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연수의 문음친교 시즌2
둘만의 낙원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노래
레이먼드 카버의 「깃털들」과 <파리, 텍사스> OST의 ‘Cancion Mixteca’
『대성당』에 실린 다른 단편 ‘칸막이 객실’은 레이먼드 카버의 이런 생각을 직접 드러낸다. 그렇다면 소설 속 잭이, 그리고 소설 밖 레이먼드가 잃어버린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그에 대해서는 트래비스가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고통을 담은 노래와 함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의 첫 단편 「깃털들」은 직장 동료인 버드의 초대를 받은 잭이 아내인 프랜과 함께 그의 시골집까지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그때까지 잭과 프랜은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러울 것이 없는 부부의 삶 앞에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공작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하느님.” 프랜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손을 뻗었다.
“하느님 맙소사.” 내가 또 말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새는 그 괴기하고도 구슬픈 울음소리를 한번 더 냈다. “메이오, 메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깊은 밤, 생전 처음 그런 소리를 듣게 됐다면, 아마도 나는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고, 혹은 야생의, 위험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18쪽)
이 장면에서 잭과 프랜은 공작을 보며 ‘하느님(God)’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중얼거린다. 한국어로는 ‘저런’, ‘빌어먹을’ 따위로 번역될 감탄사지만, 그들이 ‘God’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집안으로 들어가 왜 그런 이상한 새를 키우게 됐는지 사연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리라. 하지만 그 전에 부부가 봐야만 하는 불쾌한 장면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데이지 몇 송이가 꽂힌 가느다란 빨간색 꽃병 옆의 석고 치형이다.
낙원의 새 앞에서 읊조리는 네 번의 ‘하느님’
그 흉측한 물건에는 입술도, 턱도 없었고 다만 두터운 노란색 잇몸처럼 보이는 것 안에 석고 치아만 박혀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건 버드의 아내인 올라가 치아 교정을 받기 전의 치형을 석고로 본뜬 것이다. 올라는 그 치형과 교정한 치형을 비교할 수 있도록 입을 벌리는데, 거기에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선 올라는 소녀시절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언젠가 한 번은 공작을 키우리라 결심했다고 말한다. 이에 버드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에는 내가 찾아나섰습니다.” 버드가 말했다. “옆 카운티의 어떤 녀석이 공작들을 기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사람은 공작이 낙원의 새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그 낙원의 새에 백 달러를 지불했지요.” 그는 이마를 툭 쳤다. “전지전능한 하느님, 왜 제게 이토록 사치스런 취미를 가진 마누라를 주셨습니까.”(32쪽)
공작은 ‘극락조과(Birds of Paradise)’가 아닌 꿩과인데도 이 장면에서 버드는 그렇게 말한다. 공작을 ‘낙원(Paradise)’와 연결시켜서 본 건 잭과 프랜도 마찬가지다. 공작을 보자마자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네 번의 ‘하느님(God)’은 공작이 암시하는 낙원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낙원이라는 단어는 ‘원죄’와 ‘추방’으로 이어진다. 여기까지의 이미지들을 차례로 머릿속에 떠올린 잭과 프랜 앞에 올라가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장담하건대, 그렇게 못생긴 아기는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못 생겼는지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내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병이 있다거나 기형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못생겼을 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붉은 얼굴에 툭 튀어나온 눈, 널따란 이마와 비대한 입술. 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고 살찐 턱은 서너 겹에 달했다. 턱의 주름은 귀밑까지 이어졌고 두 귀는 민둥머리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손목도 온통 살투성이였다. 팔과 손가락에도 피둥피둥 살이 붙어 있었다. 못생겼다는 말조차 녀석에게는 영예로울 정도였다.(34쪽)
예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 소설만 놓고 보면, 여기서 왜 이렇게 못생긴 아기가 등장하는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아기를 보고 돌아와서는 잭과 프랜이 계획에도 없는 아이를 가지고, 그 뒤로는 두 사람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잭은 그게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 굳이 말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설명한다.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날 법한 변화였지, 자신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자면 그들은 원치 않은 변화였다는 뜻이다. 잭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OST에는 사운드트랙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자신을 떠난 아내를 찾은 트래비스가 환락가 유리창 너머의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그대로 수록한 「I Knew These People」이다. 이 장면에서 트래비스는 제인을 만났을 때,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또 그녀는 트래비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얘기한다.
