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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무대를 뚫는 뮤지컬배우, 마이클 리
지금 꿈 안에서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합니다
공연 자체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객석에 앉았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최근에 본 10여 편의 공연 중에 가장 재밌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신이 나서 질문지를 작성했지 뭡니까.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마이클 리'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졌거든요.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게 무척 행복해요. 이 나라와 문화의 일부가 됐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마이클 리 씨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의 삶의 터전은 미국이었지요. 그런 그가 2006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됩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말이죠.
“한국에서 <미스 사이공>이 초연될 때 크리스 역을 맡았습니다. 2005년부터 오디션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 싱가포르에서 뮤지컬 <A TWIST OF FATE>에 참여하고 있었죠. 대학 친구가 <미스 사이공>의 정명근 연출가를 알고 있었고, 그는 제게 오디션을 보러 올 수 있는지 물었어요. 공연이 없던 월요일, 저는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서 오디션을 봤고, 그날 저녁에 싱가포르로 돌아갔죠.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공연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A Twist Of Fate', 운명의 장난 같지 않나요?”
그에게 <미스 사이공>은 뮤지컬 배우로서 길을 열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뮤지컬을 처음 만난 건 8살 때였습니다. 뮤지컬 <왕과 나>에서 왕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어요. 재밌는 건 처음에 공주였던 배역이 저 때문에 왕자로 바뀌었어요. 제가 아이들 중에서 잘 하기도 했고(웃음), 동생과 제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거든요. 전문적인 배우로 데뷔한 건 <미스사이공>에서 ‘투이’를 연기하면서예요. 1년 간 투어 공연을 한 뒤에 브로드웨이로 옮겼어요. 꿈이 이뤄진 것이죠.”
마이클 리 씨는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의 투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시몬, <태평양 서곡>의 카야마, <렌트>의 스티브 등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 서기까지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운명적인 콜’이 있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는 스탠퍼드 대학 의대생이었거든요.
“솔직히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학년 때 <미스 사이공>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때까지 저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몰랐어요. 심리학이나 의학 쪽으로 대학원에 진학할까도 생각했고, 심지어 영화 학교에 가는 것도 생각했거든요.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항상 깊었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제가 무척 좋아하는 록 밴드들도 그걸 해내지만, 뮤지컬은 정말 아름답게 표현해 내잖아요. 어쩌면 저의 마음은 항상 이 분야를 향하고 있었고, 결국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뮤지컬, 그리고 한국무대라는 커다란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서 그는 아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서울살이가 즐겁다고 하네요.
“한국이 좋아요.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이죠. 서울은 재밌는 도시이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거워요. 한국에 온 이후 일 때문에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쉬는 날은 아빠 역할도 해야 하고요. 미국에도 여전히 우리 집이 있어요. 지구촌이잖아요. 두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고 싶어요.”
그의 아내는 두 개의 석사학위를 갖고 있고 역시 브로드웨이 배우라고 합니다.
“아내는 대단한 여자예요. 그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죠. 명석하고 재능 있고, 언제나 저를 지지해줘요. 또 좋은 엄마고요. 아내는 우리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는데, 앞으로 그녀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좋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한국인이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일은 어떨까요? 미국과 우리나라의 작업 환경은 많이 다를 텐데요.
“조금 다르긴 해요. 미국에서는 1913년에 무대 배우들을 위한 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와우, 무려 100년 전에!). 덕분에 연습이나 공연 중에 배우들이 보장받는 것들이 있죠. 연습이 좀 덜 힘들고 좀 더 체계적인 면도 있고요. 또 미국에서는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기간이 있고, 긴 프리뷰 기간이 있어요. 그 기간에 공연은 상당부분 바뀌기도 하죠. 그리고 미국에서는 멀티 캐스팅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꽤 보편적인데, 배우들이 건강과 에너지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무대라는 세상은 ‘열정’을 얘기할 때 별다른 차이가 없죠. 공연쟁이는 공연쟁이일 뿐, 국적은 상관없다는 걸 발견했어요. 또 우리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영혼과 정신은 같다는 것도요.”
마이클 리 씨의 무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젠가 대본을 영어로 번역해서 내용을 숙지한 뒤, 다시 한국어 대본이 닳도록 연습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노력이 무대에 묻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마이클 리 씨와 영문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요. 무대에서도 그의 발음이 조금은 어색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니까요.
“저에게 한국어는 도전입니다. 솔직히 무척 어려워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죠. 하지만 무엇이든 최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시간이 걸려요. 이런 과정이 저의 한국어 실력은 물론이고 배우로서의 능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말하고 듣는 모든 문장의 조각까지도 철저하게 이해해야 하니까요. 이런 과정들이 저를 훨씬 강한 배우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찾은 듀티율은 결국 벽에 갇힙니다. 그런데도 무대 위 배우들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게 아이러니한데요. 마이클 리 씨는 벽에 갇힌 듀티율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이 이야기가 무척 좋습니다. 웃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휴머니즘과 깨달음이 있죠.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비록 벽에 갇혔지만, 듀티율은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벽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얻었고, 이사벨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게 됐죠. 이것들은 우리 모두가 찾아 헤매는 것 아닌가요? 벽에서 그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들의 세상을 보고, 진정한 사랑을 봅니다. 그것은 벅찬 기쁨일 거예요.”
그는 내년 1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가 막을 내리면 2월부터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에 참여합니다.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요. 언어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쩌면 브로드웨이에서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을 연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배역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저는 지금 저의 꿈 안에서 살고 있어요. 제가 희망하는 역할은 또 다시 저의 마음을 사로잡을 다음 배역이 되겠죠. 저는 모든 것에 문을 열어뒀고, 또 다시 운명에 맡길 거예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