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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염세적 세계관이 집약된 곡 <교향곡 6번 a단조 ‘비극적’(Tragische)>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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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서 교향곡,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아바도가 남긴 명연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바도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할 만한 레퍼토리는 역시 말러의 교향곡일 겁니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녹음했던 말러의 교향곡들은 그의 대표작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명연으로 남아 있지요.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 6. 26.-2014. 1. 20.)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20일에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타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휘자 중의 한 명입니다. 저는 직업이 기자인지라 아바도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고 기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타계를 애석해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바도가 향년 81세로 타계했다는 기사를 20분 만에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개인적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쉰 살이 훌쩍 넘었는지라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른바 ‘나이든 한국 남자’ 축에 속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류의 세대적 특성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는 감정의 샘이 상당히 고갈된 나이에 어느새 도달한 셈이지요. 한데 아바도 선생의 타계 소식을 접한 이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애도의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자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비틀즈의 존 레논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것과 흡사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흘러 다녔습니다.

오늘은 이 글을 읽을 여러분과 지휘자 아바도를 함께 추모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아바도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제가 며칠 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잠시 옮겨봅니다. “지휘자로서 아바도의 본격 행보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음악감독(1968~1986)으로 시작됐다. 당시 아바도는 이른바 ‘진보적 지휘자’의 아이콘이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류 레퍼토리였던 이탈리아 오페라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현대 오페라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은 물론, 저렴한 입장료로 젊은 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였고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찾아가는 연주회’를 스스로 기획하기도 했다. 정장 차림의 지휘자에 익숙했던 음악팬들이 셔츠 바람으로 지휘하는 그를 음반 커버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신선한 경험으로 꼽힌다. 아바도는 그렇게, 앞 시대의 엄격함과 획일화에서 벗어나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지휘자상의 등장을 선언했다. (중략) 지휘자 경력의 정점을 찍은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였다. 1989년 세상을 떠난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취임한 그는 ‘나는 보스가 아니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것이다’는 말로 자신의 지휘 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 6. 26.-2014. 1. 20.) [출처: 위키피디아]

막강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군림하지 않았던 지휘자로 기억되는 아바도는 앞서 인용한 발언 외에도 의미 있는 말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멋진 멘트를 날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말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신문의 짧은 지면에서 다 전달하지 못했던 그의 ‘말’들을 몇 개만 간추려 보겠습니다. 그가 유럽 언론과의 여러 인터뷰에서 평생토록 강조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지휘자라는 말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위대한 것은 작곡가일 뿐입니다.” 2009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지요.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50년 넘게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아바도가 내놓은 빼어난 음반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발언도 역시 영국 <가디언>의 웹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내 음반들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빈 필하모닉과 1980년대에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은 그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나중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한 버전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실황으로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이 있는데 즉흥적인 맛은 있지만 여전히 연주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이 있습니다. (중략) 예전에 시카고 심포니와 말러 교향곡 1번을 녹음한 것을 들었는데 좋지 않아요. 베를린 버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버전을 들었는데 ‘몇 가지는 더 낫다, 전부는 아니지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것이 인생의 비밀(secret)이 아닐까요. 늘 더 나은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영감과 열정을 발견하는 것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할 수는 없고 언제나 새롭게 발견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오페라에서 교향곡,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아바도가 남긴 명연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바도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할 만한 레퍼토리는 역시 말러의 교향곡일 겁니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녹음했던 말러의 교향곡들은 그의 대표작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명연으로 남아 있지요. 아바도는 2번 ‘부활’을 제외한 말러의 교향곡 거의 전부를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했는데, 그중에서도 6번과 7번이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데 저는 개인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연주보다는 아바도가 스스로 조직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더 좋아합니다. 2000년 위암 발병 이후,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포디엄에서 내려온 아바도는 이듬해부터 자신이 직접 만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말러의 교향곡들을 다시 연주합니다. 그야말로 음악에 평생을 바친 거장의 절절함이 담긴 명연들이지요. 위 절제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던 그의 모습은 보는 이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퀭하게 말라 있지만, 두 눈에는 음악에 대한 갈구가 오히려 더 가득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말러의 <교향곡 6번 a단조>를 함께 듣겠습니다. 말러의 염세적 세계관이 집약된 곡입니다. 그래서 말러 본인도 ‘비극적’(Tragische)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음악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7년 전에 썼던 글 한 편을 올려놓겠습니다. 당시의 아바도는 74세였습니다. 그리고 7년이 더 흘러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연주가 끝났습니다. 지휘자 아바도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스스로 ‘비극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교향곡 6번. 자그마치 89분에 달하는 긴 항해였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포디엄에 선 아바도는 솟구치는 격동을 어쩌지 못하는 눈빛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바라봅니다. 울음을 겨우 참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렇게 10초가량의 정적이 흐르고, 객석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브라보!”를 외칩니다. 이어서 터지는 박수소리.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해집니다.

