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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굴곡에서 인생은 더욱 밝게 빛난다

아내의 곁을 3시간 이상 떠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기적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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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남편이 써내려 간 6년 동안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이다. 이미 다수의 매체를 통해 화제가 된 바 있는 김재식, 안정숙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랑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리 나는 책

오늘은 2주간 ‘책, 임자를 만나다’코너에서 다뤘던 황정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파씨의 입문』 을 읽어 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 『야만적인 앨리스씨』 이 작품에서는 욕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멋지게 다뤄질 수 있는지 느껴볼 수 있는 문장이 많은데요,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애새끼가 있었다. 애새끼는 자기 어머니가 여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얼굴이 이상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새끼가 보기에 밤에 불을 끄고 나면 특별히 더 이상했다. 어둠 속에서 코라거나 입의 윤곽이 아무래도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주둥이라서, 눈도 길어 보이고, 귀도 길어 보이고, 아무래도 여우라서, 밤에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러면서 어머니를 보면 어둠 속에서 그녀도 애새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애새끼는 용기를 낸 거야. 만져보려고 팔을 뻗어본 거야. 기다란 주둥이에 손을 대본 거야. 그러자 구훗, 하고 어머니가 웃었다. 굿? 여우는 그렇게 웃는 거야. 여우였나! 진정한 여우였던 거지. 여우가 애새끼 손을 잡으면서 굿, 하고 웃었다. 들켰나, 여우라는 것을 들켰나,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여우다. 오래전부터 뼛속 깊이 여우다. 애새끼 손을 잡은 채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말이야, 나처럼 뼛속 깊이 여우인 여우들이 인간인 척 마을을 꾸리고 사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음에 네 아버지가... 한 청년이 목욕봉사를 하러 마을러 들어왔던 거야. 하고.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문학동네) 中에서


에디터 통신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녕하세요?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를 편집한 위즈덤하우스 박지혜입니다. 빨간 책방을 통해 벌써 세 번째로 인사드리는 것이니 만큼, 이제는 여러분께 좀 더 애정을 느끼게 되어 이렇게 시까지 한 편 낭송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만들다 보면 특별히 더 마음이 쓰이고 애정이 가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워낙 주관적인 것이어서 갖다 붙이는 것들이 다 그럴 듯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 소개해 드리는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는 처음 원고를 발굴해서 다듬고 그림을 실어 디자인하고 홍보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편집의 기쁨을 느꼈던 책입니다.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는 20주년 결혼기념일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를 돌보게 된 어느 남편의 일기입니다. 특별히 풍족한 삶도, 남 앞에 내세울 것 많은 삶도 아니었으나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제 꿈을 좇아 성실하게 자라나는 자녀들이 있기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저자에게, 하룻밤 사이 사지마비가 된 아내를 바라보는 일만큼 청천벽력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대소변 신경이 마비된 상태로 남자인 자신에게 몸을 맡기고, 부끄러움만 상실하지 못한 채로 몇 년이나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했던 아내를 바라보는 저자의 가슴에는 슬픔, 연민,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다시 붙들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애끓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6년이라는 투병 기간 동안, 이들 부부에게는 수많은 기적과 선한 이웃들이 나타났고 사경을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하던 아내의 병은 어느덧 호전되어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했습니다. 처음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귤을 한 알 까서 남편의 입에 넣어준 일이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귤이었지만, 그 감동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남편은 몰래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책에는 갑자기 닥친 시련 앞에서 그만 도망쳐 버리고 싶어 하는 평범한 남자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잖아? 욕먹지 않을 만큼 했으니 여기서 아내를 포기하더라도 누구도 나를 비난하진 못할 거야. 그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작은 고통에도 마음 아파하면서 그 아픔에서 아내를 건져내고자 고군분투하는 남편의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되고 있던 원고를 발굴해 낸 것은 저희 회사의 막내 편집자 강희정 씨인데요. 언젠가 다함께 있는 자리에서 본인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자신에게는 슬픔의 주파수가 있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책에 그림을 싣도록 허락해 주신 이순화 작가님 역시 최근 암을 이겨내고 개인전을 여셨는데, 그 개인전의 제목이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고민할 당시 불현듯,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가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책에는 삶은 기적이고, 인간의 사랑은 신비이며, 희망은 불멸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 그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적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 잡아 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부둥켜안고 함께 아파해 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쓰러지지 마세요. 새삼스럽게, 내 주변 모두에게 감사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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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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