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예매하면서, 신민규의 ‘풋’볼
수많은 벤치워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저 공 하나만 덜렁 던져줬을 뿐입니다. 하지만 양 팀의 스물두 명은 물론이고 사각의 잔디 위를 둘러싼 수만 명의 사람, 더 나아가 화면을 마주한 수억 명의 사람들이 환호하거나 울부짖습니다. 때론 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또 멈추게도 합니다. 이런 희극이자 비극이 또 있을까요? 원시성이 살아있는 제도화의 정수, 축구 이야기입니다.
풋풋함.
사실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하지요. 초등학교 때는 책 읽는 것이 제일 재밌어서 친구들이 불러도 나가는 둥 마는 둥 하던 제가 본격적으로 축구에 눈을 돌리고 발을 들이며 코를 꿰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그물을 찢을 것 같았던 시원한 중거리 슛 한 방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기적같이 우승을 일궈낸 붉은 유니폼의 팀에 정신을 뺏겼습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밤이면 밤마다 TV 앞에 앉아 아버지와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워낙 멋진 축구만 보다 보니 이유 모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나도 팔 두 개 다리 두 개 머리 한 개 있으니 TV 속 선수들이 하는 것 마냥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글쎄요. 제 발은 세모난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찼는데 옆으로 날아가기 일쑤고, 공은 제가 오기만 하면 자석의 같은 극처럼 멀리멀리 떨어지려고만 합니다. 결국, 제 별명은 퍼거슨이었습니다. 아는 것만 있고 축구 실력은 노인과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땐 학교 스탠드가 벤치였는데 참 따뜻했더랍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넘어 이번엔 직접 경기장에 가는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정말로 제 팀이 생겼죠. 그런데 프로 선수들 뛰는데 어디 끼어들 수 있나요. 관중석도 의자니까 이것도 벤치구나 싶었는데 거기도 앉아있으니 따뜻해지는 것이 익숙했습니다. 물론 대학교에 와서도 공을 좀 차보려고 했는데 축구 실력은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니라 또 벤치행. 이래저래 늘 저에게 축구는 참 풋풋함이었습니다. 풋풋하다는 게 풋내와 같이 싱그럽다는 뜻이고, 싱그러운 것은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있거나 그런 분위기를 뜻하는 것이니 잔디에 익숙할 틈도 없이 벤치를 전전했던 저에겐 축구는 풋풋했더랍니다.
헌데 어느 날, 축구라는 게 누구한테나 풋풋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스페인부터 부탄까지 UN보다 많은 FIFA 회원국이 있는데, 각자 그들만의 축구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축구라는 스포츠가 열한 명이 뛰고, 그중 골키퍼가 한 명 있다는 것 정도만 같지 동네 축구에서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까지 제각각의 축구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스쿠터에서 벤츠까지 정말 다양했죠. 더군다나 그 많은 축구들이 매시간, 매일, 매주 새로운 결과와 반향을 이끌어내니까 이쪽 축구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다른 쪽 축구에서는 생소한 것을 찾아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축구는 참 ‘풋’볼인 것 같습니다.
이 지면에서 저는 이 풋풋한 볼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언제나 예상보다 부정확한 신체인 발을 통해 공을 주고받기에 축구는 가장 불확실성이 높은 스포츠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갓 따서 싱그럽고 흥미로운, 예상 밖으로 때론 설익기도 하고, 추억이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새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입 크게 베어물어주신다면 감사, 또 감사하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곳에 가서 글을 찾고, 글 쓰는 곳에 가서 공을 찾는 청개구리.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아 이것도 저것도 놓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부유하고 있다. 어떡하나 싶다가도 축구만 있다면 그저 가서 넋 놓고 보는 축빠다. 축구라면 조기축구나 챔피언스리그나 다 재미나게 보는 잡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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