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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읽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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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었는지 어떤 인간이었는지, 평생을 관통하는 정확한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책 만드는 인간’으로서 책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감동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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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길을 찾기보단 짧고 빠른 즐거움을 얻기 위해 더 분주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수많은 글자들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합니다. 빛의 속도로 살아야 하는 스마트한 시대에, 독서가 잊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운명 같은 책을 만나고 그 책들을 평생의 스승으로 여기며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는 『읽는 인간』이라는 책을 만든 에디터 장보라입니다.

 

어떤 책은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읽는 인간』은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들려주는 ‘내 인생의 책’에 관한 고백입니다. 1957년에 등단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탁월한 작품을 집필해온 작가는 이 책에서 ‘평생에 걸쳐 읽어온 보물 같은 책’들을 회고하며, 오직 책으로 살아온 인생을 강렬하게 담아냈습니다.

 

작가는 학창시절 엘리엇과 오든, 포의 명시를 접하면서 문학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그 아름다운 표현과 감각을 익히기 위해 책을 보며 혼자서 치열하게 훈련하기도 하죠. 또『신곡』『오디세이아』 같은 고전들로 생의 고통을 승화시켜나가는 모습도 그려냅니다.

 

저는 어린 소년 시절의 오에 겐자부로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한 구절을 삶의 지표로 설정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옥으로 갈지언정 친구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헉의 다짐을, 작가는 앞으로 평생 지켜나갈 자신만의 방침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소년 오에 겐자부로의 이러한 결단은 어쩌면 깜찍하고 또 사뭇 비장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최초로 정했던 결정적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책을 통해서 말이지요.

 

가장 정확한 표현을 추구하며,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대작가의 책을 독자들이 좀 더 친밀하게 접할 수 있도록, 에디터인 저와 번역자 선생님은 고군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도 다듬는 작업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드는 순간순간, ‘책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이토록 굳건하게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마저 생겼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오에 겐자부로는 ‘읽는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죠.

 

어떤 삶이었는지 어떤 인간이었는지, 평생을 관통하는 정확한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책 만드는 인간’으로서 책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감동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근사한 추천사를 써주신 정혜윤 피디님의 글을 대신 전하려 합니다.

 

『읽는 인간』을 깊게 읽는다면 책과 우정을 맺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것과 사는 것의 연결,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연결. 더 잘 읽을수록 더 잘 느끼고 더 잘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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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쯤 간단하지 않을까.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니, 우메자와 리카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다고 해서 죽는다는 건 아니고 완벽하게 행방을 감춘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면서도 이곳까지 왔다. 방콕 중심가만큼의 발전도 소음도 없고 도시 자체도 소규모였지만, 관광객이 많고 긴 여행 끝에 정착한 분위기의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숲을 이루고 있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 틈새에 끼여서 시내 복판인데도 절이 있었다. 밤에는 날마다 거대한 노천시장이 열려, 장사꾼도 관광객도 터질 듯한 빛 속을 황홀한 표정으로 걸어다녔다. 그런 가운데 리카는 관광을 하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걸었다. 젊은 유럽인 커플이 노천 가게 앞에서 티셔츠를 구경하고 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액세서리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팔찌며 목걸이를 고르고 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이 코끼리 장식품을 둘러싸고 흥정하느라 침을 튀기고 있다. 랩스커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포장마차의 네모난 그릇에 담긴 반찬을 가리키고, 비닐에 담은 반찬을 받아들였다. 시부야 언저리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차림의 이 지역 여자아이가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 향시료와 기름과 타이 쌀 냄새가 마을 뒤덮듯이 떠돌고 있다. 사람이 많기로 말하자면 방콕이 앞도적이지만, 그래도 리카는 그 도시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흠칫거렸고, 대부분을 축축한 게스트하우스 방에 틀어박혀 지냇다.


-  『종이달』 (가쿠타 미츠요/예담)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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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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