「깃털들」에서 버드가 자신들을 집에 초대했다는 잭의 말을 들었을 때 “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필요해?”라고 되묻는듯한 표정을 지은 프랜처럼, 둘이 함께 있으면 다른 건 하나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고 트래비스는 말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듣던 제인은 트래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두 남녀가 트레일러에서 살았다는 말을 듣고는 유리벽 너머에 앉은 남자가 전 남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어느 밤, 어느 밤에 그녀가 그에게 얘기해. 임신했다고. 임신한 지 3,4개월이 됐다고. 그런데도 그는 전혀 몰랐던 거지.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졌어. 그는 술을 끊고, 안정된 직장을 구해. 자기 아이를 가졌으니까 이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그녀를 위해 멋진 가정을 꾸리는데 진력을 다하겠다, 그랬던 거야. 그런데 웃긴 일이 벌어져. 처음에는 눈치도 못 챘지. 그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아기가 태어난 바로 그 날부터 그녀는 모든 일에 짜증을 내기 시작해.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기마저도 그녀에게는 부당한 뭔가가 되는 거지. 그는 모든 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 그녀를 위해 물건들을 구입하고, 매주 외식을 하고. 하지만 그 무엇에도 그녀는 만족하지 않지. 그렇게 2년 정도, 그는 처음 만났을 때의 두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지. 예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가는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트래비스의 대사 중)
이 부분에서 어떤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아주 오래 전에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드는 노래. 마치 그렇게 만나기로 예정된 것처럼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듯이. 기시감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건 기청감이라고 해야만 할까?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Cancion Mixteca’, 즉 ‘미슈테카의 노래’란 뜻으로 멕시코 서민음악인 란체라 중에서도 유명한 이 노래는 멕시코 와하카 출신의 작곡가 호세 로페즈 알라베스가 멕시코시티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
우린 또 얼마나 멀리 왔는지!
이 노래와 대사를 통해 「깃털들」 역시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낙원에서 추방된 이유가 아이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성당』에 실린 다른 단편 「칸막이 객실」은 레이먼드 카버의 이런 생각을 직접 드러낸다. 그렇다면 소설 속 잭이, 그리고 소설 밖 레이먼드가 잃어버린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그에 대해서는 트래비스가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고통을 담은 노래와 함께.
어떤 사람들을 알아, 어떤 두 사람을. 둘은 서로 사랑했지. 여자는 아주 어렸는데, 아마 열일곱, 아니면 열여덟이었고 남자는 그보다는 꽤 많았지. 그 사람은 덥수룩한데다가 봉두난발. 반면에 여자는 정말 예뻤단 말이야, 진짜로. 둘이 있으면 모든 게 모험 같은 걸로 바뀌었어. 그녀가 그걸 좋아했지. 동네 가게에 가는 평범한 일도 완전 신나는 일이 되어버렸던 거야. 둘은 우스꽝스러운 것을 보면 언제나 웃음을 터뜨렸지. 그 남자는 그녀를 웃게 하는 일이 좋았어. 둘은 다른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들이 원한 건 둘이 함께 있는 것 뿐이었으니까. 둘은 항상 함께 있었고, 그는…, 그 남자는 그녀를 죽을 만큼 사랑했어. (트래비스의 대사 중)
나 태어난 곳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크나큰 그리움이 밀려와 마음이 먹먹하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외롭고 서러운 내 신세여,
감정이 북받쳐 울고만 싶다네, 죽고만 싶다네. (「Cancion Mixteca」의 가사 중)
살아가는 한, 그리고 사랑하는 한, 우리는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실향민의 처지를 피할 길이 없다. 누구나 나이가 들 테고, 어떤 사랑이든 끝이 날 테니까. 다들 그런 일이란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날 법한 것이지 자신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겠지만, 결국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기에 구원의 실마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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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12,1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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