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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아티스트 이은결

“과연 이 시대에 마술이라는 단어가 맞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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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걸어온 마술사의 길, 마술의 개념과 그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퍼포먼스, 그리고 그것을 잘 엮은 스토리텔링에 팔짱 끼고 무대를 보던 기자는 급기야 마술사 이은결 씨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충무아트홀에 찾아가 직접 만나 보았죠.

‘마술(魔術)’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재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임. 또는 그런 술법이나 구경거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술(藝術)’이나 ‘미술(美術)’과 같은 ‘꾀 술(術)’ 자를 사용하는데 어째 그 어감은 상당히 다른 것 같네요. 어쩌면 이 다름이 마술사 이은결 씨가 지금껏 부수고자 노력했던 무엇, 그리고 그의 공연 <디 일루션(THE ILLUSION)>은 그렇게 좁혀진 간극의 결과물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마술에는 큰 관심이 없는 기자는 이른바 매직 콘서트도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는데요. 이은결 씨의 공연을 보고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냥 스타 마술사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좋은 스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그의 무대에 있었다고 할까요? 19년 동안 걸어온 마술사의 길, 마술의 개념과 그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퍼포먼스, 그리고 그것을 잘 엮은 스토리텔링에 팔짱 끼고 무대를 보던 기자는 급기야 마술사 이은결 씨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충무아트홀에 찾아가 직접 만나 보았죠.

 

[2015 이은결 더 일루션_The Illusion] 사진자료 (2).jpg

 

<디 일루션>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패션 쪽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처음으로 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정말이지 그런 적이 없는데, 요즘은 좋아하는 의상을 보면 미칠 것 같아요. 사고 싶어서(웃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코디한 이은결 씨의 평상복 차림이 무대 의상보다 화려해서 패션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고 했더니 의외의 너무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네요. 멋진 스타일에 키도 크고 손가락도 길고, 마술사로서 무대에 서기에는 유리한 조건입니다.


부모님이 저한테 많은 혜택을 물려 주셨죠. 데뷔 초 세계 대회에 나갈 때만 해도 한국인이 저밖에 없어서 생소하게 쳐다보거나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다행히 키는 꿀리지 않아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죠(웃음). 그런데 단점도 무척 많아요. 특히 발음이 너무 안 좋아서 고생했죠. 단점도 많지만 보완하려고 노력했어요.”

 

<디 일루션>은 201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은결 씨의 브랜드 매직 콘서트입니다. 올해 특별한 콘셉트가 있을까요?

 

“지금 프로그램 대부분이 2010년에도 있었는데, 그동안 다른 데로 달려가다 이번에 다시 살려낸 거예요. 지난 4~5년 동안 <디 일루션>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죠. 매번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는 걸 담아낼 수 있을까?’를 계속 올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디 일루션>은 저의 일부분이지 전체는 아니에요.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시험하고 싶었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기 위한 공연이라서 좀 욕심을 부리긴 했어요.”

 

마술사 이은결 씨가 걸어온 19년의 길, 자연스레 마술의 변천까지 담김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도 굉장히 잘하셨고요. 그 안에 결국 담고 싶었던 얘기는 뭘까요?


“제가 생각하는 마술, 마술에 대한 전체적인 정의라고 할까요? 사실 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버려야 할 시기라고 느꼈거든요. 마술사 중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마술이라는 장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 반대편에 있죠. 예전 사람들이야 마술을 실제로 믿었지만 언젠가부터 신비주의가 깨지면서 새로운 콘셉트의 마술이 생겨나고 있어요. 저는 반신비주의 마술사라서 늘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어요. 과연 이 시대에 마술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인가... 이제 마술을 마법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마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일루션’이라는 단어예요.”

 

이은결 더 일루션 (3).jpg

 

3시간 가까운 공연을 짜임새 있게 채우려면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셨네요?


