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최장집 교수,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의 키워드는 독존(獨存)이 아니라 공존(共存)이다!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는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진정한 리더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동료 시민들에 대해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가진 이들 중에 진정한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공감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의 삶이 더욱 고양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평범한 이들 가운데서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일 것 같습니다.
올해는 『군주론(Il Principe)』이 쓰여진 지 500년이 되는 해다. 1513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마키아벨리가 정치 유배시절에 쓴 이 책이 2013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널리 언급되고 회자되는 풍경을, 마키아벨리는 어떻게 볼까? 실제로 2013년 정치권의 빅 이슈로 떠오른 안철수 의원(51, 무소속)은 정책 네트워크 ‘내일’을 만들고, ‘내일’ 이사장으로 최장집 교수를 임명해 언론과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장집 교수가 바로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알아야한다고 얘기해 온 정치학자. 3년 전 “우리 정치에서 카를 마르크스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최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키아벨리를 “솔직하고 대담무쌍한 정치철학자다. 도덕ㆍ종교적 담론은 인간의 권력의지를 베일에 덮어씌운다. 마키아벨리는 그 위선적 가면을 벗겨 보인 위에서 정치현상을 설명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4.27 중앙일보)
사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정치 철학을 확립한 학자로 이미지가 구축 되어 마키아벨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그간 알려진 『군주론』은 『군주론』에서 얘기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주론』에는 우리나라의 정치가들과 리더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진정한 리더쉽상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군주론 담론’의 중심에는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가 있다. 김경희 교수는 올 2월 출간한 『공존의 정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주론』은 이기기 위한 처세술과 혼란을 극복하고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을 제시하는 저서로 인식되어왔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고전(古典)은 하나의 답만을 제시하지 않고, 읽고자 하는 사람이 보고자 하는 것을 제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군주론』은 군주 개인의 승리와 권력 강화를 위한 이기적인 저술로 읽혀왔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읽혀온 것과는 다르게 『군주론』을 독해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길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군주론』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의 키워드는 독존(獨存)이 아니라 공존(共存)이라는 것이다. | ||
다음은 김경희 교수와 진행한 서면인터뷰이다. 우리나라 최초 『군주론』 이탈리아 원전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김경희 교수와의 인터뷰가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데 좋은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키아벨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다루는 사람
마키아벨리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마키아벨리의 어떤 점이 교수님을 사로잡으셨나요?
대학 다닐 때부터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사상은 본고장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고즈넉한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저의 관심사를 천착하다가 마키아벨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근대정치사상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와 고대 그리고 근대가 혼합되어 있는 마키아벨리의 사고는 서양정치사상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 사회,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통합되어 있는 보편적인 지식인이라는 것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관심 이외에도 그의 저서를 접할수록 마키아벨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문도 비슷하겠지만 정치학, 특히 정치사상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에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혜를 찾고자 하는 마키아벨리의 자세에 굉장히 끌렸던 것 같습니다.
사변적보다는 구체적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습니다. 『군주론』을 오랫동안 연구하셨으니,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에 대한 상을 교수님께서는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잡으셨을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인가요?
마키아벨리는 격변기에 태어나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고전에 대한 공부와 자신의 경험에 기반 해 시대의 문제를 풀고자 고심한 지식인이자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사태를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사고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간결한 문체를 보더라도 사변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의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례로 『군주론』 1장을 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사항의 단점과 장점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장에서 그가 명시한대로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대해 이득과 손실의 측면에서 명증하게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군주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기에, 현실의 복잡한 측면을 크게 두 가지로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 이득을 따져 결정해야 함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군주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득은 그 특수한 예만 가지고는 불가능하기에 일반론을 펼치고 그 성공의 예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공인의 자세를 유지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계산하는 이성은 철저히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서 그러한 점이 잘 나타납니다. 『군주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귀족, 용병대장, 그리고 카톨릭 추기경 등등은 모두 사적인 이해관계의 추구로 인해 비판 받은 이들입니다.
