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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코미디 <미스 프랑스>의 엉뚱한 그녀 이지하
연극배우 18년 만에 이런 대사는 처음 외웠어요!
엉뚱함이 연기력을 만났을 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지하 씨의 재밌는 변신을 놓치지 말자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는 아예 공공연하게 ‘멀티맨’이라는 롤까지 있죠. 그런데 화면을 통해 1인 다역을 만날 때와 무대 위에서 만날 때는 그 반향이 꽤 다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지닌 무대의 1인 다역은 연출가의 상상력과 배우의 연기력, 관객들의 호응이 더해졌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거든요.
다른 목소리나 걸음만으로도, 점 하나의 유무만으로도, 때로는 막 뒤에서 내 보인 팔목 하나만으로도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이죠. 알고도 속아주는 이 재미가 무대의 가장 큰 축이 되는 작품이 있는데, 8월 17일까지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 연극 <미스 프랑스>에도 똑같이 생긴 여자 세 명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을 보러 관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생긴 여자 세 명은 미스프랑스 조직위 위원장 플레르,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 사만다, 그들과 똑같이 생긴 호텔 종업원 마르틴. 그리고 이 세 인물을 한 명의 배우, 김성령, 이지하 씨가 각각 연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미스 프랑스> 이지하가 맡은 1인 3역 (사만다 / 플레르/ 마르틴)
“이 작품은 코미디라 몸 구석구석에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필요해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계속 떠드는 편이에요. 이번 공연은 특히 (김)성령 언니와 돌아가면서 무대에 서니까 며칠 만에 죽은 감각을 다시 깨워야 해서 어려워요. 하지만 요즘은 패턴이 각양각색이니까 배우가 어떤 시스템이나 환경에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나른하게 한낮의 여유를 만끽할 일요일 정오. 수현재씨어터 사무실에서 1인 3역으로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연극배우 이지하 씨를 만났습니다. 연극무대가 낯선 관객들에게는 그냥 김성령 씨와 더블 캐스팅된 배우겠지만, 그녀는 주요 연극에는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는 18년차 연극배우. 엉뚱한 면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대놓고 코미디를 할 줄은 몰랐네요. 그래서인지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활달한 느낌도 듭니다.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그 인물에 많이 따라 가는 편인데, 코미디를 한 번씩 해줘야 할 것 같아요. 무거운 작품만 하다 보면 배우가 너무 진부하고 딱딱해질 수 있거든요. 프랑스 원작의 제목은 <둘 보다는 셋>이에요. 세 인물을 돌리는 가동력에 에너지가 있는 작품이죠. 저는 코미디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즐기는 것까지는 못하고 있는데, 익숙해지면 더 거리를 두고 관객을 잡았다 놨다, 극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재밌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위해 앞서 연극을 봤는데, 플레르와 사만다를 구별해주는 귀걸이가 자꾸 떨어져서 애드리브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퀵체인지가 많다보니 이런 실수도 잦을 것 같은데요.
“큰 사건사고, 재밌는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성령 언니 쪽에 더 많아요(웃음). 저는 매일 연극을 해오던 사람이라 큰 실수는 없었는데, 무대에 문이 여러 개이고 등퇴장이 많아서 헷갈리긴 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다른 문으로 나간 적이 있어요. 물론 관객들은 모르죠. 잘못 나왔다는 걸 저만 알지만 순간 내가 세 여자 중에서 누군지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배우에게 좀 안 맞는 질문이긴 하지만 그 이상한 대사들을 어떻게 다 외우셨나요?
“따지고 보면 대사량은 많지 않아요. 문제는 너무 산만하고, 대사 간 맥락도 없고 드라마도 없다는 거죠(웃음). 사실 대사를 외우는 건 배우들에게는 제일 쉬운 일이에요. 외워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외우는 건 연기의 시작일 뿐인걸요.”
플레르가 실어증에 걸려서 내뱉는 말은 국내 유명 회사 상품명을 품목별로 나열하는 형식입니다. ‘펜타포트지산나우자라섬~’ 이런 식이죠. 오랫동안 연극을 하셨지만, 이런 대사는 처음 외웠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러게요. 프랑스 원작에서는 보통 문장에서 받침을 변형했다는데 국내에서는 황재헌 연출이 새롭게 만든 거예요. 우리가 천재라고 했죠. 하지만 막상 외우려니 자기 잘난 거 자랑한 건가 싶더라고요(웃음). 이걸 대사라고 밤이고 낮이고 집 안팎에서 외워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이런 대사는 애드리브가 안 돼요. 그래서 제일 먼저 외웠고 달달 외웠고 무대에서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어요. 이건 정말 기계처럼 붙어서 실수를 안 해요(웃음).”