“그런 고민에서 <디 일루션>을 만들게 됐어요. 마술이 아닌 것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술이 아닌 걸로 끝나야 확장될 수 있다! 사실 2부에 보면 마술이 아니잖아요. 어린이 관객과 함께 하는 무대에서 곰 인형이나 로봇이 등장하는 건 마술적인 효과가 전혀 없어요. 또 제가 핑거 발레 등을 할 때는 아예 어떤 장치도 없고 비밀도 없다고 말씀드리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마술사인 제가 하니까 그림자 마술, 손가락 마술이라고 부르죠. 완전 정반이거든요. 1부에서는 마술을 정으로 두고, 2부에서는 반으로 가는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덕분에 단순한 매직 쇼가 아니라 종합예술, 마술사가 아니라 기획에서 퍼포먼스, 진행까지 하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에서 시작한 건데 마술사를 공부했어요. 왜 사람들은 마술을 좋아할까, 왜 계속돼야 하나,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그런데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미술사까지 공부했는데 연결되는 것들이 보이면서 재밌는 거예요. 미술사만 봐도 미술이 주술의 영역일 때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창작의 예술이 되면서 가치를 갖게 됐잖아요. 사실 그전까지 무대가 제 재능을 뽐내는 자리였다면 <디 일루션>은 저한테 첫 작품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지표예요.”

 

이은결 씨가 처음 마술을 할 때만 해도 국내의 경우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것은 상상도 못했잖아요. 마술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 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마술콘서트라는 장르가 생긴 건 정말 좋았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술에 대한 이미지가 싫어서 그걸 깨보려고 매직 콘서트를 만든 거였는데. 그런데 전 세계 공연, 내로라할 마술쇼를 다 보고 다녀도 쇼잉은 많은데 정작 작가의식을 갖고 있는 마술사나 주제의식이 담긴 공연은 없다는 게 의아했어요. 이런 얘기를 해외 마술사들과 하면 대부분 놀라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 같아요.”

 

사실 해외에서는 과거의 방식대로 쇼를 해도 관객들이 찾지만, 국내 관객들은 워낙 마술에 대한 편견이 좋지 않아서 그걸 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더 발전했던 게 아닐까요?


“맞아요, 정확히 얘기하면 국내 관객의 편견을 깨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국내 팬들에게 빚을 지고 있죠. 지금껏 제 공연을 봐주셨잖아요.”

 

트위터를 보니까 ‘나 혼자 산다’ 촬영을 하셨던데, 마술사가 개인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예전에는 쉽지 않았죠. 저는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마술사는 이래야 해!’라는 게 강했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한번 깨지고 나니까, 누군가 ‘어쨌든 가짜지?’라고 물으면 ‘마술이에요!’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네, 가짜예요!’라고 말해요. 신비주의를 고수해야 마술은 더 잘 돼요. 그건 불변이에요. 하지만 저는 반대적인 마술을 만들려고 해요. 누가 봐도 거짓말이지만 픽션 자체를 재밌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느끼면 된다고 생각해요. 조르주 멜리에스라는 마술사는 영화에 픽션을 도입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취한 방법으로 가다 보니 영화는 종합예술이 됐잖아요. 현대 영화야 말로 마술의 미래상에 있어 가장 좋은 방향성이 아닐까 해요.”

 

이은결 씨의 본인의 꿈과 환상은 뭔가요?


“5년, 10년 안에 그동안 생각했던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대중적인 작품으로 시작할 수가 없어서 실험을 계속 해야 해요. 세상 어느 장르에도 끼지 않는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어요. 또 일루션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장르를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 집을 지어서 평생 동안 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찾아 왔을 때도 그대로 있는 그런 집이요.”

 

이은결 더 일루션 (4).jpg

 

그동안 이은결 씨의 매직 콘서트를 본 관객들은 상당히 많겠죠? 여러분은 어느 부분이 가장 재밌었나요? 객석에 앉은 기자에게도 모든 퍼포먼스가 신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1부보다는 2부에서, 특히 핑거발레나 그림자 퍼포먼스를 볼 때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아, 이 사람은 마술사가 아니라 아티스트구나. 어쩌면 팔짱 끼고 신기한 마술쇼나 보던 기자에게도 이은결 씨가 담고 싶던 작가의식이 보인 것이겠죠? 신기한 마술은 다른 마술사들도 하겠지만, 짜임새 있는 연출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은 창작의 영역이니까요. 이은결 씨의 <디 일루션>은 4월 12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됩니다. 앞으로의 마술은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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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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