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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guin loves Mev, ‘한국 남자’ 너머의 이상세계
한국 남자들은 더 많이 쌓아야 해서 힘겹다
한국 남자들은 더 많이 쌓아야 해서 힘겹다. 더더 쌓지 않으면 좋은 여자 만나지도 못하고 집도 못 사고 아이도 못 키운다. 한국 여자들은 더 많이 챙겨야 해서 피곤하다. 더더 챙기지 않으면 좋은 남자 만나지도 못하고, 이하 동문이다. 한국 사람인 이상 쌓아야 할 것 같고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리기는 영 어려운 걸까?
네이버 웹툰, 펭귄 러브즈 메브
“한국 남자 말고 외국인이랑 만나보고 싶어.”라는 말을 해본 대한민국 여자 사람은 통계상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현재 외국인이랑 만나는 대한민국 여자 사람 역시 적은 숫자는 아닐 텐데, 길거리나 카페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커플을 종종 마주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어딘가 다를 것 같은 외국인과의 연애, 그 로망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웹툰이 바로 ‘Penguin loves Mev’ 다.
‘Penguin loves Mev’는 생활웹툰이다. 웹툰작가인 펭귄이 영국 남자 메브를 만나 사랑하고 또 결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300회 가량의 에피소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연재된 것은 4년 정도, 시즌 3를 맞고 있는 현재 펭귄과 메브는 영국에 살고 있다. 펭귄은 웹툰을 한국에 전송 중이며, 메브는 태권도와 물리를 가르친다. “달달해요”, “부러워요”, ”이런 남자 어디 없나요?” 같은 댓글들이 많은데, 파란 눈의 메브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숨은 댓글들이 한숨을 쉰다. “한국엔 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울적해지는 여자, 전에 비해 남자가 사랑한단 말을 자주 안 한다고 시무룩해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요리조리 사랑한단 말을 12번이나 하고 가는 남자.(146화, ‘아내를 위해’) 종종 덤벙대는 여자, 그날도 테이블에 발가락을 부딪쳐서 아파하고 있는데, 남자가 나서서 테이블을 혼내준다. “이 나쁜 테이블! 울 와이프를 아프게 하다니!”(171화, ‘혼내주세요’) 남자, 인터넷에서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게시물을 발견하고는 60번 항목 ‘달콤한 말을 귀에 속삭여 보세요’ 를 실천한다. “Can I get a kiss from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덧붙여 “Chocolate cake”도. (265화,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신혼이라 그럴 수도 있다. 남자의 성격이 특별히 괜찮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작가가 좋은 이야기 위주로 골라냈을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몇몇 요인을 제거하더라도 한 가지가 남는다. 바로 파란 눈이라는 상징. “외국 남자는 좀 다르대.”라는 유언비어는 한국 여자들에게 의외로 설득력이 강하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여자들은 꼭 확인하려고 들더라. 괜찮아?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칠칠치 못하긴. ‘여자친구로 만드는 법’은 넘쳐나도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은 드문 상황. 20, 30년 살아온 여자들의 직간접적인 학습결과인지도, 별점 10점 행진의 의미는.
‘Penguin loves Mev’에서 유독 돋보이는 에피소드는 ‘행복을 찾아서’ 편(288화, 289화)이다. 메브는 정교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에게 수업도 하고 교사교육도 받는 1년 기한의 GTP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겹다. 시간투자도 많이 했고 안정적인 직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두기도 아깝고, 생각과 다른 환경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하기도 어렵다. 둘은 고심 끝에 GTP과정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금 행복한가?”
그것도 못 버텨? 한 게 아깝잖아. 나중에 애들 교육비도 생각해야지. 이리 말할 법도 한데, 여느 한국 여자는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을 좇아 대학 시절 학교를 그만두었던 펭귄은 지금 느끼는 행복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메브가 한국의 기간제 교사와 비슷한 대리교사로 일하면서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로 한 것을 적극 지지해 준다. 메브는 이제 영국에서 언젠가 태권도장을 차리고 싶다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 펭귄과 메브는 행복하다.
한국 남자들은 더 많이 쌓아야 해서 힘겹다. 더더 쌓지 않으면 좋은 여자 만나지도 못하고 집도 못 사고 아이도 못 키운다. 한국 여자들은 더 많이 챙겨야 해서 피곤하다. 더더 챙기지 않으면 좋은 남자 만나지도 못하고, 이하 동문이다. 한국 사람인 이상 쌓아야 할 것 같고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리기는 영 어려운 걸까? 우스우면서도 슬픈 부분은 쌓고 챙기는 와중에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점점 틀어진다는 것. 펭귄과 메브 같은 달달하고 부럽고 어디에 없는 것 같은 사랑은 다 쌓고 다 갖추고 난 다음에 해야만 하나? 비겁하게시리 사회가 시켰다고는 하지 말자.
사랑을 찾는 법이 흉흉하지 않기를. 영어회화 학원 원어민 남자강사한테 다섯 번쯤 고백해서 일대일 회화연습 자유이용권을 얻어내는 것과 같은.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환상의 나래 또한 저 먼 창공으로 펴지 않기를. 이상세계는 한국 남자 너머의 얼굴 없는 ‘외국 남자’가 뚝딱 만들어다가 장미꽃 1000송이 꽃다발로 품에 안겨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 레논을 틀어놓고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한테서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300화 특집편 ‘펭귄은 이상해’처럼.
맘 속에 흘러들어온 이야기들을 섞어 잘 버무려서 쌉싸름한 단편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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