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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즐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배우 양준모
국내 초연 때 스위니 토드를 연기했던 배우 양준모
지난 10년 동안 어떤 캐릭터를 다시 하고 싶으냐고 물어오면 항상 스위니 토드였어요! 지금은 경험이 많아져서인지 안전하게 캐릭터의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탑10 뮤지컬을 찾아볼 때가 있습니다. 공연시장의 양대 산맥이라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어떤 작품이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단 10개의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도 공연 될 때마다 사랑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제목조차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작품도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정서와 문화의 차이일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 새로 들어오는 라이선스 공연들을 보면 공연시장의 문화도, 객석의 정서도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9년 만에 다시 공연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왠지 편해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겠죠? 그래서 국내 초연 때 스위니 토드를 연기했던 배우 양준모 씨의 감회는 더욱 남다른데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 샤롯데씨어터에서 양준모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캐릭터를 다시 하고 싶으냐고 물어오면 항상 스위니 토드였어요! 초연 때는 20대라 너무 어려서 그냥 열심히만 했는데,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제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은 경험이 많아져서인지 안전하게 캐릭터의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성악을 전공했던 양준모 씨가 뮤지컬 무대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이 바로 2007년 국내 초연된 <스위니 토드>. 그도, 그리고 관객들도 이제 좀 더 편안하게 <스위니 토드>를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가끔 ‘이 작품의 메시지가 뭘까’ 생각했는데 ‘복수는 복수를 낳고’ 정도만 떠올랐어요. 그래서 연출(에릭 셰퍼)에게 물어봤더니 ‘왜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느냐, 그냥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접근 자체가 다른 거죠. 10년 전에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될까?’라는 마음이 더 컸고, 그때 제 시각에는 모두가 열심히만 했어요. 초연 때는 관객들도 숨도 못 쉬고 봤던 것 같아요. 피를 볼 마음의 준비도 안 돼 있었고, 손드하임의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돼 있었고. 그래서 1막 끝나고 나가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에릭 연출이 바란 것은 말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하면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일단 이번 무대를 보시면 환해요. 여기서 아무리 다크하게 해도 다크할 수가 없는 거죠. 가사도 예전과 같은 게 거의 없고, 그냥 초연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 생각엔 10년 전 무대를 그냥 가져와도 잘 될 것 같고, 지금 이 무대도 재밌을 것 같아요.”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경우 국내에서는 <컴퍼니>, <어쌔신> 등으로 알려진 스티븐 손드하임의 다소 기괴한 음악 때문에 더 주목받는데요. 배우로서 손드하임의 음악은 어떤가요?
“현대 오페라와 비교되곤 해요. 화성도 비슷하고. 손드하임은 수학자이기도 해서 모든 걸 계산적, 아주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어요. 음악만 충실해도 어느 정도 연기가 되는 셈이죠. 사실 현대 오페라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데, <스위니 토드>의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명작이죠. 개인적으로는 전작이었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저와 맞는 음역대가 아니라서 매회매회 굉장히 신중하게 공연했어요. 테너 영역이었거든요. 그런데 스위니 토드는 바리톤, 딱 제 음역대라 소리 내는 것도 편해요.”
극 중 러빗 부인과의 호흡에 따라 작품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옥주현, 전미도 씨의 색깔이 굉장히 다른데, 무대 위에서는 어떤가요?
“맞아요, 이 작품은 두 인물이 어떤 호흡이냐에 따라 작품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또 스위니 토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굵은 감정으로 가는 반면 러빗 부인의 감정은 다채로워요. 그래서 포커스 자체가 러빗 부인에게 더 집중되는 면도 있고요. 일단 미도 씨는 워낙 작품을 같이 오래 해서 말이나 감정, 연기적인 색깔이 잘 통하는 친구예요. 무대 위에서 눈빛만 봐도, 약속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척척 맞아떨어지죠. 미도가 가진 색깔이 발랄하면서도 슬프거든요. 러빗 부인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주죠. 주현 씨는 작품으로 만난 게 처음인데, 갖고 있는 소리가 정말 좋아요. 날것의 느낌이랄까? 배우로서는 굉장히 부러운 점이죠. 정형화되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거든요.”
