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임태경, 베르테르에 이보다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요?!
"저라면 죽지 않고 끝까지 그녀를 기다렸을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은 사랑을 하고 나면 다시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막는 여러 이유를 갖게 되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런 격정적인 사랑을 바란다'는 임태경씨의 말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우리는 그래서 뮤지컬 <베르테르>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요?
요즘 TV에 콘서트, 뮤지컬까지 굉장히 바쁘신 것 같습니다. 그만큼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실감하시는지요?
“실감할 정신도 없이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응원해주시는 감사한 마음들에 인사도 하고 싶은데... 예전에는 팬 카페에 글도 가끔 써 올리곤 했는데, 요즘에는 이마저도 못하네요. 많이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베르테르-임태경’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나 TV로 접한 감수성 짙은 모습 때문일 텐데요.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얼핏 너무 어울려 ‘뻔하다’는 느낌을 드릴지도 모르겠다는 섣부른 생각에 처음에는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되레 섬세한 연기에 도전 의욕이 생겼어요. 또 처음 들으면 화려하거나 크게 극적이지 않은 것 같은 음악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남고 깊이가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도전해보자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지난 2000년 국내 초연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고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했던 베르테르인데요. 실제로 작품에 참여하시니 어떤가요? 이른바 ‘임 베르’는 어떻게 만들어가고 계십니까?
“이번에는 저를 백지로 만들자 마음먹고 시작했어요. 지난 9년간의 뮤지컬 활동은 모두 뒤로하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연출이 바라는 것을 표현해보려 애썼어요. 제 방식 제 의지 제 경험 등을 모두 비우고 걸음마 하듯 조광화 연출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였지요. 음악도 제 고집보다는 음악을 맡으신 구소영 감독님의 의견을 받아들였고요. 그래서 이번 ‘임 베르’는 제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이 작품을 만들어 가는 모든 분들에 의해 완성되어갈듯 해요. 다행히 모든 분들과 대화도 잘 통하고 느낌도 잘 맞아서 행복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캐스팅된 엄기준 씨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엄 베르’도 소개 좀 해주십시오.
“엄 베르는 이미 이 작품을 했던 경험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인데다 베르테르에 대한 본인의 애정 또한 각별해서 작품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여요. 차이를 물으신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은 점이 없어요, 우리 둘은. 작품에 대한 애정 빼고는요. 하하하.”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극중 베르테르, 알베르트와 비교한다면 어느 쪽에 가깝나요?
“둘을 정확히 반반 섞어놓으면 딱 제 성격일 듯해요.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왔지만 전공은 공학이였고 부전공이 음악이였잖아요. 게다가 양손잡이이고. 저는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이 살아있고, 이성적이면서도 가슴에 의지하며 살거든요.”
인터뷰에 앞서 책장에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임태경 씨는 언제 이 책을 처음 읽었는지, 그때 느낌을 기억하세요?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제가 고등학교 때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쓴 걸 발견했어요. 그러니 읽긴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내용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읽었죠.”
베르테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사랑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사랑을 해본 적은 있어요. 맞아요, 지독한 사랑이었죠. 한 사람을 향한 지독했던 열정과 마음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줬고,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슴에 각인된 사랑, 그 자체를 제게 남겼다 생각해요.”
한편으로 이렇게 ‘지독한 사랑’도 젊었을 때 한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더해지면 사랑도 온 마음으로 하기는 힘든 것 같은데, 배우가 아닌, 40대에 접어든 임태경 씨가 바라본 베르테르의 사랑은 어떤가요?
“젊었을 때라 가능했던 것 같다는 가정은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는 경험의 유무인 것 같아요. 지독한 사랑을 겪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만큼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막는 여러 이유를 갖게 되지만, 반면에 다시 그런 격정적인 또 다른 사랑을 여전히 꿈꾸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아도 그런 지독한 사랑을 못해봤다면 어쩌면 황혼의 나이에도 앞뒤 생각 않고 빠져버리는 사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베르테르를 이해하지만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했다면... 저 같으면 혹여 그녀가 어떤 이유로 혼자가 됐을 때를 위해 기다렸을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 베르테르를 연기했던 다른 배우들을 만나보면 그 감성이 너무 힘들어서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은 우울했다고 하시던데, 공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심경이 어떠세요? 힘들지는 않나요?
“힘들어요. 우울한 감정이나 화를 내는 행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더라고요. 건강에, 특히 이런 감정들은 폐를 안 좋게 한대요. 그래서 그런지 감기도 걸린 적이 없는데 갑자기 고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래요. 아직도 앓고 있어요.”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만, 임태경 씨에게 ‘불후의 명곡’은 어떤 프로그램일까요? 훨씬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출연 전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많은 대중에게 어필된 만큼 조금은 존재감이 흔해졌다 해야 할까요? 소수의 분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분들에게 다양한 대접(?)을 받게 된 것 같아요. 하하하. 그래도 ‘불후의 명곡’은 제게 아주 감사한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노래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할 때, 또는 보람을 느낀 적이 있을까요?
“제 노래에 행복해 하시는 분들을 뵐 때, 그때가 행복하죠. 제 노래를 듣고 우울증을 극복하셨다는 분들의 이메일을 받거나 자폐증을 이겨내시는 계기가 됐다는 사연을 들었을 때 정말 행복하고 보람을 느꼈어요. 아니, 되레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제가 더 감사하고 감동받아요. 무대는 제게 단두대와 천국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경험케 하죠. 저를 천국으로 보내는 것도 지옥의 나락을 맛보게 하는 것도, 모두가 그곳에 계신 청중의 몫이거든요.”
많이 바쁘시지만 ‘앞으로’에 대해서도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끝으로, 어떤 길을 어떻게 꾸며 가실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 길은 하루하루의 최선이 만들어 줄 것이다 생각하며 살아요.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몇 개월 후를 계획하기 전에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다보면 그것이 길이 되어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꽤나 근사한 산책로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며...”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