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뭐 별 거 있어?
여름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 앞에선 몸도 마음도 금새 지친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업무, 잠도 오지 않는 열대야, 그리고 늘 똑같이 반복되는 삶. 어느 새 사람들은 그 쳇바퀴 같은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나마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어디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었던가. 마치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는 첫 사랑처럼 여행은 늘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언제나 머나먼 미래엔 꼭 떠나리라는 기약 없는 다짐만 할 뿐이다. 음악극 <유럽 블로그>의 주인공 종일은 그런 사람들의 어깨를 툭 치며 한 마디를 내 뱉는다. “여행이 뭐 별 거야? 지금 떠나고 싶으면 떠나!”
음악극 <유럽 블로그>는 일명 ‘여행 뽐뿌’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여행이 주는 설렘과 즐거움, 여유로움 그 모든 감정을 전달하여 관객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유럽 블로그>의 주인공은 7년차 여행 블로거이자 자유로운 영혼인 종일, 대기업을 박차고 첫 유럽 여행을 떠난 FM 동욱, 헤어진 연인을 찾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난 푼수 석호 이 세 사람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을 떠난 세 사람은 각각의 사건들로 인해 엮이게 되고, 함께 유럽 여행을 하게 된다.
명문대-대기업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동욱은 여행지에서도 시종일관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이 짜온 루트대로, 장소와 시간까지도 매번 체크하며 꼼꼼히 여행을 다닌다. 그런 동욱에게 無계획 끝판왕 종일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건 당연지사. 하지만 종일은 사사건건 동욱의 여행에 개입하면서 그건 여행이 아니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無개념 석호까지 동욱의 여행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세 남자의 여행은 순탄치 않게 흘러간다.
잠깐 쉬어도 돼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와 함께 여행을 하며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함께 여행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새 어색함이 사라지고 소중한 인연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삐걱거리던 종일, 동욱, 석호 세 사람도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계획한 대로만 행동하며 도장 깨기 같은 여행을 했던 동욱은, 종일과 석호 덕분에 여행의 자유로움을 온 몸으로 만끽하게 된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던 여유를 느끼고, 유럽의 낭만적인 풍경에 맘껏 취한다.
“열심히 사니까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라는 동욱의 말은 그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동욱의 모습은 우리들과도 닮아있다. 정신 없이 바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고, 무기력해진다. 여행은 그 무기력함과 권태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여행이 주는 짧은 휴식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여행은 결국 나를 충전시켜 주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음악극 <유럽 블로그>는 여행이 주는 메시지를 시종일관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프로듀서 김수로의 재기 발랄함이 작품 곳곳에 잘 녹아 들어 있다. 특히 3인조 라이브 밴드의 흥겨운 음악과, 배우들이 실제 유럽 여행을 하며 찍어온 영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여행이 주는 설렘을 온 몸 가득 느끼게 해주는 <유럽 블로그>는 10월2일까지 대학로 TOM에서 만날 수 있다.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