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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봄날>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어떻게 운명을 그릴까
운명적 사랑의 결말은?
두 드라마가 제공하는 낭만적 환상이 단지 신데렐라 판타지에 머무르지 않길 빈다. 운명적 사랑을 그린 또 다른 좋은 드라마가 되길. 단조롭고 식상한 이야기 속에서도 그 이상의 공감과 즐거움을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본 적 있는지. 주인공 인우(이병헌)는 충격과 갈등 끝에 자신의 제자 임현빈(여현수)이 태희(이은주)의 환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번지점프대 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우는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운명적 사랑을 그리는 영화의 결말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대사였다.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불문하고 당신만이 오직 내 운명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_ SBS
최근 방영을 시작한 두 드라마 MBC <내 생애 봄날>, 그리고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를 볼까. 공교롭게도 이 두 드라마 모두 남자 주인공이 얼핏 어려워 보이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 <내 생애 봄날>의 강동하(감우성)는 동생의 연인이자 사망한 전처의 심장을 이식받은 상대인 이봄이(최수영)에게,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현욱(비)은 죽은 연인의 동생인 윤세나(크리스탈)에게. 드라마는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그려낼까. 어떻게 이들이 운명이라고 말할까.
<내 생애 봄날>의 강동하. 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 수정(민지아)을 잃은 그는 몇 년을 폐인처럼 살았다. 두 아이 푸른(현승민)과 바다(길정우)를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의무도 방기하고, 스스로를 춥고 외로운 감옥에 가둔 채 살아왔대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다. 시끄럽고 무례하기 그지없지만 어쩐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여자, 봄이다. 봄이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미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때 먼저 살피고, 어쩐지 그녀 옆에서는 동하의 고질병인 불면증도 사라지는 것만 같다. 심지어 동생 동욱(이준혁)의 연인이라는 것을 안 후에도 심장은 그녀를 향해 뛴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현욱 역시 3년 전 연인을 잃었다. 헤어지자는 소은(이시아)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던 바로 그날, 교통사고로 그녀는 현욱의 곁을 떠났다. 연인을 그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 소은의 자취를 쫓는 다른 사람과 만난다. 그녀의 동생 세나다. 이미 회선조차 없는 휴대폰에 기적처럼 세나의 메시지가 날아든 것. 세나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현욱은 그녀를 도우려 하지만 상황은 꼬이고, 그는 엉겁결에 다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뛰어들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 주인공에게서 지나간 인연을 겹쳐보곤 한다는 점이다. <내 생애 봄날>의 동하는 봄이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본다. 자신이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줬던 팔찌를 하고, 꼭 그녀처럼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봄이를 보며 동하는 수정이 제게 줬던 평안을 느끼기도 한다. 동하뿐만 아니다. 동하의 딸 푸른은 동하보다 먼저 봄이 제 식구에게 중요한 의미가 될 것임을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그 언니가 엄마처럼 안아주구, 엄마처럼 책도 읽어주니까 왠지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기분이 되게 이상하더라구.” 아이들의 직감은 어른들의 이성보다 빠르고 날카롭다.
푸른은 봄이가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엄마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또래보다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던 푸른이 봄이 앞에서만 아이처럼 행동하는 장면 역시 봄이가 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현욱도 그렇다. 그는 세나에게서 고운 목소리에 남다른 감수성을 갖췄던 언니 소은의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사고 이후, 그에게 음악을 듣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은 그를 흔든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인연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다. 과거의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당신. 인연의 시작으로는 훌륭하기 그지없지만, 당신이 죽은 내 연인과 닮았기에 특별하다 말할 순 없잖은가. 게다가 드라마에는 여기저기 장애 요소가 산재해 있다.
출처_ SBS
<내 생애 봄날>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봄이의 뿌리 깊은 부채의식일 터다. 초반부터 봄이는 경비아저씨에게 음료를 내밀고, 직접 새벽시장에 가서 음식을 챙기고, 환자 한 명 한 명을 직접 챙기며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긍정성을 내뿜는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는 부채의식이 존재하는데, 자신의 여생이 누군가의 목숨으로 얻어낸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정에게 두런두런 늘어놓는 말―“저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그렇잖아요, 가고 싶은 곳도 있었을 거고, 해야 할 일도 있었을 거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거고. 그쵸? 방법은 모르겠지만, 알려만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다 해드릴게요.”―에는 심지어 자신이 수정의 인생을 대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보인다.
6회, 동하는 봄이가 수정의 심장을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하는 봄이에게서 느끼던 기시감과 안락함이 수정의 심장 때문이었는지 혼돈을 느끼게 될 것이다. 봄이 역시 자신이 이 가족에게 어떤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될 테고. 의무감이나 부채의식은 로맨스에 악영향을 줄 뿐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반면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일종의 성장기와 같은 성격을 띤다. 아직은 서툴고 덜 여문 세나는 회를 거듭할수록 작곡가로서도, 한 여자로서도 자랄 터다. 성장기에서는 직업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흔히 몇 가지의 난관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조력자로 나서는 것은 당연히 현욱이다. 하지만 이 로맨스를 막는 것 역시 현욱의 죄책감이다. “사람 많은데 나만 혼자야. 이럴 때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아…. 어떡할까 이제, 나 이제 어디로 가야 되는 거야? 나 너무 무서워, 너무 막막해. 왜 그랬어? 왜 나만 두고 가버렸어 왜?” 세상에 달리 의지할 곳 없는 세나의 하소연은 하필 현욱에게 날아들었는데, 그에게 세나의 울음은 꼭 자신을 비난하려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세나에게 세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언니를 뺏었다는 죄의식은 현욱을 좀먹고, 관계의 진전에 제동을 걸 터다. 이 두 드라마, 과연 어떻게 운명을 그릴까.
드라마가 어떤 답을 제시할지 궁금한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다. 과연 여주인공에게 수정과 소은 이상의 매력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과거의 인연과 닮아서 시작된 관계일지라도, 어둡고 긴 터널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봄이와 세나가 될 수 있을지.
두 드라마가 제공하는 낭만적 환상이 단지 신데렐라 판타지에 머무르지 않길 빈다. 운명적 사랑을 그린 또 다른 좋은 드라마가 되길. 단조롭고 식상한 이야기 속에서도 그 이상의 공감과 즐거움을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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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