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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프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11/22/63』
과거를 바꾼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만약에 JFK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나아가 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11/22/63』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아주 끝내주게 재미있다! 역시 초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후회왕(王)
드디어 2014년이 되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거나 말았거나, 나는 오늘도 작년 1월 1일에 세웠던 계획들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키가 울고 가고 댄 브라운이 절을 하며 히가시노 게이고가 엄지를 치켜들 작품으로 초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던 계획은 지키지 못했다.
권투를 배워서 신인왕전에 나가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신인왕이 되리라던 계획도 지키지 못했다. 매일 다섯 페이지의 글을 쓰고 일주일에 두 권의 책을 읽겠다는 계획도 역시…….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거나 가족과 유럽 여행을 떠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그 외의 수많은 계획들이 중간에 무산되거나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3년과 함께 과거로 사라져버렸다.
동물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후회의 감정을 가진다. 『멋진 신세계』라는, 그야말로 멋진 소설을 발표한 올더스 헉슬리는 ‘만성적인 후회는 가장 해롭다’는 명언을 남겼다지만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곱씹고 반성하는 건 아무래도 인간 특유의 본성이지 싶다. 그리고 그런 후회의 감정 맨 밑바닥에는 ‘만약’이라는 부사가 먹잇감을 유혹하는 초롱아귀처럼 불을 반짝이며 음흉한 미소를 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정말로 열심히 글을 썼더라면 초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만약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치킨 사 먹던 돈을 아껴 체육관에 등록했더라면 신인왕이 되었을까? 만약에 어떤 런닝화를 살까 고민하기보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더라면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우리에게 ‘만약’이라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고문 부사’가 없었더라면 좀 더 값진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만약에, 만약에…….
나는 오늘도 각종 만약의 경우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에 다시 2013년 1월 1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요컨대 초베스트셀러 작가에다가 권투 신인왕, 게다가 마라톤까지 완주하며 가족과 유럽 여행을 즐기는 제법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에 답한 소설이 바로 『11/22/63』이다.
만약에 존 에프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이하 JFK)가 1963년 11월 22일(그렇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댈러스에서 ‘리 오스왈드’에게 암살당한 이래로 수많은 음모이론이 탄생했다. ‘오스왈드’가 누명을 썼다는 이야기부터 마피아와 군수산업체들이 암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런 흥미로운 소재이니 관련 소설과 영화도 많을 수밖에. 대표적인 작품이 올리버 스톤 감독의 걸작 영화 <JFK>다.
하지만 대중 소설계의 ‘왕(King)’ 형님인 ‘스티븐 킹’은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만약에 JFK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나아가 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11/22/63』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아주 끝내주게 재미있다! 역시 초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훌쩍.
서른다섯 살의 교사 ‘제이크 에핑.’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동네 음식점 주인인 ‘앨’의 비밀스러운 제안을 받고 과거로 갈 수 있는 창고를 통해 1958년의 미국으로 가게 된다. 처음 그 창고의 존재를 알게 된 ‘앨’, 하지만 불치병에 걸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게 된 그는 제이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이크, 자네가 역사를 바꿀 수 있어. 알겠나? 존 케네디를 살릴 수 있다고.”
당연히, 제이크는 앨의 제안을 받아들여 1958년 메인 주의 리스본 폴스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돌아오면 다시 ‘현재’가 된다. 즉 과거에서 몇 년을 보내건 현재에서는 불과 몇 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창고를 통해 과거로 가면 1958년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에서 보낸 시간은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현재로 돌아오면, 과거에서 보낸 시간만큼 늙어있다.
스티븐 킹이 마련해 둔 시간여행에 대한 여러 장치들은 이야기를 맛있게 만드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게다가 JFK 암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허구의 존재인 제이크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11/22/63』은 한 번 손에 들면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마력을 선사한다. 나는 하룻밤을 꼬박 새며 1권을 다 읽었고, 2권이 나오길 눈이 빠져라 기다린 끝에 그마저도 게걸스레 읽어 치웠다.
『11/22/63』은 스티븐 킹 특유의 입담에 몸을 맡기다 보면 물 흐르는 대로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를 바꾼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이 작품 속에서는 ‘나비효과’ 개념이 종종 등장하는데 제이크가 과거에서 한 행동이 현재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를 지켜보고 있다면 꽤 섬뜩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설정이 더해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왔다가 다시 과거로 가면 ‘제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이크는 잘못 바꾼 과거를 ‘리셋’하기 위해 몇 번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과거가 전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약간의 해답을 찾았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 어떤 일을 바꾼다 하더라도 역사가 꼭 좋은 방향으로 흐르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다. 이미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에 이것저것 보태고 바꾸다 보면 대부분 산으로 가게 마련이다. 과거는 책장 한 구석에 꽂아두고 이제는 새로운 책의 첫 장을 열어야 한다.
『11/22/63』만큼 재미있는 소설 『하드보일드 에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필립 말로를 동경하고 그처럼 살아가는 게 꿈인 애송이 탐정 ‘슌페이’에게 할머니 비서 ‘아야’가 충고를 던진다.
“자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건 이야기 속의 일인 거야.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계속이란 게 없으니까 편하겠지만 말이야. 사람의 일생이란 건 쓸데없는 계속이 길어.”
아무렴 그렇고말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과거 위에 현재를 쌓는 방식으로 우리는 삶을 이어간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연연해 ‘만약’이라는 부사를 갖다 대는 일은 죽은 불씨를 살리려는 것과 같다. 한 마디로, 부질없는 짓.
그럴 리도 없겠지만 다시 한 번 2013년을 살게 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인간이 되었을 거다. 게으르고 배나온 무명작가. 그리하여 나는 작년에 이루지 못했던 일보다 그나마 잘해냈던 일들을 찾아본다. 나는 여전히 좋은 남편이었고 괜찮은 아빠였다. 아들과 자주 목욕탕에 갔다.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2012년보다는 더 열심히 썼다. 어쩌다 보니 유명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런 글도 끄적이고 있다. 초베스트셀러 작가에 신인왕에 마라토너까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JFK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간 제이크는 어마어마한 고생을 하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깜짝 놀랄 만 한 결말은 『11/22/63』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읽기전보다 좀 더 유쾌한 인간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좋은 소설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다.
사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게 더 맞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JFK 암살 사건은 거대한 맥거핀일 뿐이다. 『11/22/63』은 내가 근래 읽은 어떤 연애 소설보다 더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조금 울었다.
스티븐 킹이 종종 좋은 소설의 조건으로 말했던 ‘휴머니즘’이 『11/22/63』 작품 안에는 듬뿍 들어 있다. 그를 호러 작가로만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호러를 이야기할 때의 스티븐 킹은 종종 ‘절망’에서 그 원천을 찾지만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희망’을 토대로 한 작품 중에도 명작들이 꽤 된다. 『그린마일』, 『리시 이야기』, 그리고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과 『스탠 바이 미』 등을 추천한다.
* 스티븐 킹 작품
그린마일
스티븐 킹 저/김승욱 역 | 황금가지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스티븐 킹의 연작 소설. 교도소와 사형수, 양로원을 오가며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악과 죄, 누구나 맞아야만 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티븐 킹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서술과 재미가 살아 있으며 인간미가 더해진 작품이다. 원래 1부씩 여섯 권에 걸쳐 따로 출간한, 그의 유일한 연작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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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