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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아터진 바티칸을 고발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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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가 아니다. 나에게는 교회가 자행하는 모순적인 행위들을 가톨릭 신자들과 비신자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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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상처 입은 바티칸


1978년 9월 12일 오후였다. 요한 바오로 1세(John Paul I, 1912~1978년) 교황은 프리메이슨의 강력한 로비 활동에 교황청 내 신부 120명이 연루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날은 그가 교황에 오른 지 겨우 18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소식으로 인해 바티칸 전체가 술렁였다. 추기경, 주교, 고위급 신부들이 복음 대신 프리메이슨 형제단에 헌신한 것이다.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9월 19일, 교황은 교황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계획안을 작성했다.


9월 28일 늦은 오후, 요한 바오로 1세는 국무원장인 장 마리 빌로 (Jean-Marie Villot) 추기경을 부른다. 자신이 직접 만들고, 시행하려는 개혁안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명단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은 바티칸은행의 실력자 폴 카시미르 마르친쿠스(Paul Casimir Marcinkus) 주교였다. 마 르친쿠스의 이름 아래에는 그의 측근들과 바티칸은행의 회장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이들은 마약 중개상 출신으로 마피아 자산을 운용한 금융가 미켈레 신도나(Michele Sindona), 그리고 마피아의 돈세탁을 돕는 과정에서 거액의 돈을 빼돌린 이탈리아 암브로시아노 은행의 은행장 로베르토 칼비 (Roberto Calvi) 등과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 그들은 모두 다음 날, 짐을 싸 서 교황청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을 예정이었다.


요한 바오로 1세와 국무원의 회의는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끝날 줄 몰랐다. 다음 날 새벽, 한 수녀가 침대에 누워 죽어 있는 교황을 발견했다. 요한 바오로 1세의 책상에는 그가 발표하려던 연설의 원고가 놓여 있었다. 예수회(Jesuit Order) 앞에서 그 연설문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던 9월 30일의 하루 전날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흐른 2013년 7월 3일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상시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에 당선된 3월 이후로 줄곧 바티칸의 사제용 기숙사인 카사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해왔다. 그는 교황 자리에 오르자마자 이전의 관행을 깨고 교황에게 제공되는 호화 사저에 살기를 거부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처럼 보였다. 그러나 교황은 산타 마르타 예배당에서의 설교 시간에 심상찮은 은유를 사용했다.


“저희는 자비를 행하시는 예수에게서 상처를 발견합니다. (…) 예수님의 상처를 긍휼할 용기를 저희에게 허락해 달라고 토마스 성인에게 기도합시다.”


이날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 일어난다. 콘클라베(Conclave)(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선거)를 통해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도 약 4개월이 지났다. 그가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약속했던, 그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이는 또한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오늘도 바티칸 궁전의 비밀스러운 장소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비밀문서들에 근거해 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로지 자신의 용기와 의지만으로 거대한 무리의 끝없는 악행과 대결하고 있다.


교황청의 재정을 의논하기 위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비밀회의에는 관습에 따라 교황청 조직 및 경제 문제 조사를 위한 15인 추기경 평 의회(The C15 Council of Cardinals)가 참석했고, 의장은 바티칸의 국무원장 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Tarcisio Bertone)가 맡았다. 교황은 참석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력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이 자리에서 바티칸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모두에게 낱낱이 알렸다. 또 보수 세력과 개혁 세력 간의 균열을 예고했다. 그리고 현재, 이 두 세력 간의 전례 없는 균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확고하고 굳센 개혁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모두 녹음되었고, 나는 교황과 바티칸 내부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 첫 번째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나는 교황청에서 감추고 있었던 최근의 비밀들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아르헨티나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 한발 한발 내디뎠던 십자가의 길(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수난의 길로,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800m에 달하는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을 추적할 것이다. 이는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쟁이다. 전쟁터의 한쪽에는 교황의 사람들이, 그 맞은편에는 교황의 적들이 도열해 있다. 적들은 현상 유지를 원하며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한다.
회의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15인 추기경 평의회, 그리고 교황청의 재정을 관장하는 여러 기관의 장들이 참석했다. 바티칸의 중앙은행이나 다름없는 APSA(사도좌 재산 관리처)의 처장도 자리했다. 이 기관은 성 로마 교회(Holy Roman Church)의 거대한 부동산 자산을 관리한다.


바티칸시국 행정처 장관도 있었다. 바티칸시국 행정처는 박물관, 상업 활동, 건축물 및 시설의 일반적인 유지와 특별 보수, 우체국, 전화국 등을 관할하는 조직이다.


