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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LG의 카리스마, 야생마 이상훈

90년대 ‘서울 찬가’의 중심에 우뚝 선 에이스 ‘야생마’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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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표현을 꼽는다면 바로 ‘진격의 LG’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지난 시즌까지 10시즌 동안 단 한 차례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LG 트윈스는 종반기에 접어든 올 시즌 63승 45패 (9월 5일 기준)로 리그 순위표 맨 꼭대기에 올라서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표현을 꼽는다면 바로 ‘진격의 LG’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지난 시즌까지 10시즌 동안 단 한 차례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LG 트윈스는 종반기에 접어든 올 시즌 63승 45패 (9월 5일 기준)로 리그 순위표 맨 꼭대기에 올라서 있다.


현재 LG 트윈스가 거둔 63승은 2003년 60승을 거둔 이후 LG 트윈스가 정규시즌에서 거둔 최다 승수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시즌 70승 돌파는 무난해 보이는데, 70승 돌파는 73승을 거둔 1997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11년 만에 LG 트윈스 팬들은 가을에 유광점퍼를 입고 응원할 수 있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현재로선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트윈스 팬들의 관심은 과연 1994년 이후 19년 만에 트윈스가 정규시즌 1위에 등극할 수 있는 지 여부이다.


1990년대 LG 트윈스는 속된 말로 ‘야구를 얄밉게도 잘 하는’ 팀이었다. ‘꾀돌이’ 유지현을 시작으로 박종호, 김재현, 서용빈, 노찬엽, 한대화, 김동수 등 신구조화가 이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타선은 타팀 투수들이 가장 상대하기 꺼려하는 까칠함 그 자체였다. 또한 노련미가 경지에 오른 김용수, 정삼흠, 김태원 등의 투수진은 상대 타자들의 수를 손바닥에 놓고 내려다 보는 듯한 포스를 풍겼다.


무엇보다 야구를 잘 하는 LG 트윈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자부심과 일종의 오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1990년대 중반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모두 석권한 좌완 강속구 투수 이상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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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원더스(//www.wondersmall.kr/)


고려대 졸업반이던 1992년 4월 전국 대학야구 봄철대회 성균관대 전에서 무려 14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며 순식간에 최대어로 떠오른 이상훈은 LG 트윈스 입단 당시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역대 신인 사상 최다 계약금, 무려 14개의 탈삼진을 뽑아낸 데뷔 첫 승 경기, 팀이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에 처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배짱 넘치는 파워 피칭으로 상대 타선을 잠재우는 등 그는 입단 첫 해부터 팬들에게 범상치 않은 인상을 남긴다.


입단 첫 해 그가 보여준 모습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1994년과 1995년 이상훈은 각각 18승, 20승을 거두며 다승왕에 등극, 리그 최고의 투수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최동원, 선동열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지닌 이상훈의 존재는 트윈스 팬들에게 승패를 떠나 그의 투구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청량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이상훈의 전성기는 바로 LG 트윈스의 전성기와 궤를 같이 하였다. 그가 다승왕에 연거푸 등극하던 1994년과 1995년은 트윈스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였다. 황금의 제국을 구축하던 LG 트윈스는 1996년 예상치 못한 몰락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에이스 이상훈이 허리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1996년 부상 치료로 인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던 이상훈은 1997년 마운드에 다시 올라서게 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가 마운드에 서 있는 모습을 오래 볼 수 있었다면, 1997년부터는 오래 서 있는 모습 대신 자주 마운드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 혈행장애 증세로 인해 투구수에 제한을 느끼게 된 이상훈은 선발 투수 대신 마무리 투수로 전업하게 된 것이다.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한 첫 해 이상훈은 10승 6패 37세이브를 기록, 구원투수 포인트 최다기록을 새롭게 쓰게 된다. (당시에는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산하여 구원 투수 포인트로 기록하였다.)


선발투수로 리그를 호령한 이상훈은 그의 고려대 선배 선동열이 그랬던 것처럼 마무리 투수로서도 리그를 호령하며 팀을 1994년 이후 3년 만에 한국 시리즈로 진출 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1997시즌 종료 직후 이상훈은 해외 진출을 선언하고 1998 시즌부터 그의 고려대 선배 선동열, 프로 입단 동기 이종범과 함께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한다. 당초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로 임대를 추진했으나 임대 과정에서 메이저리그 법률 소위원회의 제동으로 인해 임대가 무산되면서 주니치 드래곤즈 임대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이상훈의 임대 파동 이후 FA 미대상자 선수에 대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고 입찰금액을 쓰는 구단에 대해 입단 협상 우선권을 주는 포스팅제도가 도입되었다. 올 시즌 LA 다저스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진출한 케이스이다.)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이상훈은 ‘삼손 리(SAMSON LEE)’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는데 이 때부터 그의 갈기머리는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삼손’이라는 별명도 자연스레 따라붙게 되었다. 1999년 이상훈은 팀 마무리 선동열 바로 앞에 투입되는 필승조로 맹활약을 펼치는데 28경기 등판 6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끄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상훈은 1999시즌 종료 이후 또 다시 새로운 야구인생에 도전을 선택한다. 2000년 마침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게 된 이상훈은 한국인 사상 최초로 한국 프로야구, 일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첫 번째 선수가 된다. (올해 시카고 컵스에 진출한 임창용이 머지 않아 이상훈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총 9경기에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3.09의 성적을 남기고 2002년 친정팀 LG 트윈스로 전격 복귀하게 된다.


