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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야 한다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우리의 인생과 삶, 그리고 그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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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처럼 다가온 사건이 인생을 흔들어 놓아도,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을 뒤틀어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없고 항상 결정은 해야 한다.

당신의 2015년은 어땠는가?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는가? 노련하고 현명한 인생의 가이드가 있다면, 끝도 길도 모르는 막연한 이 여행을 유연하게 이끌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가? 하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길이 없는 것 같은 인생의 여정 위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고처럼 다가온 사건이 인생을 흔들어 놓아도,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을 뒤틀어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없고 항상 결정은 해야 한다. 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그런 우리의 인생과 삶, 그리고 그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2015년의 마지막 날 개봉하는 상징이 그 안에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이 영화 속에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혹은 2016년을 시작하면서 함께 생각해볼 거리가 아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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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이전의 영화와 확연히 다르지만, 인생이라는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로드 무비’라 할 수 있다. 단지 이전의 영화들이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짚는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인생이라는 큰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넓어졌다. 영화의 시작은 눈밭이다. 하얀 눈밭 아래 길이 사라졌다. 길을 되짚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의 기억이다. 기억으로 되짚어 간 길 위에 인생을 뒤덮어버리는 ‘우연’이 도사린다. 어떤 것도 계획되지 않았지만, 비극은 돌부리처럼 걸어가던 길 위에서 불쑥 솟아 누군가를 넘어뜨리고야 만다. 빔 벤더스는 그렇게 안온한 일상 속에 똬리 틀고 있다 불쑥 덤벼들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사건’을 배치한다.  주인공은 주술처럼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이라고 되뇐다. 알다시피 우리 인생은 괜찮다는 말 한 마디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어 바닥을 기더라도, 사실 진짜 죽지는 않는 것이 또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극중 토마스(제임스 프랑코)는 호숫가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아내 사라(레이첼 맥아담스)와 따로 떨어져 지낸다.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사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토마스는 눈길에 갑자기 뛰어든 작은 소년을 자동차로 친다. 사고의 죄책감에 폐인처럼 지내던 그는 사라와도 결별한다. 하지만 비극적 경험을 녹여낸 책으로 작가로서는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린다. 10년 뒤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죽은 소년의 형인 크리스토퍼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애써 덤덤한 체 살아오던 토마스는 흔들린다. 토마스의 사고는 크리스토퍼와 그의 엄마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크리스토퍼는 다시 토마스의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인가?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빔 벤더스가 무려 7년 만에 연출한 극영화이다. 빔 벤더스의 세계는 70세를 넘기며 개인의 삶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던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넓어졌다. 이 점이 혹자에게는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조금 쉽게 관객들과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조금 더 낮은 시선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비극적 사고를 겪은 후 충격과 상처를 극복해 가는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고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세 인물은 토마스(제임스 프랑코>, 사라(레이첼 맥아담스), 그리고 케이트(샬롯 갱스부르)이다. 이들은 각각 죄책감, 위로, 상실과 극복이라는 상징을 맡아 인간의 삶과 그 궤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삶 위에서 부유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속한 곳에서 길을 걸어야만 하는 토마스는 인생의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는 적당히 속물이고, 평범하게 비겁하고, 일반적으로 우유부단하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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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10년이라는 시간을 점프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얽힌 여러 사람들의 삶과 어쩔 수 없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버린 관계를 쫓는다. 잔잔하지만 영화는 줄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대하게 만드는 충돌과 사건의 가능성을 영화 전체에 관통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빔 벤더스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다소 난해하다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선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두어도 된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 대신, 삶의 궤적을 무난한 시선에서 이해 가능한 속도로 그려낸다. 이에 잔잔하고 넓은 이 작품이 빔 벤더스의 범작이라며 아쉬움을 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건’과 맞닿아 있는 소년 크리스토퍼와 토마스의 충돌과 만남,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뜬금없고 시시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서로 모른 체 하면서 10년을 지내온 두 남자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은 의외로 그렇게 간단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충돌과 만남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죄의식이라는 두통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준 처방이기도 하다.

 

우연한 사고 이외에 딱히 극적인 장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는 세계적인 배우들이 촘촘하게 메운다. 죄의식에 시달리지만 작가로서 멀쩡한 삶을 이어가는 토마스는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덧입었다.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지 않지만, 레이첼 맥아담스는 토마스의 상처를 묵묵히 안아준다. 레이첼이 가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캐릭터에 씌워져 기운 없는 영화에 활력을 안겨준다. 프랑스 배우 샬롯 갱스부르는 <안티크라이스트>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님포매니악> 등 세계적인 문제작에 출연하면서 퇴폐와 관능을 넘어선 허무와 고독, 상실을 온 몸으로 연기하는 독보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아이를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엄마이지만, 또 오롯이 그것을 극복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덧입었지만, 여전히 토마스의 태도에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나그네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어떤 것도 뚜렷하게 결정하지도 돌이킬 수도 없는 우유부단한 토마스가 어쩌면 연약하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에 가까운 것 같다. ‘모든 것이 괜찮을 거야’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죄 많은 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나마 쉬어가라는 주술 같은 소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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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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