조승우 씨와도 처음이지 않나요? 두 분의 색깔도 굉장히 다릅니다.
“처음이에요. 그래서 컴퍼니 측에서 아주 신나했대요. 네 배우가 너무 다르니까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웃음). 승우 씨는 너무너무 섬세해요. 초연 때 참여했던 저로서는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에릭 연출과 승우 씨를 보면서 즐길 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도 여유를 가지게 됐죠. 아무래도 저는 갖고 있는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무겁고 진중하게 보일 텐데, 승우 씨는 감정의 격차를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그래서 연출도 배우마다 차이점을 더 부각하려고 했어요. 에릭 연출은 아시아에서 공연이 처음이라 더블 캐스팅 자체가 처음이래요. 그래서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달라지는 걸 굉장히 신기해하더라고요.”
언론에서 ‘조승우-옥주현’의 첫 만남을 많이 드러내는데, 서운하지는 않나요(웃음)?
“워낙 큰 두 사람이 만났으니까요. 사실 저와 현철이 형(조성지)만 초연 때 했던 배우거든요. 이 작품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런 질문 정도는 유쾌하게 넘기실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지금 양준모 씨의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미제라블>로 일본에 이어 국내 무대까지, 내공이 켜켜이 쌓였을 것 같아요.
“자신감보다는, <스위니 토드>의 경우 초연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레미제라블>을 할 때는 10여 년간 뮤지컬을 통해 경험한 모든 것이 장발장을 위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만큼 장발장은 모든 감정을 필요로 했거든요. 배우로 계속 일하다 보니까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어요.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했던 캐릭터도 다시 할 수 있고.”
지금껏 연기했던 배역들만 보면 무대 위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배우네요.
“감사하죠. 운 좋게도 보통 남자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배역은 30대 초반까지 다 해봤어요. 오히려 현대극을 한 지 오래 돼서 그냥 편안한 옆집 아저씨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코미디는 어떨까요? 강한 이미지와 보이스 칼라 때문에 주로 선 굵은 역할만 해오셨는데, 평소 성격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의외로 아기자기하거나 독특한 유머 감각을 가진 건 아닌가요(웃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냥 무대 위 모습과 비슷해요.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사람이죠. 저를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무겁게 알고 계시고. 딸아이가 9개월인데 지금은 완전히 딸 바보로 살고 있고, 가정적인 편이긴 해요. 사실 7년 만에 아기가 생겼는데, 아이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고 싶던 <스위니 토드>를 못하겠더라고요. 배우가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그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반대로 지금이 표현하기는 더 좋죠. 그래서 이번에는 개인적인 감정이입은 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껏 많은 도전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다시 클래식을 해보고 싶어요. 연출을 했던 오페라 <리타>는 또 공연될 거예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오페라를 <리타>를 통해 다 표현했거든요. 사실 유럽이나 미국의 주요 오페라단에서 <스위니 토드>는 정기 레퍼토리예요. 그만큼 음악이 잘 짜인 공연이라서. 외국에서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공연하는 배우가 많은데, 국내에서도 좀 활성화 됐으면 좋겠어요. 성악 레슨은 계속 받고 있어요. 성악이 베이스인 배우들은 베이스를 더 잘 다듬어야 다른 색깔의 소리도 낼 수 있거든요.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오페라 무대에도 서 보고 싶어요.”
언젠가 국립오페라단과 한 무대에 서는 게 아니냐며 함께 웃어 봅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끝내고 양준모 씨는 무대로, 기자는 객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배우도 관객들도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즐겼습니다. 기괴한 음악이 가득하고, 피가 낭자한 그 공연장에서 말이죠.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는 더욱 다양해지고, 배우와 관객들에게는 그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겠죠. 물론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대와 배우를 바라보고 있을 테고요.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유독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호흡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을 띠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 그래서 조승우, 양준모, 옥주현, 전미도 모든 페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기자만의 욕심은 아니겠죠?!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