지난해(2006년) 8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에서 열렸던 연주회.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74)가 2003년 자신이 창단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연주했습니다. 저는 며칠 전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서야 당시의 감동을 맛봤지요. 비록 현장에서 확인한 실연(實演)은 아니었지만, DVD를 통해서도 벅찬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아바도의 승리였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아바도는 2000년 위암 수술을 받았지요. 1989년에 세상을 뜬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던 그는 건강 때문에 포디엄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아바도의 병세를 둘러싼 소문은 흉흉했습니다. 외신을 통해 가끔 접할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몰골’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깡마른 데다 두 눈이 퀭했지요. 하지만 그는 2001년 5월 프랑스 ‘르 휘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만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때문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처럼 아바도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말러’로 돌아왔지요. 아바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말러 스페셜리스트’입니다. 32살이었던 1965년 독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데뷔 무대에서 빈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선보였던 곡이 바로 말러의 2번 ‘부활’이었지요.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후 첫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곡은 말러의 1번 ‘거인’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해마다 빼놓지 않고 말러를 연주했지요. 건강 탓에 베를린필의 음악감독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됐을 때 고별 콘서트에서도 말러의 ‘7번’을 연주했습니다. 아바도는 그렇게 음악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말러와 함께 했습니다.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까지 포함하면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입니다. 11번째 곡인 ‘10번’은 미완성입니다. 그중에서도 ‘6번’은 말러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걸작이지요. 관악기와 타악기의 배치가 유난히 두드러진 이 음악은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극’입니다. 행진곡풍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1악장 첫번째 주제에서 이미 ‘비극적 좌절’을 예견하지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주제에서 돌연 환한 햇살이 비쳐들지만 결국엔 이 햇살마저도 고독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 거대한 교향곡의 정점은 4악장이지요. 해머가 세 차례 커다랗게 작렬하는 순간, 삶은 순식간에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쾅! 하면서 지축을 울리는 듯이 터져 나오는 해머의 격렬한 음향은 인생의 어느 길목에선가 느닷없이 만나는 운명의 타격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고령(高齡)의 아바도는 ‘암’이라는 운명의 강펀치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창 투병 중이던 2003년부터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매년 말러의 교향곡을 한 곡씩 연주했지요. 2번, 5번, 7번이 이미 DVD로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6번이 더욱 특별한 것은 아바도의 환한 표정 때문입니다. 속단은 어렵겠지만 그는 병마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제 ‘비극’을 지휘하면서도 당당합니다. 암을 이기고 포디엄에 다시 선 74세의 마에스트로. 그에게서 전해오는 정신의 강인함 때문에 음악의 감동이 한층 크게 울려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ㆍ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ucerne Festival Orchestra)/2006년/EuroArts

본문에서 언급한 녹음이다. 말러의 교향곡을 향한 노장의 순정함이 오롯이 담긴 명연이다. 블루레이와 일반 DVD로 출시돼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ㆍ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2004년/DG

아바도는 자신이 과거에 이끌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을 2004년 6월에 다시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6번을 녹음했다. 당시의 아바도는 “12년 동안 이끌어온 악단으로 돌아가는, 실로 감동적인 귀향”이라고 말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같은 곡을 연주했던 1980년의 녹음도 호평을 받지만, 이 녹음은 그것을 뛰어넘는 명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라모폰은 “신들린 듯한 연주”라고 평했다. 아바도는 2악장 스케르초와 3악장 안단테의 연주 순서를 바꾸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해 동안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나는 아내 알마에 대한 말러의 사랑이 변치 않고 주제로 녹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또 한 가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안단테 악장이 두 번째에 위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1악장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이며 조성적인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교향곡을 말러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연주했던 것과 같은 순서로 연주해야 한다.”


[관련 기사]

-허무와 비애, 외로움으로 가득한 ‘겨울여행’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베토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모차르트 <레퀴엠>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적 인생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다
-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 -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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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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