마키아벨리 정치의 기술은 인민들의 변화를 읽고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모술수와 정치기술만이 정치의 전부라고 잘못 독해되고 있다고 보십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군주론』이 이렇게 이해된 것은, 내용적인 면에서 권모술수와 정치기술이 탁월하게 설명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는데요. 『군주론』에서 얘기되고 있는 정치 기술에 대하여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군주론』에서 그려지는 권모술수와 정치기술의 대표적인 예로는 아마도 7장에서 나오는 체자레 보르지아의 행적인 것 같습니다. 그는 사이가 나빠진 용병대장들을 시니갈리아라는 도시로 불러 화해를 청하는 척하다가 마음을 놓은 그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부하를 자신의 군대로 흡수합니다. 또한 로마냐 지역의 평정을 위해 잔인하고 결단력 있는 자신의 심복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파견하여 일거에 귀족들을 제어한 후 그를 토사구팽에 처합니다. 이를 통해 인민의 두려움과 더불어 지지를 획득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체자레 보르지아의 행위를 높게 평가합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점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이가 자신의 힘이 미약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피한 폭력이나 불의한 수단의 사용은 ‘잘’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적기에 단번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자신의 사익의 추구가 아니라, 국가의 보존에 있습니다.
아울러 정치기술은 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 같은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로마냐 지역이 오랫동안 귀족들의 발호로 인민들이 피폐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지역의 평정은 온건한 인물로는 수행될 수 없기에 자신의 심복 중 잔인하고 결단력 있는 레미로 데 오르코를 보냅니다. 하지만 인민은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레미로 데 오르코의 잔인한 행동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미움까지 느끼게 됩니다. 이를 본 체자레 보르지아는 레미로 데 오르코를 효수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게 됩니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인민들이 귀족들을 제어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에 필요한 강압적인 수단에는 곧 두려움과 미움을 느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맡겼던 것입니다. 이는 정치의 근본인 인민들의 마음의 변화를 읽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통해 인민들의 호의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관계는 관계맺음의 쌍방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쌍방에 대한 고려와 배려, 나아가 정확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의 기술은 정치의 주요 구성요소인 인민들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군주 혹은 지도자는 인민들과 같이 가야 하지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적 의미에서 옳은 정치기술일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지금까지 『군주론』이 권모술수를 정당화하는 고전으로 읽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문 3번의 답변에서 말씀드렸듯이 체자레 보르지아의 방법 등을 마키아벨리가 옹호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역사적으로 격변기에는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독재자나 전제군주가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비난하는 반대파의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현실의 권력쟁탈을 위한 권모술수를 비난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이고, 마키아벨리가 아니라 현실의 마키아벨리즘을 대표하는 것이 『군주론』이 된 것입니다.
공존의 정치를 위하여
교수님께서 이번에 내신 책이 『공존의 정치』입니다. 공존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군주론』에서는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는 방법들로 어떤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지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현실의 구체적인 경우는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공존이 아니라 독존의 가치가 더 평가 받는 시기에 공존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 개인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책을 시작하는 헌정사에서부터 인민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군주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아가 군주 혹은 국가 권력의 토대는 인민에게 있고, 이는 자신을 인민들의 눈으로 채워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민의 그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비우고 인민의 것들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주의 능력과 그를 둘러싼 권력은 다릅니다. 권력은 주위의 사람들에 기반 하는데, 우리는 종종 재능은 뛰어나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경우와 재능은 별로지만 주위에 사람을 많이 몰고 다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권력의 관점은 공동체의 활성화와 연결됩니다. 군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재능을 계발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때, 자신의 권력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힘은 배가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힘과 권력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주가 본인의 역량을 과신하고 본인의 힘만을 배가시키려 할 때, 구성원들의 재능과 역량은 고사되고 나아가 공동체의 힘은 반감될 것입니다. 유아독존의 정치는 그 공동체의 힘을 반감시키고 정치의 유연성을 떨어트려 조그만 역경에도 쉽게 무너지게 합니다. 반면 활성화된 공동체는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지도자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공동체의 보존과 발전 그리고 활성화를 위해 공존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공동체에 닥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이 진정한 지도자
작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군주론』에서 얘기하는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지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하는 지도자상은 한마디로 공동체에 닥치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 역량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유연성이며, 다른 하나는 권력의 활성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권력의 활성화에 대해서는 5번의 후반부 답변에서 어느 정도 언급되었기에 여기서는 유연성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연성은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흔히 인간은 어느 한 가지 행동방식만을 고수합니다. 여기에 자수성가한 이들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하여 본인의 행동방식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더 완고해 집니다. 이는 가변적인 세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만듭니다. 따라서 변화하는 세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지식이 늘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편견이 깊어지고 외골수가 되어 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굳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를 위해 마키아벨리는 연구와 훈련의 결합을 제안합니다. 헌정사에서 『군주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고대사에 대한 연구와 자신의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14장에서는 군주가 군무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와 훈련에 임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연구는 과거의 모범적인 사례에 대한 공부이며, 훈련은 그 모범을 현재에 끊임없이 적용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형을 현실에 적용해봄으로써 그 다양한 변형을 몸에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이상형의 단일성을 현실의 다양성으로 체화시켜내는 것이 유연성의 핵심인 것입니다.
