준비기간을 끝내고 지난 7월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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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무대에 초연되는 뮤지컬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작품은 바로 <페스트>가 아닐까 한다.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미래 첨단 도시에서 수백 년 전 창궐했던 페스트가 발병하며 사회가 겪는 혼란과 그 혼란에 직면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았다. 이 작품의 시점은 미래지만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하지만 뮤지컬 <페스트>에 대중적인 관심이 모아진 건 알베르 카뮈의 소설보다 넘버로 사용된 서태지의 노래 때문일 터. 국내에서는 카뮈보다 서태지라는 아이콘이 갖는 힘이 더 큰 것이다. 결국 ‘서태지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 창작뮤지컬 <페스트>는 6년의 준비기간을 끝내고 지난 7월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기자의 생각과 객석에서 들었던, 또는 관객들이 나눴을 법한 대화를 토대로 뮤지컬 <페스트>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1층 8열 14번 : 기대를 너무 했나 봐.

 

1층 8열 15번 : 나는 생각보다 괜찮던데. 그동안 <페스트> 관계자와 배우를 만나며 취재를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인가. 그게 아무리 카뮈고, 서태지라 하더라도 말이야.    

 

1층 8열 14번 : 하지만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 다름 아니라 서태지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그래서 ‘서태지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까지 사용했으면 그 자신감을 입증해 보였어야지. 창작 초연이니까, 지금까지 없던 방식의 작품이니까 등의 변명은 6년을 기다려온 서태지 팬과 뮤지컬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1층 8열 15번 : 최근 뮤지컬을 관람한 서태지 씨는 ‘매우 감동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페스트>가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는데. 서태지 팬들 입장에서도 넘버 자체는 잘 나왔다고 생각할 것 같아.

 

1층 8열 14번 : 넘버는 좋았어. 록에서 댄스, 발라드는 물론이고 클래식하게 편곡된 노래들은 원곡의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색다른 느낌으로 멋지게 편곡됐더라고. ‘대중가요면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서태지 노래가 이렇게 뮤지컬 작품에도 녹아들 수 있구나!’ 감탄했어. 김성수 음악감독이 자신감을 보일만 해. 특히 1막 마지막 무렵 코타르가 부르는 ‘시대유감’은 어쩌면 뮤지컬 <페스트>에서 가장 돋보였던 넘버가 아닐까 싶어. 지금껏 뮤지컬 무대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멜로디 라인과 창법이잖아.

 

1층 8열 15번 : 그런데 원곡과의 비교는 서태지 골수팬들만 가능하지 않을까?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은 물론이고 솔로시절 음악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는 마니아들 말이야. 나도 ‘너에게’, ‘마지막 축제’ 정도 밖에 모르겠던걸. 게다가 중심인물들의 넘버가 각각 2~3곡에 그치고 대부분 합창이다 보니 가사 전달력이 떨어져서 장면에 맞는 노래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

 

1층 8열 14번 : 난 서태지 팬이라 시대정신과 저항정신이 깃든 그의 노래가 한 편의 뮤지컬에 꽤 자연스레 녹아든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 그런데 스토리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고 봐. 대중적이지 않은 가사이기에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래서 카뮈의 ‘페스트’가 미래 사회로 이동했는데, 시대배경과 상관없이 꼭 갖췄어야 할 스토리의 개연성이 문제였다고. 의사 리유는 왜 시스템에 저항하고 외길을 걷는지, 기자 랑베르는 어째서 변화를 꾀하는지, 인물과 사건의 갈등을 충분히 끓여냈으면 좋았을 텐데 장면마다 설익은 느낌이야.

 

1층 8열 15번 : 주크박스 뮤지컬의 일반적인 한계라고 생각해. 뮤지컬에서는 노랫말이 대사인데, 대본을 쓰고 거기에 맞는 노래를 만드는 것과 달리 주크박스 뮤지컬은 원래 있는 노래에 이야기를 맞춰야 하니까 스토리 자체에 대한 기대는 낮아지더라고. 익숙한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빈약한 스토리를 대신하는데, <페스트>는 서태지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넘버의 익숙함마저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아. 지금껏 사랑받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넘버는 굳이 음반을 찾아 듣지 않더라도 타의적으로 수없이 듣게 돼서 나도 모르게 노래를 알고 있는 것들이잖아. 그런 차원에서 꽤 대중적인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노래가 극히 적었다는 점은 많이 아쉬워.

 

1층 8열 14번 : 솔로 시절 노래가 많긴 하더라. 그런데 주요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대부분 30대에서 40대 초반이잖아. 아니, 이번 작품에서는 전체적으로 40대 중반을 넘긴 배우를 찾기 힘들지. 캐스팅 자체에서도 ‘서태지’라는 아이콘이 영향을 미쳤던 세대를 고려하지 않았나 싶어. 그만큼 서태지는 대중적이면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면이 있으니까. 그런가하면 대형 뮤지컬의 경우 의상이나 무대 장치도 볼거리잖아. 회전하는 대형 철물 구조물이나 영상, 랑베르가 기사를 쓰거나 코타르가 화상회의 하는 모습, 격리 수용소나 병원 등의 장면에서는 미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던데. 앙상블의 의상이나 몇몇 소품에서도 말이야.

 

1층 8열 15번 : 난 어째 스토리보다 실망한 부분이 <페스트>의 무대야. 물론 공간과 시간에 제약이 많은 무대에서 미래 사회를 구현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관객의 상상을 초월하는 연출이 한두 꼭지는 나오길 기대했어. 우리가 SF영화를 볼 때 가장 재밌는 요소가 ‘아, 미래는 저런 모습이겠구나!’라며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되는 부분인데, <페스트>의 미래 사회는 너무 시시하다고 할까. ‘저 무대 장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까, 어떻게 저런 장면을 연출했을까’ 감탄할 만한 장면이 없잖아. 특히 의사들이 환자 몸에 접촉도 하지 않는 미래 사회에서 지금도 일반적이지 않은 총살형이 이뤄지다니. 제작진이 미래 사회에 대해 얼마나 상상했을까 의문을 품게 되던데.

 

1층 8열 14번 : 역시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네. 이럴 때 보면 국내 관객들의 작품을 보는 눈이 확실히 높아진 것 같아. 그만큼 다양한 무대를 접하면서 평가 기준 자체가 다채로워지고 그 수준도 높아졌다는 얘기겠지. 제작진이 관객들의 구미를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이기도 하고.

 

1층 8열 15번 : 그렇지, 그런 차원에서는 뮤지컬 <페스트>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싶어.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즘 공연계 트렌드를 쫓지 않고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만들어내려고 했잖아. 한 마디로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셈이야. 무대에서도 이런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나고 싶겠지만, 매일처럼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새롭게 보완되는 것이 공연의 또 다른 매력 아닐까? 공연은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잖아. 지금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공연 중에 초연 때부터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 얼마나 되겠어.

 

1층 8열 14번 : 맞아, 관객들의 이런 다채로운 눈이 또 다른 <페스트>를 만들어내겠지. 8월에, 또 9월에 보는 <페스트>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아마 다시 무대에 오르는 <페스트>훨씬 더 탄탄해져 있을 테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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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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