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리뷰 대전] ‘베스트 아메리칸 시리즈’
이 책,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영어권에서 출간되는 도서들을 접하다 보면 아마존 1위,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단 책들을 만난다. 유명 작가의 신작 소식도 한발 빨리 듣게 된다. 이 책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국에 번역 출간되기도 한다. 혼자 알기엔 너무나 핫한 소식들, 알려드리겠다.
‘베스트 아메리칸 시리즈’는 전년도에 북미지역(미국, 캐나다, 멕시코, 그린란드)에서 영어로 출간되었거나 해당 작가가 직접 영어로 번역한 글들을 대상으로 선별하여 매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 1915년 처음 발간된 단편선을 필두로 1986년에는 에세이가 추가 되었고 현재는 스포츠, 미스터리, 자연과학, 여행, SF 판타지를 아우르는 10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있다. 메인 편집자는 수백 개의 잡지와 온라인 매체에 기고된 글 중에 100여편을 먼저 추려내고 이중에서 게스트 편집자가 다시 25편 내외의 글을 골라낸다. 아쉽게 탈락한 글들은 마지막 장에 알파벳 순으로 소개한다. 에세이 시리즈는 메인 편집자인 로버트 애트완이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해왔고 게스트 편집자로는 매년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데이비드 브룩스 (인간의 품격),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와 같이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들이 초청 되었다.
애트완의 서문에 따르면 에세이는 불어로 ‘시도하다 essayer’ 라는 단어에서 태어났다. 1570년대 프랑스에서 몽테뉴는 기존의 문학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글을 ‘시도’했고 파격과 혁신을 뜻했던 단어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 500년을 거슬러가니 꽤나 역사가 길지만 에세이는 1980년대까지도 문학이라는 영토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처진 분야로 취급되었다. ‘샬롯의 거미줄’로 유명한 E. B. 화이트 조차 에세이스트로서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보다 한단계 아래라는 뜻으로 ‘2등시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화이트의 말을 빌리면 에세이는 자아가 강한 자들의 마지막 휴양지이며 에세이스트는 픽션, 즉 타인의 삶으로 인생을 풀어내기엔 자아가 너무 강한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아로 가득한 글은 역겨워지기 쉽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이 통찰을 거쳐 보편적인 이슈로 이어진다면 여느 픽션보다도 마음을 울리는 글이 된다. 예를 들면 ‘나이듦’, ‘이민자들’, ‘동네의 옛날 이야기’처럼 우리들이 실제로 겪는 소재들로 쓰여지는 글일 때 말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작가인 앤서니 도어는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아이다호, 한때는 남북전쟁의 요새였던 황무지에 처음 가정을 꾸렸던 남자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는 아무 것도 없던 땅에 손수 집을 지었으며 열 일곱살 아내를 데려왔고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아무 것도 없던 땅에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가는 스러져가는 집 한 채에 섬세한 상상력으로 생기를 불어 넣고 그 안 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이의 정신을 일깨워낸다.
『아웃라이어』의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부러진 사다리’를 오르는 여정을 들려준다. 그들의 조직범죄는 영화 ‘대부’에서 그려지는 것과 달리 패밀리 비즈니스의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했다. 하층민이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길은 모두 막혀 있었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정계와 경찰들을 매수하며 사회의 주류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뒷골목의 흑인과 히스패닉 아이들은 그들이 마약을 팔며 돈을 번다 해도 더 거대해진 조직과 엄격해진 법 앞에서는 교도소와 뒷골목을 오갈 뿐 그 밖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93세의 야구 칼럼니스트인 로저 엔젤은 늙고 병든 몸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손마디는 관절염으로 불거져 있고, 두 눈은 녹내장 때문에 각각의 시계가 다르다. 몇 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는 괜찮다. 그것도 썩 괜찮다. 사랑하는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내도 먼저 떠났다. 상실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꿈을 꾼다. 그리고 70, 80된 젊은 친구들과 모여 티타임을 갖고 수다도 떤다. 비록 젊은이들이 늙은이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적절한 소통을 해주지 않는 것이 거슬리지만. 나이듦과 죽음, 그 앞에 굳건히 빛나고 있는 삶과 사랑을 본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스쳐가는 글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잦다. 2015년판의 게스트 편집자인 에리얼 레비는 에세이를 쓰는 일을 생각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것에 비교했다. 읽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생각의 파편들이 휩쓸려가는 물결에 지쳤다면, 좋은 파도를 잡아 타려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선별된 글,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엮어준 글들을 읽고 싶어 이 책을 들었다면 그 정수를 마음껏 들이키는 기쁨은 당신의 것이다. 레비의 말대로 특권이라 부를만한 것이다.
The Best American Essays 2015Levy, Ariel / Atwan, Robert | Houghton Mifflin Harcourt
‘베스트 아메리칸 시리즈’는 전년도에 북미지역(미국, 캐나다, 멕시코, 그린란드)에서 영어로 출간되었거나 해당 작가가 직접 영어로 번역한 글들을 대상으로 선별하여 매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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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가 헌책방에 다녀오시면 책을 한아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보통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이었는데 몇 권이 됐든 하루 이틀이면 다 읽어버리곤 했습니다. 다 읽은 책들은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어른이 된 지금은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일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침대 옆 책상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을 몇 권 씩 쌓아 놓지만 그저 쌓여 있기만 합니다. 가끔 가슴 뛰는 책을 만나면 몇 줄 씩 읽고는 멈추고 곱씹고, 다 읽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일부러 아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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