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권계현의 영국 영어 이야기
영어에도 사자성어가 있다
봄날은 간다... Carpe Diem
봄날의 정취는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심히 운전대를 잡고 가다가 신호등에 멈춰 섰는데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어오자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에, 문득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하는 그런 계절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워하는 부분은 한글의 구조나 쓰임새, 발음이 아닙니다. 사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 당시 백성을 위해서 쉽고 간단하게 만든 과학적 표기체계이기 때문에 이를 익히는 것은 그 어느 언어보다 쉽고 합리적입니다. 그보다는 한국어 어원의 상당수가 중국어 한자에 있고 70% 이상이 한자로 표기될 수 있는 '한자어'라는 것이 한국어 학습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원적 이유 때문에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를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어휘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어휘는 사회의 지도층이나 식자층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전유물처럼 쓰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일종의 사회적 계층을 표현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한자어, 식자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일종의 '언어적 진입장벽(language barrier)'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호사나 판검사들이 쓰는 법률용어를 살펴보면 거의 90% 이상이 한자어입니다. 예컨대 법률행위가 완벽하지 못하여 문제가 있는 경우, 간단하게 법률행위의 '흠'이라는 좋은 우리 말이 있음에도 이를 '하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법률행위의 하자이론'이라고 명명하고 일종의 'jargon(특정 분야의 전문ㆍ특수 용어. 부정적인 뉘앙스로 주로 쓰임)'으로 법률가 사이에서 통용되며, 이러한 말들이 일반인에게는 일단 어렵게 느껴지므로 결과적으로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로 앤 오더 영국판>의 TV 스팟. 법률, 사건 용어 등을 접하기에 좋은 인기 드라마
동양에는 한자, 서양은 라틴어
영어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영어는 지난번 칼럼에서 설명한 것처럼 'Anglicising(영어화)'의 영향으로 많은 외래어를 도입하여 일반적 어휘수만 60만 단어가 넘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 기저에는 순수 영어가 아닌 많은 외국의 언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따라서 영어 정복의 한 단계로서 우리의 사자성어나 고사성어처럼 영국인, 미국인도 이러한 어휘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영광이 가득한 고대 시대에 영국 브리튼섬까지 진격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그대로 전파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로만어, 즉 라틴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말이 영어에 많이 있고 특히 몇몇 그룹의 언어는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언어로 영어 발전의 굴곡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Carpe Diem, ad hoc, status quo 등은 이제 우리 귀에도 익숙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Carpe Diem
이 말은 영어로는 'Seize the Day', 직역하면 '그 날을 잡아라' 내지는 '점령하라'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적 뜻은 '지금 처해있는 당일 즉 현재를 즐기고 자기 것으로 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원래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는,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의 한 구절인데 영어로 풀어보면 'urge someone to make the most of the present time and give little thought to the future', 즉 '오늘을 잡아라,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라는 뜻이 됩니다.
status quo
'the state in which'의 의미로 '현재의 상태'를 뜻하며 특히 사회, 정치적 상황에 입각한 현 상황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신문이나 사설, 논문 등 비교적 학술적 표현에 많이 등장하는 이 어휘는 그 사용법이 당초의 사회정치적인 내용 이외의 영역에도 확장되고 있는 듯 합니다.
'He has a great interest in maintaining the status quo.'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ad hoc
이 말은 라틴어로 'to this'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말로 보자면 '임시방편의', '즉흥적인'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영어로는 'created or done for a particular purpose as necessary'라는 뜻입니다. 그 용례를 보면 'the decisions were on an ad hoc basis' 또는 'the group was constituted ad hoc.' 등이 있습니다.
라틴어 다음으로 우리의 사자성어나 고사성어처럼 식자층의 언어로 인식되는 어휘는 프랑스어에서 기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철학, 과학, 사상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배출되던 시기에 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프랑스어가 영어 어휘로 편입되었고 특히 프랑스어가 외교가의 핵심언어로 떠오르면서 이러한 현상이 강화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fait accompli'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기정사실'이라고 번역되며 영어로는 'fact accomplished'입니다.
'The results were presented to shareholders as a fait accompli.'와 같이 쓰입니다.
많이 쓰이는 표현은 꼭 알아두자
사실 영어라는 언어가 이렇게 확장되는 현상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이 있고, 쉬운 단어가 있는데 굳이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고 이해하여야 하는지 회의가 들 수도 있겠지만 이는 엄연한 언어사회학적인 현상이고 현실입니다. 진정으로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까지도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 영어를 공부하다 이러한 어휘와 마주치는 경우 '이게 뭐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 말고, 언어 표현의 다양성과 역사적 유래에 대하여 보다 흥미롭게 다가간다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Today's Choice]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50년대 미국의 매우 보수적인 남자사립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로 인해 권위에 억눌린 채 자유를 빼앗긴 학생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우려 했던 키팅선생의 노력과 희생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작년 여름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의 눈빛을 다시 보니,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공부든 운동이든 사랑하는 이를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든... 무엇이든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행동에 옮기세요. 미룬다는 것은 현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삶의 실체는 오직 '현재(Present)'입니다.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이 되었다.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영사, 주네덜란드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2013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법률의제 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홍보팀 상무, 글로벌 스포츠마케팅담당 상무를 거쳐, 현재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전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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