이상훈이 트윈스를 떠나 있는 동안 트윈스는 98시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90년대 중반에 보여준 강자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힘겨운 행보를 지속하고 있었다. 2001시즌 초반에는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창단 이후 최악의 부진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2000년대의 기나긴 암흑기가 찾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97년 이후 5년 만에 국내 마운드에 복귀한 이상훈은 특유의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에 등판할 때마다 전력 질주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가 전력질주를 시작할 때마다 팬들은 3시간 가까이 응원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할 시점에 다시 에너지를 충전한 듯 가장 열광적인 성원을 보낸다. 


2002년 팀의 마무리로 복귀한 이상훈은 10승 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1.68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한다. 소속팀 LG 트윈스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1998년 이후 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최강으로 군림하던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는 일방적인 열세라는 예상을 무색하게 만드는 놀라운 선전을 거듭하면서 라이온즈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 붙인다.


2승 3패로 뒤지고 있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트윈스는 9회말 라이온즈 마지막 공격 이전까지 9-6으로 리드하면서 승부를 사실상 7차전으로 이어가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패색이 짙던 라이온즈는 믿었던 투수 노장진까지 무너지면서 사실상 백기를 든 상태였다. 트윈스 마운드에는 늘 그랬듯이 이상훈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내내 팀의 뒷문을 지키던 이상훈은 한국시리즈 5차전부터 서서히 지쳐가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마해영에게 추격을 허용하는 3점포를 허용하면서 결국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장문석에게 마운드를 내준 바 있었던 이상훈은 결국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의 조연으로 자리하게 된다.


3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이승엽에게 동점 3점포를 허용하게 된 이상훈은 한국시리즈 5차전에 이어 또 다시 마무리에 실패하면서 최원호에게 마운드를 내주고 쓸쓸히 내려온다. 결국 라이온즈는 마해영이 최원호를 상대로 거짓말 같은 역전 솔로포를 작렬하면서 20년 동안 기다려온 한국시리즈 정상에 결국 올라서게 된다.


한국시리즈 7차전을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기회를 날려 버린 LG 트윈스였지만 아무도 동점포를 내준 이상훈에게 돌을 던지지, 아니 돌을 던질 수 없었다. 그는 혈행장애로 많은 공을 던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이 그를 필요로 하면 늘 변함 없이 마운드를 향해 전력질주 하였다.


2003시즌에도 이상훈은 4승 4패 30세이브를 기록하며 변함없이 팀의 뒷문을 지켰다. 다만 이전 시즌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진 평균자책점 (3.34)이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활약할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2004시즌을 앞두고 그는 새로 부임한 이순철 감독과의 불화로 갑작스레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긴다.


이상훈은 시즌 초반 그답지 않게 블론 세이브를 번번히 기록하며 3승 3패 3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5.14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자신의 밥값을 하지 못한다고 느낀 그는 시즌 도중 스스로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0년대 리그를 호령했으며, 한국인 선수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한 역사를 써나간 거물 투수의 마지막은 너무도 쓸쓸하고 초라했다.


1990년대 LG 트윈스의 전성기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1994년, 1995년, 1997년 단 세 시즌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 강자로 군림했던 모습이 너무도 강렬했고, 그래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상훈의 전성기도 짧았지만 너무도 강렬하게 타올랐고 ‘서울의 찬가’가 울려 퍼지던 그 시절에 그는 늘 마운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던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는 현재 후배들에게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도전의 힘을 심어주기 위해 스승 김성근 감독이 몸담고 있는 고양 원더스에서 새로운 야구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 ‘야생마’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야생마’ 이상훈에 대한 회상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도 나는 황야를 달린다 

잊혀져 가는 맑은 꿈을 찾아서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서 

바람이 부는대로 달려간다

아무도 내 마음 모를 때 

때로는 슬프고

혼자서 가는 길이 너무나 외로워져도

오늘도 나는 황야를 달린다 

꿈속에 보던 날개를 찾아서

멀리 저 멀리 타오르는 태양이 

내 젊은 가슴을 부르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늘도 나는 황야를 달려간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서 

오늘도 쉬지 않고 달려간다

때로는 거친 바람과 소나기 맞으며

혼자서 가는 길이 너무나 외로워져도

가다가다가 쓰러진다 해도 

오늘도 나는 황야를 달려간다

누구보다도 멀리 가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쉬지 않고 달려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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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형진

모든 것이 풍요롭게만 느껴졌던 1990년대의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흔적을 탐사하는 X세대 블로거. 스포츠와 영화를 보고 듣고 쓰는 것을 즐긴다. 늘 끄집어내도 변치 않는(不老) 추억들에 대한 글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바램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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