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을 가다
8월 ‘책 속 그곳’은 충청북도 옥천이다. 옥천 하면 택배의 버뮤다 삼각지대, 옥천 HUB 택배터미널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성 싶지만, 옥천이 가장 내세우고 자랑스러워 하는 건 바로 시인 정지용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에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詩) 중 하나인 정지용의 ‘향수’. 그의 시에 1989년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여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부른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지용의 시가 널리 읽히고 노래로까지 다시 불리워지며 사랑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그간 홍명희 등과 함께 월북 작가로 분류되었던 정지용은 유작 간행이나 언급조차도 금기시되어 오다 1988년 납/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뤄지면서 작품집의 출판 및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지용 문학관 전경
정지용은 1902년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나 1914년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입곱 나이에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형편이 어려웠으나 총명했던 터라 교비유학생으로 1923년 일본 교토에 위치한 도시샤 대학에 입학한다. ‘향수’는 유학 중이던 스물 두 살에 씌어진 작품으로, 아름답게 조탁된 언어로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탁월하게 형상화하였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에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지는 시인의 고향, 옥천 구읍
그의 해금에 따라 1988년 6월 생가가 헐린 자리에 세워진 집의 벽에 이 곳이 ‘정지용의 생가터’였음을 알리는 표지가 붙여졌고, 1996년도에 그의 생가가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복원 당시만 해도 정비되지 않은 하천 옆에 초라한 초가집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2005년 5월 그의 생애와 문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문학관이 세워지면서 그의 시 세계를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을 시발점으로 하여 금강을 경유하는 자전거 코스인 ‘향수 100리길’이 TV에 소개된 터라 자전거를 타고 이 곳을 찾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띈다. 또한 매년 5월 15일 정지용의 생일을 전후로 하여 ‘지용제’라는 이름으로 문학 축제가 열리며, 백일장과 가족 시낭송회 사진공모전 등이 펼쳐지는데, 올해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하여 9월 26~28일에 열리게 될 예정이라고. 기간 동안엔 서울-옥천을 잇는 시문학열차도 운행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학관에 들어서면 지용 시인의 밀랍 인형이 맞이해준다 / <지용 시선> 초판
방 안에 자리한 질화로와 약장 / 생가터에 복원된 초가집
정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옥천 구읍에는 ‘교동집’으로 불리우던 육영수 생가와 옥천향교 등 걸어서 돌아볼 만한 곳들이 자리하고 있다. 옥천역이 생기면서 구읍은 상대적으로 쇠락하게 되었으나 그 덕인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와집이나 근대 건축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3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이 고즈넉한 마을에서 시인은 무엇을 느꼈기에 ‘고향’과 같은 시를 떠올리게 된 것일까.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착한 먹거리’ 묵밥과 올갱이국이 별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구읍에서는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구읍할매묵집이 유명하다. 묵밥은 직접 쑨 도토리묵을 굵게 채쳐 육수를 붓고, 볶은 김치와 김, 깨를 얹어 먹는 음식으로 강원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즐겨 먹는다. 여름에는 시원한 육수를 부어 먹고, 겨울에는 도토리묵 대신 메밀묵에 따뜻한 육수를 부어 먹는다.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마당넓은집’도 구옥을 그대로 활용한 멋스러운 밥집으로 황태전골과 새싹비빔밥이 인기다. 옥천읍내에선 올갱이국이 유명하며, 금강올갱이와 미락올갱이가 잘 하기로 손꼽힌다.
구읍할매묵집 전경 / 시원하게 즐기는 묵밥
자리를 옮겨 장계국민관광지로 향한다. 2009년 이 곳에는 ‘멋진신세계’라는 이름의 향수 30리 시문학 아트벨트가 조성되어 있다. 정지용의 시 열 아홉 편을 주제로 꾸며진 이 곳은 곳곳에 시를 주제로 한 현대적 조각들과 건축물이 금강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2009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허나 현재는 운영하던 민간업체가 사업을 포기하면서 방치되고 있는 상태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비록 건물들은 방치되어 있긴 하나 강가를 배경으로 호젓하게 산책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위)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금강
(아래) 시인의 시를 활용한 조형물들 (유리창/시비)
감각적이고도 향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정지용의 시는 여러 책에 실려 있으나 초간본 원문을 수록한 『지용시선』은 당시의 싯구들을 그대로 음미해볼 수 있다. 『원본 정지용 시집』 역시 초간본을 사진판으로 제시하고 주석을 달아 원문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정지용은 시 이외에도 산문에도 능했다고 하는데, 당시 발표했던 여러 글들은 『정지용 전집- 산문』에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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