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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뢰크와 천국

악마와 지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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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선으로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타자에 대한 생각은 중근동의 그것보다 또렷하고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적 타자를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악마이다. 따라서 악마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면 중근동의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건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투쟁을 선으로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타자에 대한 생각은 중근동의 그것보다 또렷하고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적 타자를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악마이다. 따라서 악마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면 중근동의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건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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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루시퍼〉(왼쪽)는 악마를 상징하는 사탄의 우두머리로 이 그림은 구스타프 도레가 그렸다. 적대적 타자를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악마(가운데)는 중근동의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건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그림은 불가리아 릴라 수도원의 프레스코 세부로 악마를 표현하고 있다.

 

기존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 즉 서리거인들, 지하 세계의 난쟁이들과 트롤Troll 과 같은 존재들은 악과 악마에 대한 대중적인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에서 작은 악마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지옥을 뜻하는 헬Hell은 북유럽 신화에서 악마의 대표 이미지인 로키Loki의 딸이었다. 헬은 상체는 여자이지만 하체는 썩은 뱀의 몸을 하고 있는 존재로 지하 깊은 동굴에 있는 죽음의 공간을 지배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지옥과 만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지옥의 모습도 유럽에 건너오기 전에는 이집트를 연상시키는 뜨거운 유황 지옥의 성격이 강했다면 유럽으로 건너온 이후에는 차가운 얼음 궁전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신곡』을 저술한 단테가 기술한 지하 세계는 얼음이 뒤덮인 추운 황무지였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유입으로 유럽의 신들 또한 악마와 연관되어 이야기를 장식하는 존재들로 변했다. 대표적으로 북유럽의 최고신이었던 오딘은 ‘난폭한 사냥꾼’과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한편으로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과 서리거인들이 때로 익살스러운 관계로 등장하는데 그 성격이 그대로 신과 악마, 인간과 악마의 관계에 투영되었다. 악마의 희화화가 그것이다. 독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하나 살펴보자.

 

독일 사람들은 낮은 지대에 많은 바위들이 거인이나 악마와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즉 악마의 신발에서 떨어진 티끌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농부 하나가 아직 개간되지 않는 땅을 경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그 땅을 소유하고 있는 악마가 나타나 수확한 것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농부는 위를 가질 것인지 아래를 가질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악마가 위를 요구하면 순무를 심고 아래를 요구하면 밀을 심었다. 악마는 번번이 쭉정이만 챙겼을 뿐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책으로 엮을 수 있을 만큼 많다. 또한 훗날 독일의 거장 괴테Johann Wolfgang Von Goothe가 악마와 영혼을 놓고 거래한다는 내용을 담은 『파우스트Faust』를 쓸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그것은 악마인 서리거인을 놀리고 희화화하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가 악마의 관념이 그리스도교를 통해 이식되자 그대로 악마에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에서 받아들인 절대 신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절대적인 힘을 신이 있기에 악마를 희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외형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관념에서도 그리스도교는 기존에 유럽에서 믿고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수용했다. 북유럽 신화 특유의 종말, 즉 라그나뢰크는 그리스도교의 최후의 심판과 어울리며 선과 악의 대결에서 밝은 빛을 상징하는 선이 승리한다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이런 생각이 막연하고 엷었던 구원에 대한 생각을 더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친숙한 그리스도교는 예수 당시의 본래적인 모습이 아니라 상당 부분 유럽화한 모습이다. 그것은 교류 과정에서 동양에 전해진 그리스도교가 대부분 유럽의 것이기에 그렇다.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전혀 다른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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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덕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화 읽어주는 남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신화》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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