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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기 위하여

김혜순 시인의 12번째 시집 『죽음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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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죽음에 절망하고, 그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쓰인 시집이 아니다. 49재는 망자를 기리고 위로하며 떠나 보내는 의식이니까. 그리고 그 의식을 통해 산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니까. 이 시집은 살아야 한다고, 살아가자고 쓰인 시집이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죽음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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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의 첫 글부터 죽음에 대한 책을 골라도 좋은 것일까, 너무 칙칙하거나 무거운 얘기가 되지는 않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윽고 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모든 예술은 죽음과 겨루기 위해,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나아가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이어져 온 것이니까.

 

김혜순 시인의 12번째 시집 『죽음의 자서전』은 그 제목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이 죽음이 화자가 되어 죽음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시집에 실린 49편의 시에는 하루부터 마흔아흐레까지의 부제가 붙어 있으니, 이것은 죽음의 자서전인 동시에, 책이라는 물성을 뒤집어 쓴 49재로서 수많은 죽음을 기리는 한 권의 제사祭祀가 될 터이다. 

 

읽는 내내 정말 징글징글한 시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은 49번 반복되는 죽음이며, 동시에 단 하나의 거대한 죽음이다. 죽음이란 모든 존재가 맞닥뜨리는 단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자 세계의 모든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무수한 사건이니까. 그러니까 죽음이란 절대적 일회성과 무한한 반복이라는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7번에 7번이나 죽음을 반복하는 이유도 그러한 까닭이리라. 무한을 상징하는 숫자를 빌어, 그 무한하면서도 거대한 관념인 죽음에 가닿으려는 것이다. 49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 시집의 연작 형식은 바로 그 무수한, 그러나 하나의 요체를 이루는 죽음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이토록 죽음, 죽음, 죽음, 말하며 죽음에 천착하니 그 저력과 집요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몸에 살던 의붓딸 침묵이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중략)

 

새 엄마는 죽었다. 이제 죽었다.

 

의붓딸이 땅속에 엎드려 노래를 부른다. 자그맣게 부른다.

일평생 지하에 가뒀던
의붓딸 침묵이 너를 당긴다.

- 「딸꾹질-서른하루」 중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죽음이 딸꾹질처럼 불현듯, 우리의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딸꾹, 딸꾹,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침묵을 깨고 죽음은 그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다. 죽은 새엄마와 갇혀 있는 의붓딸이라는 뒤틀린 모계에서 발생하는 이 생명과 죽음의 기묘하고 미묘한 엇갈림은 또 어떤가. 삶과 죽음, 개인과 역사, 내부와 외부, 혼란과 침묵을 모두 절묘하게 연결하여 죽음을 묘파하는 시인의 힘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이토록 갑작스러운 것이면서 또한 유구한 것이라고. 매우 사적인 것이면서 또 우리 모두에게, 세세토록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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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간의 시편들 속에서 죽음은 계속 말한다. 너는 죽을 것이다. 너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너는 죽음에 둘러 싸여 있고, 죽음을 맡고, 마시고, 먹으며 산다. 너의 삶은 이처럼 죽음으로 가득하고, 너는 죽음으로부터 애써 눈 돌리며 살아가지만 사실 너는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은 너의 안에 있다. 너는 죽음이다…… 시인은 죽음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으로만 가득한, 죽음이 말하고 죽음이 움직이는, 죽음을 향하고 죽음을 꺼내 올리는 시집은 나는 여지껏 읽어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장대한 죽음의 연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시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것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기분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죽음에 절망하고, 그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쓰인 시집이 아니다. 49재는 망자를 기리고 위로하며 떠나 보내는 의식이니까. 그리고 그 의식을 통해 산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니까. 이 시집은 살아야 한다고, 살아가자고 쓰인 시집이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죽음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집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의 49번째 시에서 부정과 역설의 언어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라고, 더 살아가라고.

 

겨울 풍경 전체가 울며불며 회초리를 휘두르며 너를 그리워 마요

 

눈발이 수천 개 수만 개 수억만 개 쏟아지며 너를 그리워 마요

 

온 세상에 내려앉아서 울며불며 수런거리며 눈 속에 파묻힌 눈사람 같은 네 몸을 찾지 마요, 예쁘게 접은 편지를 펴듯 사랑한다 어쩐다 너를 그리워 마요

 

너는 네가 아니고 내가 바로 너라고 너를 그리워 마요

 

49일 동안이나 써지지 않는 펜을 들고 적으며 적으며 너를 그리워 마요

- 「마요-마흔아흐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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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김혜순 저 | 문학실험실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49편 중 대부분이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미발표 신작 시로,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49제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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