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은 나의 집, 나의 집은 너의 집
지구상 80억 개의 집이 나의 집이 된다면…
이 책은 공간을 짓는 건축가가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집에 기거하며, 거기서 발견한 다채로운 삶의 풍경과 삶의 방식에 대해 아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주인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집만큼 사람을 닮은 곳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 남의 집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으신지요. 낯설면서도 따뜻한 그 특유의 공기에는 집이라는 공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안온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지의 어떤 고급 호텔도 결코 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한편으로 집이라는 것은 그 주인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집만큼 그 사람을 잘 말해주는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머문 타인의 집은 아마도 조반나의 집이었던 듯합니다. 2006년, 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와 맺었던 약속대로 저는 낯선 땅으로 1년간의 상주 여행을 떠났고,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페루자Perugia에 정착해 연극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전을 열며 그 땅과 세상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을 살았습니다.
당시 극단의 동료였던 조반나는 어느 날 불쑥 대학 동료 교수들과 떠나는 고고학 여행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했고, 새벽 일찍 떠나야 하는 일정 탓에 자신의 집에서 자고 함께 출발하기를 권했지요. 엔지니어임에도 인문학자에 가까운 독서 편력을 지녔던 아버지의 서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녀의 집은 제 싸구려 월세방에 비해 어찌나 안온하던지요. 생활의 향기가 배어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날 조반나는 내게 자신의 푹신한 침대를 내어주고, 자신은 비좁은 창고 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날 밤의 깊고도 달콤했던 잠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경험이 나로 하여금 낯선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아니 실은 사랑해 마지않게 만들었을 겁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동양의 여자아이에게 베풀어준 작은 호의가 스스로 타인을 향해 쌓아두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사실 나는 내 스스로 좋은 집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단칸방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 전셋집을 여럿 거쳤고, 중학생 시절 도시 외곽에 부모님이 처음으로 분양받은 14층 아파트가 우리 가족이 소유해본 유일한 집입니다. 그리고 스무 살 이후로는 그 집을 떠나 4인실 기숙사와 반지하의 자취방을 전전했고, 타국 생활을 하면서도 늘 방 한 칸을 빌어 사는 신세였지요. 좋은 공간을 많이 살아봐야 하는, 집 짓는 내가 살아온 공간의 가난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낸 풍요로운 공간은 길 위에 있었습니다. 세상 곳곳을 떠돌며 만난 크고 위대한 건축물도 작은 골목길의 소소함도 두 발에, 가슴에 차곡차곡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길 위를 헤매었던 내게 어느 날, 타인의 집이라는 더없이 풍요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전연재> 저12,600원(10% + 5%)
“낯선 이의 집에서 먹고, 자고, 놀고, 춤추며 그들 삶의 청자가 되고 가족이 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록!” 건축가 전연재 씨가 쓴 《집을. 여행하다》는 구경꾼의 시선으로 낯선 곳을 여행하는 데서 나아가, 그들 삶속으로 들어가 청자가 되고 가족이 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 낯선 곳으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