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드나들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빠, 어디가>로 브라운관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국민 아빠 이종혁,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대단한 가창력으로 뮤지컬 팬들에게 감동을 준 마이클 리, 가요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뎅티율’이라는 애칭까지 얻은 신화 맴버 김동완. 세 사람이 요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벽을 뚫고 있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평범하고 순진한 남자 듀티율에게 갑자기 벽을 드나드는 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대사 없이 노래가 이어지는 송스루 뮤지컬로, 프랑스에서 국민작가로 꼽히는 마르셀 에메의 원작소설을 무대 위에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초연되었고, 주인공 듀티율 역으로 박상원, 엄기준, 남경주 등 화려한 배우들이 열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만약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듀티율은 마치 병에 걸리듯,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벽을 드나드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신과를 찾아간 듀티율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정신과의사에게 뜨거운 사랑을 하고 나면 그런 능력이 사라질 거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듣는다. 언제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살았던 듀티율에게 이러한 초능력은 번거로운 일일 뿐이다. 그는 기뻐하긴커녕 그냥 예전과 같은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벽을 넘나드는 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를 골탕먹인 듀티율은 자신의 능력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고, 빵집에 들어가 빵을 훔치고 급기야 보석 가게에 들어가 보석을 훔쳐 가엾은 이웃에게 나눠준다. 게다가 그런 도둑질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일마저 재미있게 생각한다. 듀티율은 그동안 쑥스러워 미처 말을 걸진 못했지만, 마음을 키우고 있는 이웃집 이사벨에게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라도’ 알리고자 한다.
검사인 남편에게 꼼짝없이 갇혀 사는 이자벨은 결국 듀티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듀티율의 벽을 드나드는 능력은 검사 남편까지 혼내주게 된다. 그래서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사랑까지 이루게 되는데. 모든 일이 이렇게 순순히 잘 풀리기만 할까? 이자벨에게 다가가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뚫어냈던 듀티율은 결정적인 순간에 또 다른 벽을 만나게 된다.
사회 풍자 가득한 러브 스토리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프랑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듀티율의 주변 인물들을 잘 살펴보면, 프랑스 국민작가가 당시 프랑스 사회를 어떻게 날카롭게 풍자했는지 알 수 있다. 2차 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 술독에 빠져 지내는 정신과 의사, 낮에는 과일을 팔고 밤에는 매춘부 일을 하는 이웃의 캐릭터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 같은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듀티율의 엉터리 재판장면이나 간수들의 노래, 허세스럽고 이기적인 듀티율의 직장 이웃들의 노래는 전후 프랑스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물론 전쟁 직후가 아니더라도 공정하지 못한 법질서, 개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회 범죄 등이 계속 일어나는 지금도 배경지식 없이도 그 풍자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상당히 프랑스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는 얘기는 언급해둬야겠다. 어떤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상황적으로 풍부한 감수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 그러니까 왜 갑자기 벽을 뚫게 되었는지, 왜 사랑에 빠졌는지 하는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벽을 뚫을 때의 기분, 사랑에 빠진 상태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전개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곳곳에 유머있는 가사와 재미있는 선율의 노래들이 이야기 사이사이를 메꿔주는 역할을 한다. 또 11명의 배우가 1인 2, 3역을 맡아 23개의 캐릭터를 다채롭게 연기한다.
마이클 리는 안정적인 노래 실력으로 듀티율을 선보이는데, 이전의 ‘지저스’와는 다른 가볍고 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다. 다만 쉴새 없이 내뱉어야 하는 한국어 가사는 그에게 하나의 도전이라고 했는데, 살짝 어색한 대목도 있지만 튀는 정도는 아니다. 이종혁은 능숙하지 않아도 또박또박 정직한 가사 전달과 기대 이상의 노래 실력으로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노래와 연기실력을 갖춘 김동완은 듀티율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매력 있게 살린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알코올 중독의 정신과 의사로 열연하는 고창석, 임철형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묘미는 ‘벽을 드나든다’는 설정을 무대 위에서 매우 흥미롭게 선보인다는 점이다. 빛과 그림자, 때로는 투명한 막, 때로는 실제로 배우가 드나들 수 있는 무대 장치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벽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꽤 그럴싸하다.
가족이나 연인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동화 같은 뮤지컬이다. 만약 당신이 극 내용을 일일이 분석하고, 대사가 이루고 있는 논리적이고 복선적 장치에 전율하는 일을 즐긴다면, 이 뮤지컬이 군데군데 느슨하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1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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