또한 바티칸의 모든 기관을 감독하는 교황청 재무심의처 처장과 종교적인 사업과 자선 활동에 배정된 자산을 관리하는 바티칸은행 회장도 있었다. 바티칸의 중요 인물들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내가 이 회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앞서 말한 녹음 기록과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한다. 나는 그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통해 긴장감이 감돌았던 회의장의 분위기, 경악한 사람들의 표정 등을 보다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녹취록을 통해 놀랍도록 단호한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대중 앞에서의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한 자리에서의 교황은 확고하고 굳센 개혁가였다. 물론 대중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프란치스코와 권력욕으로 가득 찬 교황청을 단호하게 개혁하려는 프란치스코가 같은 사람인 것은 당연하다.


프란치스코가 밝혀낸 교황청의 진실은 여느 언론의 무미건조한 보도나 띄워주기 식 기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죄가 사도 궁전(Apostolic Palaces)(바티칸 궁전 또는 교황궁.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들의 집합체로, 교황이 거주하며 집무를 보는 곳) 내부에 간직되어왔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유출된 적 없는 비밀문건


나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입수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문건들을 이 책에 직접 인용했다. 이 비밀문건들은 교회의 주요 인사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가장 최악은 종교 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부정을 저지른 경우였다. 예를 들어 시복시 성(순교했거나 특별히 덕행이 뛰어났던 이를 기리며 복자 또는 성인의 품위로 올리는 예식)을 위한 절차는 수백만 달러의 돈이 오고 가는 시장터나 다름없었다.


베드로 성금의 관리에서도 만만치 않은 부정이 일어났다. 베드로 성금이란 전 세계의 교구가 신자들의 헌금을 모아 로마로 보내는 돈이다. 가난한 자를 구호하기 위해, 교회의 목회 임무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목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기부금이 원래의 목적 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부터 돈의 경로를 재구성함으로써 이 돈이 어디로 흘러드는지도 분명하게 밝혀낼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기밀문서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바티칸의 뿌리 깊은 위선에 고통스러워했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손 놓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일상을 지켜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교회를 약속한 프란치스코와 그의 개혁을 방해하고 신망을 깎아내리는 세력 간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매일 목격한다.


나의 전작들은 여러 세기 동안 성 로마 교회를 보호해온 오메르타(omerta) (마피아 계통 조직에서 쓰이는 용어로, 외부인에게 내부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는 침묵의 계율)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나는 계속해서 바티칸의 진실을 추적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프란치스코의 혁명에 반대하는 자들을 고발 하고 몰아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나는 교황을 옹호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보다 큰 목표는 오늘날, 변화에 적대적인 교회의 지도자들과 권력 집단이 교회에 미치는 병폐를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복음의 원칙들과 상충하는 타산적인 행위들, 때로는 불법적이기까지 한 행위들을 바티칸 당국이 오랫동안 모른 체 해왔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비춰보고자 한다.


반복하건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대표적인 반교권주의로는 오직 성경에 기반을 둘 것을 주장하며 로마 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반대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운동이 있다)가 아니다. 나에게는 교회가 자행하는 모순적인 행위들을 가톨릭 신자들과 비신자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이 있다. 프란치스코의 개혁 목표는 권력과 특권을 지키기 위한 철옹성이 되어버린 교회를 가난한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안식처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2012년 5월, 나의 책 『교황 성하』가 출판되자 교황청은 예의 반계몽주의적인 태도로 나의 정보원들을 사냥하려고 했다. 얼마 안 있어 베네딕토 16세의 집사인 파올로 가브리엘레(Paolo Gabriele)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교황 성하』의 근거가 된 중요한 문건을 제공해준 나의 정보원이었다.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그는 절도죄를 선고받았다. 비밀문서의 복사본을 기자에게 제보해 바티칸 내부의 문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줬으므로 상을 받아도 모자란데 범죄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파올로는 직장을 잃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집에서도 나가야 했다. 그는 교황이 매일 얼마나 어려운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는지 알리고 싶어 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하게 된 것도 결국 한계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집사를 사면했다. 그리고 요즘도 파올로에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일자리는 구했는지, 자식들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 등 안부를 묻는다. 크리스마스에는 그의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한편 바티칸의 추기경들과 최고위급 성직자들은 기밀문서 유출이라는 전례가 생긴 이래 계속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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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상인들잔루이지 누치 저/소하영 역 | 매일경제신문사
교황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상 최악의 재정 부패 스캔들과 이에 맞서는 프란치스코의 비밀스런 개혁에 대해 폭로했다. 출간 전부터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의 폭로는 교황청의 어두운 이면을 한층 더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마치 소설처럼 흡입력 있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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