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자신할 만한 재미 <탐정 : 더 비기닝>
<탐정 : 더 비기닝>
캐릭터 코미디에 추리 스릴러의 요소를 더하니 스릴러는 너무 긴장되어 싫고, 코미디는 너무 가벼워 싫다는 까다로운 관객의 취향도 만족시킨다. 발랄하고 재기 있고, 똑똑한 영화다.
예상대로 추석극장가는 <사도>가 휩쓸었다. 하지만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들도 있다. <서부전선>과 <메이즈 러너> 등 대작들의 틈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탐정 : 더 비기닝>은 복병 이상의 선전을 하며 추석 극장가를 웃음과 재미로 가득 채웠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국가대표>, <타짜> 등 감동과 웃음을 녹여낸 대작도 있지만, 대대로 추석에는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시리즈 같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조폭 코미디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조폭 코미디는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며 신선함을 잃어갔다. 그 틈에 <오! 브라더스>, <시라노 연애조작단>, <라디오 스타> 같은 상큼한 코미디나 드라마가 대안이 되기도 했다. 요 몇 해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필두로 <관상>이 흥행을 이으며 팩션 사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이은 <사도>의 흥행으로 내년 추석에도 묵직한 팩션 사극 한편 정도는 벌써 기획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웃음을 지운 <사도>가 너무 묵직한 이야기로 채워져 무겁게 느껴지는 틈 사이 <탐정 : 더 비기닝>은 가벼운 웃음 뒤에 육아와 부부 생활이라는 생활 밀착형 이야기와 끝까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추리극의 요소를 버무려 추석 강자가 되었다.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흥행세는 가속도가 붙었다. 캐릭터 코미디에 추리 스릴러의 요소를 더하니 스릴러는 너무 긴장되어 싫고, 코미디는 너무 가벼워 싫다는 까다로운 관객의 취향도 만족시킨다. 발랄하고 재기 있고, 똑똑한 영화다.
대만(권상우)는 미제 살인사건 프로파일링을 하는 동호회 회장이자 자칭 파워 블로거이다. 어이없는 일로 경찰시험에 떨어진 그는 수사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아이의 무능한 아빠이자 낡은 만화방의 주인이다. 강력계 형사 준수(박해준)와의 친분을 이용해 경찰서 주위를 맴돌면서 잃어버린 꿈을 계속 그리워한다. 광역수사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좌천되어 후배 밑에서 일을 하게 된 베테랑 형사 태수(성동일)에게 대만은 귀찮은 존재이다. 어느 날 태수의 관할구역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용의자로 지목당한 것이 준수이다. 대만은 친구가 누명을 쓴 거라며 수사를 시작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후배에게 무시당하는 태수는 진범을 찾기 위해 대만과 손을 잡는다. 영화는 별 볼일 없는 만화방 주인 대만과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 태수라는 캐릭터가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꽤 요약해서 잘 보여준다. 문제는 캐릭터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들의 조합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케미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합이 잘 맞는다. 최근 작품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권상우는 찌질하지만 절대 얄밉지는 않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청춘만화>의 초창기 캐릭터로 되돌아가면서 한결 가벼워 졌다. 그 시절 영화 속 캐릭터가 나이 들어 지금의 대만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실생활에서도 아빠인 권상우 개인의 육아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귀엽고 철없는 아저씨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코믹하지만 정감 있고 든든한 아빠 역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성동일은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로 돌아와 늘 제 몫 이상을 하는 타고난 순발력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들의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권상우와 성동일에게 보길 바라는 모습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는 순간 대만에게(혹은 권상우에게) 겹치는 멋있음과 순간순간 헐랭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태수라는 단단한 캐릭터(혹은 성동일이라는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두 사람이 보여주는 화학작용은 단순한 캐릭터 코미디 이상으로 정감이 있다. 여기에 육아와 가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까지 배치하며 생활밀착형 코미디를 섞어 주부와 아빠들의 공감대도 잘 아울렀다.
장점은 또 있다.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후면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코믹한 이야기와 함께 탄탄하고 세밀하게 잘 얽혀있다는 점이다. 연쇄 살인사건의 단서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반전의 고리를 엮어가는 방식이 정통 스릴러 못지않게 치밀하고 재미있다. 2010년 이선균과 최강희의 조합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쩨쩨한 로맨스>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김정훈 감독은 직접 쓴 각본을 통해 그 동안 쌓였지만 풀어내지 못했을 이야기에 대한 허기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쩨쩨한 로맨스>는 등단도 하지 못한 만화가 지망생과 섹스 한번을 못했지만 섹스 칼럼을 쓰는 여자라는 미성숙하고 어설픈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었다. 사회적으로 움츠려있는 약자들을 찌질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고 애정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며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섞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덜 자란 남녀의 진지한 성장 이야기이기도 했다. 직접 각본도 쓰는 김정훈 감독은 코믹 수사 스릴러 <탐정 : 더 비기닝>을 통해 장르의 교배 속에 신선한 이야기를 섞어낼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 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솔직히 영화에 ‘더 비기닝’을 쓰는 경우는 앞선 이야기들이 아주 잘 알려진 시리즈의 프리퀄일 경우가 많다. <탐정 : 더 비기닝>은 제목 그대로라면 대만과 태수가 콤비 탐정이 되는 과정을 그린 첫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에필로그에는 추후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녹여냈다. 제법 유연하게 안착했고, 두 번째를 위한 도약을 해도 좋을 만큼 호감도가 높아 정말 시리즈 영화로 다시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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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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