세 사람 중에 가장 애착이 가거나 연기하면서 후련한 기분이 든 인물이 있을까요?
“후련한 인물은 없어요. 세 명으로 나뉘다 보니 솔직히 만끽되는 인물은 없거든요. 이 작품은 전적으로 변별력을 갖고 세 인물을 잘 찾아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세 인물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가동력에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주요 인물이 미스 프랑스이고, 미스 코리아 출신 김성령 씨가 함께 캐스팅돼서 부담은 컸을 것 같습니다.
“부담이 아니라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죠. 내가 어딜 봐서 미스 프랑스냐고(웃음). 성령 언니가 이미 캐스팅된 상태에서 더블을 찾는 과정에 제가 지목된 거라 성령 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런 작품을 언제 해보겠나 싶더라고요. 나만 믿고 이 캐릭터를 줄 수는 없거든요. 기회에 대중적인 성향을 볼 수도 있고요. 키가 작아서 높은 힐을 신는 바람에 액션을 마음대로 못해서 아쉬워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수현재씨어터도 올해 들어선 건물입니다. 극장도 무대에 오르는 공연도, 대학로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는데, 오랫동안 무대에 서온 배우로서 달라진 것을 느끼나요?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극단 체제라서 좀 더 조직적이고 동지적인 개념으로 연극을 했어요. 그래서 훨씬 가난했지만 정신적인 안정감과 유대감이 있었죠. 연극배우의 생활이라는 게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것은 없지만, 요즘은 상업극도 많고 프로덕션 체제로 바뀌고, 또 영화 드라마 등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배우들도 일거리를 찾아 무한시장에 나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훨씬 큰 것 같고요.”
이 무한 경쟁 시대에 소속사도 없이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매 작품을 잘 소화해내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겠지만요.
“연극배우가 연극하는 건데요. 저는 특별히 작품이나 사람, 배역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맞고 상황이 맞으면 작품을 해요. 운 좋게도 제가 참여했던 작품들이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 결과들을 내기도 했고요. 사실 제가 <미스 프랑스>에 참여한 것에 대해 ‘이걸 왜 하느냐, 김성령 씨 땜방을 왜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시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하니까 쉬지 않고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40대 여배우가 주인공일 수 있는 작품이 몇 편이나 될까 생각하면서 두 분이 무대를 주름잡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여배우에게 나이는 더 민감할 것 같아요.
“여자로서 나이를 먹는 건 저도 싫죠. 특히나 이 사회에서는 젊음이 미덕이고 나이를 먹는 건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잖아요. 슬프고 두려운 일이죠.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오히려 나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배우는 나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요. 잊을 때가 많고. 연극 안에서야 스물도 됐다 여든도 될 수 있지만, 저는 마흔다섯이고, 이 나이 사람들의 삶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나 바람, 고통, 어려움, 일상을 관심 있게 보려고 노력해요. 모를 수 있거든요. 연극 내부는 만들어진 세계고, 세상을 잊고 사는 직업이라 철없는 배우가 될까 봐요.”
20대에는 꽤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다시 찾은 무대에서 15년을 내달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떤 배우를 꿈꾸세요?
“더 나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요? 연기는 못했어도 훨씬 예전이 더 나은 배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어릴 때처럼 가슴이 떨리고 무대에 서는 게 감사하고 희열이 있고 그렇지는 않거든요. 지치기도 하고 염증이 나기도 하고, 그만둘까 생각하고, 직장인들과 똑같아요(웃음). 하지만 그런 것에 함몰되지 않고, 무언가 놓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작품을 읽어내고 인물을 찾아내는 다른 시선을 갖고, 작품 안에서 중심을 잡고 나이 먹은 배우로서 역할을 해야지만 배우로서 생명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생명이 다하면 언제든지 배우를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진정 나와의 싸움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고행의 길만 남은 거죠(웃음).”
우리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도 같지 않을까요? 지치고 염증이 나고 그만둘까 생각되고... 그 극장도 오래 찾다 보면 모든 공연이 똑같은 것 같고, 그러다 이렇게 색다른 재미의 작품을 발견하면 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웃어 봅니다. 배우의 생명력, 모든 창작자들의 생명력이 꾸준히 분화되길 바라야겠어요(웃음). 엉뚱한 상상력과 언어의 유희, 배우들의 호연이 버무려진 연극 <미스 프랑스>는 8월 17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연장 공연됩니다. 맞춤 재단된 옷을 입은 듯 플레르 그 자체인 김성령, 엉뚱함이 연기력을 만났을 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지하 씨의 재밌는 변신을 놓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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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