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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배우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김견우
이번 시즌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신인 같지는 않지만 대학로 무대에 선 모습이 아주 익숙하지도 않은 한 배우가 눈에 들어올 겁니다.
다들 사랑하면서 웃으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고, 저희들이 그런 느낌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비, 피아노, 그리고 사랑...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작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입니다. 바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인데요. 남경읍, 남경주, 최정원 배우와 함께 지난 1995년 초연됐다고 하니 올해로 21번째 생일을 맞은 셈입니다. 스무 살이 넘은 창작뮤지컬은 손에 꼽을 정도죠. 그 사이 오만석, 엄기준, 김다현, 송창의, 윤공주, 김지우, 안시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간 걸 생각하면 작품의 힘과 흘러간 시간을 새삼 체감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다시 무대를 찾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동욱 역에 안재모, 전병욱, 이동준, 동현 역에 박유덕, 김견우, 원성준, 은경균, 미리 역에 김려원, 이경진, 홍민아 씨가 이름을 올렸는데요. 이번 시즌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신인 같지는 않지만 대학로 무대에 선 모습이 아주 익숙하지도 않은 한 배우가 눈에 들어올 겁니다. 바로 동현 역을 맡은 김견우 씨. 그가 누구인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습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예전에 첫 쇼케이스를 대학로 질러홀이라는 곳에서 했는데, 사실 저는 대학로보다는 홍대가 익숙하죠. 클럽 공연을 많이 했으니까요.”
이야, 질러홀이 존재할 무렵이면 꽤 오래 전 일이죠. 그렇습니다. 데뷔가 2004년이라고 하니 무대에 제법 올랐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활동무대는 뮤지컬이 아니라 라이브 콘서트였습니다. 김견우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트랙스의 제이라고 하면 아실까요?
“배우 활동할 때는 김견우라는 본명을 쓰고 있어요. 군대 다녀와서 가수보다 배우 쪽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서요. 뮤지컬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여섯 번째 작품인데, 처음 <형제는 용감했다>를 했을 때부터 뮤지컬이 좋아서 무대는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처음 뵌 관객이 공연 끝나고 제 노래가 좋다며 예전에 뭐 했느냐고 물어보시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랑은 비를 타고>는 소극장 3인극인데, 대극장 공연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이었던 <군수선거> 외에는 모두 대극장 공연이었는데, 게다가 3인극은 처음이에요. 처음에는 부담됐죠. 대극장은 옆에 받쳐주는 사람이 많아서 자잘한 실수나 부족한 부분은 메꿔주고 힘을 실어주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무대 위에 벌거벗은 상태로 서 있는 것 같더라고요. 동현 역에 네 명이 캐스팅된 데다 동욱과 미리도 계속 바뀌어서 때마다 첫공하는 기분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죠. 그래도 배우들끼리 믿고 의지하며 가는 재미가 있어요.”
오래 전에 이 작품을 볼 때 중고등학생들이 단체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전이란 얘기죠. 록 밴드에서 스타일리시한 노래만 부르다 좀 진부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요.
“이런 거 좋아해요. 형제나 가족 얘기,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상. 대본 보고 정말 좋았어요. 뮤지컬치고는 드라마도 센 편이고, 이런 작품 해보고 싶었거든요. 사실 남녀 간의 로맨스는 오글거려서 무대 위에서 여배우와 연인으로 나오는 건 잘 못하겠어요(웃음).”
공연 시작할 때 피아노 연주도 하잖아요. 밴드활동 하셨으니 재주가 많을 것 같습니다. 대학로에서는 김견우 씨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살짝 알려주시면 써놓을게요(웃음).
“이번에 배운 거예요. 박유덕 배우 외에는 다들 피아노를 못 쳤거든요. 사실 뭐 하나 특출 나게 해야 하는데 피아노든 기타든 다 어설퍼요. 뮤지컬 오디션 때는 짧은 시간에 뭔가 다 보여줘야 하는데 저는 춤도 못 추고. 탭댄스도 <싱잉 인 더 레인>할 때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한 건데 다 까먹었어요. 하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해요. 정말 잘 하는 게 없네요. 아, 미국에서 살았으니까 영어는 잘 해요. 일본 활동도 오래 해서 일본어도 좀 하고요. 써 먹을 데가 있으려나(웃음).”
