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이웃의 고통이 내 일처럼 아프게 느껴질 때
『창밖의 사람들』 (올리비에 두주 글. 그림. 낮은산)
누구나 추위 때문에 전단지를 받지 않고 길을 지나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안타까운 1인 시위자의 항변 앞에서 1분이 소요되는 서명을 외면한 적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는 닭장집이라고 흉보던 시절이 있었다. 성냥갑 같은 곳에서 답답해 어떻게 사람이 사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성냥갑이 거의 사라진 지금, 아파트는 도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주거지다. 그리고 단독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겪는 중요한 변화는 내가 없어도 집을 지켜주는 경비 인력과 공동 시설을 관리해주는 관리 인력이 있다는 것이다. 전세대가 다 같이 약간의 공용 관리비를 나누어 부담하고 공공의 일을 맡긴다. 아파트도 집이고 드나드는 길도 골목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비를 담당하는 분들은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 이전에 늘 마주치는 이웃이다. 추위에 더 추운 곳에서 더위에 더 더운 곳에서 일하면서 살림살이의 곤란을 돌보아주는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도 많다.
얼마 전 어느 아파트에서 경비원 한 분이 목숨을 버리고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이 아파트의 가혹한 노동 환경과 일부 주민들의 집요한 멸시를 견디기 힘들어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방범 스위치가 잘 가동되고 있는지 점검하듯이 그를 닦달하고 개에게 던지듯 먹고 남은 음식을 떨어뜨렸다는 제보도 보도되었다. 죽음을 걸고 인간적인 대우를 호소했던 그 경비원은 마침내 숨졌으며 문제가 되었던 주민은 장례식장에 찾아와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민 대표자회의는 ‘아파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경비 용역 회사 전체를 바꾸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들려오는 상황은 냉정하다. 사회 전체가 타인의 아픔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고통맹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높다.
누구나 추위 때문에 전단지를 받지 않고 길을 지나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안타까운 1인 시위자의 항변 앞에서 1분이 소요되는 서명을 외면한 적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은 많지만 걸음을 멈추는 일은 작아도 어떤 결심을 요구한다. 올리비에 두주의 『창밖의 사람들』은 이웃의 고통을 눈 감고 귀 막고 슬쩍 지나쳐온 우리의 덜미를 확 잡아채는 강렬한 그림책이다.
책 속 이야기는 하얗게 성에가 낀 겨울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린 얼굴이 겨울밤 골목을 내려다보며 시작된다. ‘창문 안쪽에 그려진 착한 사람’은 눈과 심장이 있지만 볼 줄도 느낄 줄도 모른다. 이 사람이 건조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창문 바깥에는 ‘손가락까지 꽁꽁 얼어 돌덩이처럼 굳은 몸으로 쓰레기통 사이에서 꿈을 꾸는’ 또 다른 착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신음은 두툼한 창문이 가로막고 있어서 잘 들려오지 않는다. 다만 어두컴컴한 창문 밖 착한 사람의 형체는 그가 어떤 고통에 놓여있을지 마음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묵직하다. 그러나 ‘창문 안쪽의 착한 사람’은 자신도 밖에 내던져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창문 바깥의 서러움을 외면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은 1970년 11월 13일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세상을 향해 던졌던 말이다. 44년이 흘렀고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의 모습은 여러모로 그 무렵보다 풍요롭다. 하지만, 그 외연적 풍요가 절박한 목소리의 부재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 높고 날카로운 볼륨으로 외쳐도 전달되지 않는 두툼한 이중창으로 이웃의 고통과 나 사이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는 이 그림책에서 창 안의 사람과 창 밖의 사람 모두를 ‘착한 사람’이라고 명명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착한’이라는 말은 더없이 무기력하게 들린다. ‘사는 게 바빠서’, ‘나도 어려워서’, 또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로 종종 정당화하곤 했던 이웃을 향한 얼음장 같은 행동이 떠오른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을 외면하고 그 사이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그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창안의 사람들’이면서 곧 ‘창밖의 사람들’이다.
몇 년 전 프랑스의 클리스수부아에서는 이민자들의 큰 소요가 일어난 적이 있다. 지역민의 절반가량이 대물림해온 실업자였는데 도화선이 된 것은 같은 도시의 이웃들이 이들 극빈층에게 보여왔던 노골적인 멸시였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어느 정도의 생존은 유지해주고 있었지만 이웃으로부터 겪는 냉대와 모욕은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아씨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에게 내 허리를 굽힐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수준으로 나를 들어 올려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동네 어귀 쌀집주인에게도 인사하고 우편배달 자전거만 만나도 인사하고 배달 청년을 만나도 인사하듯이 날마다 얼굴을 보는 경비원과 입주자는 신뢰와 반가움으로 대하는 세상이 자연스럽다. 서로 이웃의 아픔을 내 일처럼 느낄 수 있다면 혹한이더라도 견딜만할 것이다. 이 그림책은 내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한다. 각박한 삶에 잠시 망가졌던 공감의 세포를 복원하고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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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일곱 가족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작가와 화가들이 쓰고 그린 것이다. 간병인, 시간 강사, 계약직 방송작가, 마트 계산원, 편의점 알바 청소년, 화물 노동자, 계약직 공무원 등 직업도 다 다른 책 속 이웃들은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동화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그냥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노동은 ‘일하러 간다’는 말로 불려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일터가 어떤 곳이며 그들에게는 어떤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차분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정규직’이거나 ‘공무원’일만큼 안정된 고용이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나와 이웃의 삶을 살펴보고 손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알차고 정직한 동화집이다.
창밖의 사람들올리비에 두주 글/이자벨 시몽 그림/박희원 역 | 낮은산
사회적 빈곤을 소재로 한 이 그림책으로 유아에서 어른까지 폭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는 그림책으로, 개성 있고 실험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르 루에르그(Le Rouergue)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그림책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유럽의 여러 도서전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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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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