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일화 사태, 천마는 비상을 꿈꾼다
성남일화가 사라진다 매년 반복되는 아이러니
성남의 공식 서포터즈 이름은 천마불사다. 그 이름대로 천마가 살아남아 성남 하늘 아래서 비상할 수 있길 바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유벤투스FC의 해체 후 연고이전에 버금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일간스포츠가 단독으로 보도한 ‘성남 해체’ 이야기다.
유벤투스FC라는 축구단이 있다. 비앙코네리, 흰색과 검은색 세로줄 무늬가 별명이고, 축구팬들에게는 이 무늬의 유니폼으로 익숙한 이탈리아 팀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뛰어난 팀들만 참가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단골손님이자 세리에A 최다 우승에 빛나는 명문이기도 하다. 물론 구단만 유명한 건 아니다. 이 구단을 거쳐 간 선수 중 바조나 델 피에로, 네드베드 등은 유럽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다. 현재 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 또한 피를로, 부폰, 테베스 등 축구팬들이 모를 수가 없는 스타들이 즐비하다.
하나 가정해보자. 유벤투스FC가 시즌 중에 갑자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년부터는 팀이 없어질 겁니다. 물론 선수나 직원들이 통째로 사라지진 않습니다. 옆쪽 동네인 피사로 옮겨서 FC피사로 이름을 바꿔서 세리에A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FC피사도 사랑해주세요, 여러분!’이라고 선언한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이탈리아 울트라스 성격엔 구단 사무실에 화염병이 날아들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팀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난다는데 살인이라도 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 연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유럽축구의 특성상 저런 선언은 어느 평행우주에서도 어렵다.
ⓒ성남일화천마(//esifc.com/index.php)
헌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유벤투스FC의 해체 후 연고이전에 버금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일간스포츠가 단독으로 보도한 ‘성남 해체’ 이야기다. 기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현재 K리그 클래식에 참가 중인 ‘성남일화’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해체하고 다음 해 안산에 연고를 둔 ‘안산 FC(가칭)’로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타 매체들의 후속 보도에서도 성남 해체 후 안산 흡수창단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하루아침에 팀이 사라질 상황에서 성남 팬들의 반응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성남이 어떤 팀인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명문 아니던가. 7회에 이르는 국내 최다 우승과 아시아에서 8개 팀만이 가지고 있는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은 어느 팀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이다. 또한, 성남은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의 산실로 기능해왔다. 이런 구단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리그의 한 팀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국보 1호가 불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다. 유벤투스FC가 없는 이탈리아 축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성남이 없는 한국축구가 있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현재 팬들의 실망은 성남시에로 향하고 있다. 시의 얼굴이었던 팀을 불청객처럼 쫓아내는 것이냐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시도 노력했으나 재정적 문제로 힘든 일’이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은 이해하기 힘들다. 재정적인 문제가 크다고 하지만, 성남시는 올해 재정자립도가 65%를 웃돈다. 전국 시군 자치단체 중 1위다. 자꾸 제기되는 의문 속에 성남시장은 공식 발언이었던 재정적 이유를 부정했다.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되는 성남의 기부에 가까운 인수를 거부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설이 힘을 받게 된 계기다.
사실 성남 사태의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추측된다. 그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종교다. 성남이 특이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 익히 알려졌다. 성남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성남은 통일교 교주인 고 문선명 씨가 개인적 이유로 만들어 성장시킨 팀이다. 그렇기에 통일교와의 연관성은 창단 직후부터 계속 구단의 그늘로 존재했다. 성남은 축구단 운영자금을 지원받는 것 이외에는 통일교와 관련해 어떤 종교적 관계도 없었지만,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계속해서 연고지 정착을 방해받는다거나, 홈경기마다 반대시위가 열리고, 전용 경기장과 클럽하우스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는 등의 크고 작은 손실이 잇따랐다. 이러한 과거사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사태도 기독교 계열 단체의 입김과 성남시의 동조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추측은 부인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성남은 투자와 성적보다 관중 수가 적은 특이한 구단이었다. 투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 성남이라는 구단에 투자된 돈을 환산하면 3,000억 원이 넘는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관중이다. 국내 최다 우승을 이루어도,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팀이 되어도 성남의 관중석엔 늘 빈자리가 많았다. 올해 7월 초 자료에서는 평균 관중이 3,000여 명이었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해조차 5,000명이 되지 않았다. 성남의 내년 운영예산이 약 100억 원으로 예상되는데, 현 관중 수로는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창립자의 지원으로 살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죽음으로 든든한 우산이 사라진 성남의 경제성에는 의문부호가 달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현재 성남은 중위권에 위치해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요원하기만 한 상태다.
사실 두 가지 이유는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없다. 성남 사태는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생겨나 부차적 파장을 일으키는 진원이다. 문선명 교주 사후, 통일교 측에서 축구에 대한 지원을 끊을 것이란 동향은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그렇다면 성남은 구단 차원에서 통일교 지원 이후 자립을 위한 변혁을 꾀했어야 한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 속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전용구장과 클럽하우스, 시의 도움이 있었다면 관중 동원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더불어 구단 수뇌부의 경직된 태도는 내부로부터의 변화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급작스런 상황 변화와 맞물려 성남은 순식간에 물 밖에 나온 물고기 신세가 됐다. 그런데도 연맹이나 협회는 숫제 물고기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고 건져놓고 생명을 구했다는 식이다.
더 큰 문제는 성남 사태가 더 큰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프로축구단들은 지원 감소와 해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전남과 포항 두 팀을 지원하고 있는 포스코는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계속해서 지원 축소를 요구받고 있으며, 팀 간 흡수?합병이 일어날 가능성도 다분하다. 작년에는 국민은행 해체 후 안양으로의 흡수가 있었고, 올해는 성남 사태가 있는데, 당장 내년이라고 이러한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꼭 포스코 관련 구단이 아니더라도 강원이나 대전 같은 하위권 시민구단들은 늘 해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프로축구단의 구조적 변화는 자립 가능한 구단의 탄생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변화다. 지금까지처럼 정치권의 입김이나 모기업의 사정으로 하루아침에 팀이 사라지거나 연고 이전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을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팀이 명멸하며 기록 속으로 사라질 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팬이라는 사실이다. 심장을 내주며 사랑했던 이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때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도 없고, 그 상처가 치유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런데 축구라는 제국은 관중석 한 자리를 채우는 팬의 실재에서 자라난다. 이제는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곳에 가서 글을 찾고, 글 쓰는 곳에 가서 공을 찾는 청개구리.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아 이것도 저것도 놓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부유하고 있다. 어떡하나 싶다가도 축구만 있다면 그저 가서 넋 놓고 보는 축빠다. 축구라면 조기축구나 챔피언스리그나 다 재미나게 보는 잡식성.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저/<김태희> 역16,6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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