요즘 작품에는 영어, 일어, 독어 다 나오더라고요. 유용하게 써 먹을 데가 있을 겁니다(웃음).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다 마흔 살 생일을 홀로 맞은 동욱, 그런 형이 불편해 집을 나선 뒤 7년 만에 돌아온 막내 동현, 그리고 실수로 그들을 찾아온 이벤트 업체 신입사원 미리. 별다른 전환도 없는 무대에서 세 인물이 90분의 드라마를 끌고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동현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대본을 봤을 때는 단편적으로 반항적이고 아직 철이 없는 막내 같은 느낌인데, 마냥 툴툴거리기만 하면 개념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형에 대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는, 그 마음과 달리 독한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철들기 전에는 저도 그런 면이 있었거든요. 엄마한테 짜증도 많이 내고. 지금은 안 그래요(웃음).”
무엇보다 형인 동욱과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세 배우가 다르죠?
“다 달라요. (안)재모 형은 멋있는데 은근히 소심한 면도 있고 귀여워요. 친구 같은 형이라고 할까요? (전)병욱이 형은 아빠 같아요. 좀 세고, 강압적인 느낌도 있고. (이)동준이 형은 푸근한 엄마 같고요. 미리 역을 맡은 배우들도 모두 제각각이다 보니까 무대 위에서는 마음을 열어두는 편이에요. 물론 연기는 하나의 약속이지만 그 안에서 살짝 달라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유연하게 대처해야겠더라고요.”
극중 피아노를 전공했던 동현이는 손을 심하게 다쳐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하는데요. 김견우 씨도 성대 수술 때문에 트랙스 활동을 중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스물다섯 살 때 즈음이었나. 병원에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술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수술 뒤에는 목소리가 변할 수도 있고 노래를 다시 못할 수도 있다고요. 무척 큰일이긴 했는데, 가수 활동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서 쉬고도 싶었어요. 뭘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이참에 쉬면서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 싶었죠. 수술 뒤 재활할 때는 1년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말도 거의 안 했어요. 지금은 수술하기 전보다 톤이 살짝 올라간 편이고, 다른 사람들은 못 느낄 텐데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부분이 좀 있어서 꾸준히 저만의 발성을 만들고 있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동욱과 동현이 각자의 삶에서 위기를 겪지만 밝은 표정으로 마무리하잖아요. 김견우 씨도 지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건가요?
“커튼콜에서 동현이는 다친 손, 그러니까 현실을 극복했다기보다는 일단 형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행복하다는 걸 표현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죠. 저는 가수와 배우의 경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성대 수술 뒤에도 앨범을 내긴 했어요. 또 앨범을 언제 낼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명확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쉬고 있는 상태죠. 뮤지컬은 계속 하고 싶어요. 뮤지컬에도 음악이 있고요.”
미리가 마흔 살 생일을 맞은 동욱에게 스물다섯 살에는 뭘 하고 싶었느냐고 묻잖아요. 김견우 씨는 그때 하고 싶었던 걸 하고 계셨죠?
“그렇죠,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냥 랩이 좋아서 한국에 들어와 SM까지 가게 됐는데, 거기부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까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경쟁도 치열하고. 어찌어찌 데뷔는 했는데 하고 나니까 더 높은 산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 산을 올라가다 살짝 떨어진 거죠. 개인적으로도 많이 지쳤고.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하는 게 모두 재밌어요. 뮤지컬만 해도 예전에는 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들이 찾아오겠지 생각해요. 자신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여유를 가지려는 것 같아요.”
21주년을 맞은 만큼 오래 전에 봤던 관객들은 이번에 다시 공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어떤 마음을 전하고 계신가요?
“마지막 ‘사랑’이라는 노래 부를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저희 작품은 공연 시간이 길지도 않고 드라마도 잔잔해요. 편하게 와서 보시고 마지막에 미소 지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들 사랑하면서 웃으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고, 저희들이 그런 느낌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편하게 보고 마지막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작품.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시즌 때마다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겠지만 21년 전에 단순한 구성과 소박한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 무대는 요즘의 치밀하고 현란한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울림이죠. 그런데 오래 전에 이 작품을 봤던 관객이라면, 이번 시즌에 처음 보고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관객이라면 각각 미리, 동현, 동욱의 나이와 상황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꿈도 있고 아픔도 있고 화해도 있는 게 우리 모두의 삶이니까요. 가수라는 꿈을 이뤘고, 잠시 산에서 떨어졌다 이제 배우로 달리고 있는 김견우 씨도 마찬가지겠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지금 캐스팅으로 7월 10일까지 공연되고, 이후에도 오픈런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김견우 씨의 배우 인생도 오픈런이겠죠?
관련태그: 윤하정, 공연,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김견우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