『군주론』이 얘기하는 지도자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
지금까지 많은 지도자들(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 합쳐서) 중에서 『군주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지도자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이며,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아직 공부가 짧은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지도자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평가와 그 속에서 드러났던 그 지도자의 능력과 공과(功過) 등을 온전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벅찬 저에게는 앞으로 천착하고픈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고전은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와 암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나라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지도자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통찰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해결방법을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와의 대화
『군주론』은 어려운 책일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도 도전해 봄직한 텍스트인가요? 『군주론』을 읽어보라고 가장 권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모든 책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모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양고전은 특히 그 인명과 지명 등이 낯설기 때문에 읽는데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군주론』 헌정사 첫줄에 나오는 “니꼴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에서 ‘로렌초 데 메디치’를 지우고 본인의 이름을 적어 넣으라고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첫걸음은 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명과 지명 같은 낯선 단어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보다는 마키아벨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메시지에 집중하도록 인도합니다.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고전과의 대면을 읽기가 아니라 대화의 상황으로 바꾸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단어라는 수단을 통한 이미지의 교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단순 지식의 함양보다는 지혜의 수양으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군주론』을 읽는 시도를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도전해 봄직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와 교양을 높이고 싶은 학생, 나아가 미래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좋은 리더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군주론』은 같이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책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때보다 『군주론』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왜 생겨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의 소견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우리사회는 경쟁과 성공의 담론에 더 많이 노출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겨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학생이건 기업의 경영자건 경쟁사회에서 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는 처세술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군주론』이 좋은 지침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이 주로 서점의 ‘처세’에 관한 책들과 함께 놓여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기술을 전수해 주는 책으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군주론』은 권모술수 등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치술을 옹호한 저서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주장했듯이 『군주론』은 혼자만이 살아남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접근과는 다른 식으로 『군주론』을 읽어야 오늘날 더 유익한 책으로 재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
꼭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아닐지라도,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맥락 하에서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평범한 개인도 사회 속에서 사는 한 다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잘 사는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원활히 맺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군주론』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군주의 권력은 인민의 지지와 그들의 힘에 있습니다. 인민의 지지와 그들의 힘을 계발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지도자의 능력입니다. 즉,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타인의 능력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것으로 관점을 확장시킵니다. 사회 속의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잘 살아간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배려와 공감의 관계 속에서 자기계발을 해 나가는 것일 것입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리더는 배려와 공감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올 것입니다.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는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진정한 리더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동료 시민들에 대해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가진 이들 중에 진정한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공감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의 삶이 더욱 고양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평범한 이들 가운데서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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