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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루비노스(Xenia Rubinos),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스타일

제니아 루비노스(Xenia Rubinos) - 〈Black Terry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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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도의 사운드들과 다양한 멜로디들이 교차해가며 트랙 리스트를 만든 덕분에 작품에는 인상적인 순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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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루비노스의 음악은 여전히 묘하다. 데뷔작이자 전작이었던 2013년의 <Magic Trix>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스타일을 쉽게 정의할 수 없게 하는 지점들을 앨범 도처에 뿌려놓았다. 사운드를 대표할 장르를 고를 순 있겠다. 음악의 골자는 록과 알앤비에 있다. 그러나 그 둘이 아티스트의 음악 전반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 하겠다. 그 두 큰 기틀 위에 펑크(funk)와 재즈, 힙합 등 여러 특성들이 적잖이 올라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 실로 다채롭다. 게다가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 재료를 재조합하고 뒤섞는 방식 역시 계속해서 판단에 어려움을 더한다. 짤막하게 구성된 채로 반복되는 오프비트의 드럼 라인이 몽롱함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단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듯 하는 오버드라이브의 키보드 리프가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진행 구조에 이리저리 가하는 변격, 격하게 완급을 오가는 제니아 루미노스의 보컬, 레이어링으로 구성한 입체감 있는 사운드도 아티스트의 음악에 독특함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멋지다. 제니아 루비노스, 또 드러머이자 프로듀서로서 아티스트와 오래 함께한 마르코 부첼리는 사운드를 훌륭하게 섞어내는 데에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다. 펑키한 리듬 위에 로킹한 리프를 얹은 「Mexican chef」, 앨리샤 키스의 알앤비와 잭 화이트의 록을 혼합해놓은 듯한 「Just like I」, 즉흥적으로 흐르는 재즈 색소폰을 이따금씩 등장시켜 몽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Don’t wanna be」을 우선 보자. 여러 장르와 스타일을 배합해가며 새로이 자신들의 사운드를 이끌어내는 이들의 장기가 위 트랙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변칙적인 장치를 곳곳에 설치해 음반에 색다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분절과 진행을 반복하는 「Don’t wanna be」의 후반부 전개나 호흡을 오묘하게 가져가는 「See them」의 4분의 7박자 구성, 매력적인 팝 멜로디 위에 씌운 「Right?」의 까칠한 사운드 톤, 「Just like I」의 복잡한 리듬 패턴 등을 그 예로 꼽을 수 있겠다. 앨범이 자랑할 수 있는 근사한 결과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니아 루비노스가 한 데 쏟아 부은 재료들을 휘젓고 흔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Black Terry Cat>의 장점은 여러 모양새로 빚어낸 사운드에 그치지 않는다. 아티스트는 좋은 사운드 블렌더임과 동시에 좋은 멜로디 메이커이기도 하다. 제니아 루비노스의 탁하면서도 부드러운 보컬과 거친 키보드 리프를 타고 나오는, 잘 들리는 선율 역시 작품에 큰 소구력을 더한다. 차분한 「Don’t wanna be」에서는 매끈한 알앤비 멜로디를, 리드미컬한 「Right?」에서는 캐치한 멜로디를 걸어놓기도 하며, 변박자가 불안정을 선사하는 「See them」와 극적인 구성이 보이는 「How strange it is」에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어두운 선율을 끼워 넣기도 한다. 다각도의 사운드들과 다양한 멜로디들이 교차해가며 트랙 리스트를 만든 덕분에 작품에는 인상적인 순간이 가득하다.

 

작품 곳곳에 높은 수준의 감각이 돋보인다. 실험적인 특성과 팝적인 특성이 한 데서 공존하고 있다. 여러 시도로 무장한 사운드가 앨범을 불편하고 산만하게 만들다가도, 유려한 멜로디가 금세 접근성을 끌어올린다. 이질적인 면모들을 제니아 루비노스는 솜씨 좋게 다룬다. 모자람 없는 재능과 자유롭게 움직이는 창작이 각양각색의 곡들로 무장한 수작을 낳았다. 갖은 재료들이 어지럽게 횡행하고 충돌해가며 만든 아름다움이 <Black Terry Cat>에 담겨있다.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앨범이다.


 2016/06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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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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