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오직 방 한 칸을 배경으로 삼는다.(그 한 칸도 다 사용하지 않는다) 단 두 사람만 등장하며, 그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다. 시속 130 킬로미터 급행열차에 뛰어들려한 백인 대학교수(이하 백)과 그를 구해낸 흑인 목사(이하 흑)이 주인공이다.
대화를 이끄는 것은 흑이다. 백은 대화를 원치 않는다. 130여 페이지의 이 짧은 소설에서 백이 도대체 몇 번이나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지 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많은 거부에도 불구하고 흑은 대화를 이어간다 "전략적으로, 길게". 마지막 열차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백을 놓아줄 셈이다.
흑의 설득에도 백은 완강하다. 백은 삶이 고통스러워 죽으려는 게 아니다. '세계가 무의미해서' 죽으려 한다. 인간의 지성, 문화를 믿었던 그는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이 쌓아올린 세상의 처참한 모습에 그 어떤 행위도 무가치할 뿐 세상은 무너지게 되리라 믿는다. 흑은 백의 논리에 어지럽다. 흑이 흑인 게토에서 마주한 많은 이들은 세상이 어지럽고 삶이 고통스러워도 살려고 한다. 일상의 행복이나, '모든 일엔 의미가 있을거'라는 믿음이 그들을 지탱한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백의 '우아한' 이유가 죽음의 근거라고 믿겨지지 않는다. 끝내 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
흑인 목사와 백인 대학교수라는 구도는 당연히 의도적이다. 이 구도와 함께 흑이 백을 설득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매카시가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서구 혹은 상층(백인) 지성주의(교수)가 쌓아올린 근대문명의 붕괴를 비서구 혹은 하층(흑인) 문화나 종교(목사)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실제로 백은 '오늘의 세상'에 겹쳐진다. 흔들림없이 죽음이란 결론을 밀고가는 백과 망설임없이 붕괴되고 있는 세상. 흑은 과연 이 세상을 설득해 결과를 뒤바꿀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세상이 가능할까?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백은 마침내 방에서 나간다. 흑은 예수님을 향해 독백한다. 둘의 대화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나는 대체로 매카시의 결론에 동의한다.
선셋 리미티드코맥 매카시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 시대 최고의 거장 코맥 매카시. 그의 작품은 출간될 때마다 어김없이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받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면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이 앞다투어 출연하려 한다. 그는 명실공히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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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저/<정영목> 역9,9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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