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을 읽지 않고 ‘악의 저서’라 말해선 안 된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고전 강연 ‘생각하는 10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가 지난 24일 숭실대학교에서 열렸다. EBS가 공동기획하고 예스24와 서울시교육청가 후원하는 본 강연은 숭실대학교 주최로 8월부터 11월까지 한 달에 두 차례씩 진행된다. 그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강의실을 찾은 정병희 숭실대학교 부총장은
“고전의 힘과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독서의 중요성을 각성시켜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한다”는 강연회의 취지를 밝혔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강의를 시작으로 강연회의 출발을 알렸다. ‘
『군주론』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날의 강연에서 김경희 교수는
“군주론은 굉장히 악명 높은 저서다. 권모술수와 악의 저서라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큰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읽지도 않고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한다. ‘『군주론』 다시 읽기’ 강의를 통해 편견을 깨고 『군주론』을 제대로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8월 31일에 진행될 2부 강연에 앞서, 학생들이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와 군사를 담당했던 인물로
『군주론』 과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와 같은 책을 저술한 인문주의자이자 희곡 『만드라골라』를 창작한 문필가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이후 공직에서 추방된 그는 다시 공직을 얻기 위해 로렌조 데 메디치에게
『군주론』을 헌정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윤리와 도덕에 배치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로마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마키아벨리는 ‘악의 교사’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피렌체의 군주제, 뛰어난 시민이 지도자가 되었다
김경희 교수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군주론』의 오독으로 인한 편견일 뿐이라며,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내전과 비슷한 혼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밀라노와 베니스, 피렌체, 교황국, 나폴리왕국의 5개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스페인과 같은 강력한 나라들의 침입도 있었다. 그래서 『군주론』에는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강한 바람이 나타나 있다.”
또한 당시의 피렌체는 시민들의 힘이 성장하고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 공화국이었다. 그러한 경제 부흥을 바탕으로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대부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곧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했고 귀족층의 과두제를 형성했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힘의 균형은 깨져버리고 만다. 결국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군주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김경희 교수는 이 때의 군주제가 전제정 세습 군주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민 중에서 뛰어났던 사람이 군주가 되었던 거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에 『군주론』을 재해석할 수 있는 조금 더 쉬운 길이 열린다. 열심히 노력하면 리더가 될 수 있고 지도가자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군주론』이 평등한 시민의 관계 속에서 지도자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만약 『군주론』이 세습적인 봉건 시대의 군주제에 대해서 썼다면 지금 읽기에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글이 되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마키아벨리는 후기 르네상스에 해당되는 시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고대의 문물을 부활시킨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중세적인 방식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화했다. 경제 부흥과 인구 증가가 그 원인이었다. 수도원과 농토에서 도시로 삶의 중요 공간이 바뀌고,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는 초과 생산으로 변모했다. 금욕과 종교적인 생활을 중시했던 사람들이 세속 문화를 발전시켰고, 국가와 조국의 개념이 크게 자리 잡았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김경희 교수는 그 예로 교황의 영토 침입에 맞서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을 들었다. 중세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피렌체는 근대 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관심의 중심이 인간에게로 이동함에 따라 고전의 부활도 이어졌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철학ㆍ문화가 재 발굴되고, 고전 예술과 문학?철학이 부활했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에서는 정치의 부활이 많이 목격된다. 김경희 교수는 그 이유로 5개 나라로 분열되어 불안한 정세가 계속됐던 이탈리아의 상황을 꼽았다.
“과거의 좋았던 시기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군주론』에서 로마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학문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학문이 변화한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신의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논리학과 함께 수학이 중요한 학문으로 여겨졌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수사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민의 자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정치 공동체인 도시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논ㆍ토론하고 그를 바탕으로 투표를 하는 행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에 피렌체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과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군주론』을 읽는다면,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경희 교수가 ‘
『군주론』 다시 읽기’ 강의 첫 시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군주론』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설명한 것은 그 때문이다. 김경희 교수는
『군주론』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다음 강연을 기약하며 ‘
『군주론』 강독을 위한 부탁의 말’을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학생들에게 제시한
『군주론』 읽기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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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낯선 이름과 지명에서 벗어나라. 그것을 통해서 마키아벨리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파악하라.
둘째, 현재화시켜서 읽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현재의 나와 관련시키며 읽어라. 오늘의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메시지를 이해해야 한다.
셋째, 자신이 『군주론』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적어라. 그 후에 『군주론』을 읽고, 읽기가 끝난 후에는 그 편견들이 옳은 것이었는지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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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10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에서 9월에 함께 읽을 고전은 장자의 『장자』다. 9월 7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철학자 강신주의 강연이 이어진다. 10월에는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강의가 12일과 26일에 진행된다. 11월 2일과 16일에는 곽신환 숭실대 철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공자의 『논어』 강의가 준비되어 있다.
예스24는 그 여정을 함께하며 고전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자 강연회를 위한 블로그를 운영한다. 강의를 들은 후 느끼고 생각한 바를 같이 나눌 수 있도록 게시판을 마련해 놓았다. 강의 소감을 남긴 학생들에게 상품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생각하는 10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 영상과 관련 기사는 예스24 홈페이지와 문화웹진 <채널예스>, 예스24 블로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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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저/강정인,김경희 공역 | 까치(까치글방)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수세기 동안 읽힌 니콜로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전공자가 이탈리아어 원본을 가지고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조국 통일과 외세축출을 열망하던 이탈리아의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가지고 있던 염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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