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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일상 속 섬뜩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리얼 서스펜스
『종이달』
범죄라는 환부를 통해 일상의 섬뜩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의 스타일은 이 작품 <종이달>에서 더욱 치밀하고 날카로워졌다.
1. 오프닝
구름을 떠나온 첫 음이 지상에 도착합니다.
침묵을 가르는 최초의 타건처럼,
빗방울이 마른 땅을 두드립니다.
여름비는 대지와 공중에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나탑니다.
비냄새가 자욱이 올라옵니다.
건조한 날들 뒤에 오는 비, 거기서 나는 특유의 냄새.
먼지냄새 같기도 하고 흙냄새 같기도 한 그 독특한 냄새에
과학자들은 ‘페트리커(petrichor)’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죠.
페트리커. 그리스어로 ‘바위’(petros), 그리고
‘신의 혈관 속을 흐른 액체’(ichor)라는 말을 합친 거라고 하는데요.
액체와 고체, 하늘과 땅이 만나고 엉키고 섞이면서 나는 냄새,
그 냄새는 잠들었던 어떤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비에 젖은 것들이 색깔과 무늬가 선명해지는 것처럼요.
‘음악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빗소리는 그 자체로 음악이지요.
그 빗소리를 홑이불처럼 덮고 잠들어보기도 합니다.
그 빗속에 도라지꽃이 피고
백일 동안 붉기로 작정한 여름꽃들도 피어납니다.
먼 산마을엔 개울물이 불어서
소녀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8월이네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책, 임자를 만나다' 이번 시간에서는 일상을 재조명하는 농밀한 심리묘사의 대가 가쿠다 미쓰요의 작품 『종이달』을 다룹니다. 우연한 일탈을 계기로 깊은 범죄에 빠져든 평범한 주부의 내면을 추적한 서스펜스 작품이죠. 이 작품은 잘짜여진 스토리는 물론이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다루는 모습도 굉장히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인데요, '책, 임자를 만나다'시간에서 본격적으로 가쿠다 미쓰요의 문학세계, 그리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야기도 곁들여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온한 일상 속 섬뜩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리얼 서스펜스
1) 책 소개
일상을 재조명하는 농밀한 심리묘사의 대가 가쿠다 미쓰요의 최신작 『종이달』이 예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쿠다 미쓰요는 20년 넘게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나오키상, 가와바타 야스나리상, 중앙공론문예상 등 일본의 주요문학상을 석권해왔다.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한 이번 작품은 범죄와 일탈에 빠져들어가는 평범한 주부의 어두운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한 서스펜스로, 2014년 1월 NHK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최근 미야자와 리에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숨 막힐 듯 팽팽한 묘사와 전개로 일상의 균열이 어떻게 범죄로 치닫게 하는지 대담하게 포착함으로써 그간 가쿠다 미쓰요 작품 중에서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2004년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 악의와 증오를 테마로 한 단편집 『죽이러 갑니다』, 유괴사건을 다룬 『8일째 매미』 등에서 가쿠다 미쓰요는 범죄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범죄라는 환부를 통해 일상의 섬뜩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의 스타일은 이 작품 『종이달』에서 더욱 치밀하고 날카로워졌다. 고객의 돈을 조금씩 착복하다 급기야 거액의 횡령으로 이어져 해외로 도주하게 된 은행 계약직 여성의 회상.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물의 허무한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불안의 정서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주인공은 왜 범죄를 저질러야 했을까?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 역시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 속에 아무렇지 않게 묻어두었던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아를 들춰보게 된다.
2) 저자 : 가쿠타 미츠요
가나가와 현 출생.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졸업. 1990년 『행복한 유희』로 카이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1996년 『조는 밤의 UFO』로 노마문예신인상, 1997년 『나는 너의 오빠』로 쓰보타 조지 문학상, 『납치여행』으로 1999년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 후지 텔레비전상, 2003년 『공중정원』으로 부인공론문예상, 2005년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상, 2006년 『록 엄마』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2007년 『8일째 매미』로 중앙공론문예상, 2012년 『종이달』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드라마』 『납치여행』 『굿바이 마이 러브』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프레젠트』 『틴에이지』 『죽이러 갑니다』『내일은 멀리 갈 거야』 외 많은 작품이 있다.
◆ 133-134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저/조석현 역 | 이마고
다음 '책, 임자를 만나다'시간에서는 뇌신경이 손상되어 '기이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전해드립니다. 투렛 증후군, 파킨슨병, 위치감각상실 등 신경장애의 임상사레들에 관한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환자들의 투병 과정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이 저서를 '책, 임자를 만나다'에서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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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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