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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의 지루함을 단숨에 날려버리다 - 하이든,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

소나타 형식의 완성자 하이든의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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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청중의 지루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을 2악장에 슬며시 넣어둡니다. 느린 악장의 약박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 강력한 포르테시모의 음향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그래서 이 교향곡은 초연 직후에 ‘놀람’이라는 별칭을 얻습니다.

‘소나타’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고전주의 음악을 감상할 때(물론 낭만주의 음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모델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저도 이 차를 한 7~8년쯤 운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음악적 개념으로서의 ‘소나타’는 무엇인지를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사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소나타’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소나타 개념에 대해서는 자주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악곡을 설명하면서 ‘도입부’라든가 ‘1주제’, ‘2주제’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했던 것이 기억나시지요? 그런 것들이 바로 ‘소나타’라는 음악적 형식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오늘 얘기하는 것은 ‘소나타 형식’(Sonata Form)입니다. 그러니까 장르로서의 소나타, 예컨대 ‘피아노 소나타’라든가 ‘바이올린 소나타’ 등에서 사용하는 ‘소나타’라는 용어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그에 관련해서는 나중에 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음악적 형식으로서의 소나타는 18세기 중반 무렵, 그러니까 하이든 시대부터 기악곡 작곡의 원칙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이 소나타 양식을 처음 사용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과연 정확한 음악사적 고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이든이 ‘소나타 형식을 완성’해 기악곡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바로 그 소나타 형식을 더욱 세련되게 양식화하면서, 거기에 자신들의 독창성을 가미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소나타 형식’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넓은 의미의 소나타 형식’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악곡 전체의 틀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1악장은 긴장감 넘치는 빠른 악장, 2악장은 그 긴장을 이완시키는 느린 악장, 3악장은 춤곡인 미뉴에트이거나 해학적인 스케르초, 마지막 4악장은 다시 1악장의 템포와 조성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뜻합니다. 도식화시켜 보자면 ‘빠르게-느리게-미뉴에트(스케르초)-다시 빠르게’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하면 한 악장의 전개 방식을 뜻하는 의미로 훨씬 많이 사용됩니다. 오늘 거론하고 있는 소나타 형식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악장의 전개 방식으로서의 소나타는 과연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두 개의 대조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음악을 구축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나타 형식의 핵심입니다. 고전주의 시대에 등장한 이 형식은 낭만주의 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뿐 아니라, 20세기 중반의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같은 작곡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말하자면 적어도 200년간 영향력을 행사해온 막강한 ‘작곡 매뉴얼’입니다. 그러니 음악을 듣는 우리 감상자들의 입장에서도 소나타 형식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향곡이나 협주곡, 독주 소나타, 실내악의 1악장은 거의 예외없이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됐다고 보셔도 됩니다. 적어도 1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이 하나의 상식으로 통용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잠깐 배웠던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소나타 형식은 바로 이 세 개의 부분으로 이뤄집니다. 머리가 좀 아프신가요? 하지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제시부’는 말 그대로 주제(테마)를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제시부 직전에 간혹 도입부가 놓이는 경우도 있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요. 중요한 것은 제시부가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작곡가는 제시부에서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주제를 소개합니다. 첫 주제는 힘차고 활달한 반면에, 두번째 주제는 내향적이고 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개 이 원칙을 따릅니다. 바로 그 두 개의 주제를 머릿속에 잘 넣어두는 것이 음악을 제대로 듣는 관건입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의 악곡 설명에서 ‘주제’를 그토록 강조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악 감상뿐 아니라 글을 읽을 때도 그렇습니다. 첫 문장과 첫 단락이 언제나 중요합니다. 첫 문장이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서 글 전체의 구조와 뉘앙스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주제가 끝나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짧막한 ‘경과구’입니다. 첫 주제와 두번째 주제를 잇는 일종의 ‘다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멋들어진 조바꿈이 일어나면서 대조적인 분위기의 두번째 주제로 연결됩니다.

발전부는 제시부의 악상을 발전시키는 부분입니다. 소나타 형식의 ‘3부분 구조’에서 가장 자유로운 부분입니다. 제시부에 등장했던 두 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때로는 두 주제 모두가 변형되면서 전개됩니다. 빈번한 조바꿈이 일어나고 때로는 주제 자체가 애초의 형태와 많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향을 떠나 자유로운 방랑과 모험을 펼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되찾기 어려운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옵니다. 발전부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다시 원래의 형태로 복귀하려는 짧막한 경과구를 거쳐 재현부로 들어섭니다. 재현부는 말 그대로 제시부의 재현입니다. 한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첫 주제와 대립적 조성을 취했던 두번째 주제가 첫 주제와 같은 조로 조바꿈돼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경과구에서 슬그머니 조바꿈이 일어나면서 두번째 주제가 첫번째 주제와 같은 조성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제시부에서 나타났던 두 주제 사이의 ‘상반성’이 해소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어서 종결을 뜻하는 ‘코다’(Coda). 이 부분은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아, 드디어 악장이 끝나는구나, 라는 느낌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편의상 도식화해 보겠습니다. 도입부(때때로 있음)-제시부(1주제-경과구-2주제)-발전부(주제의 갖가지 변형-경과구)-재현부(1주제-경과구-2주제)-코다. 이것이 소나타의 기본 구조입니다. 하지만 너무 달달 외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공연히 스트레스 받습니다. 그냥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자주, 반복해 듣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소나타 구조를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이든(Joseph Haydn) [출처: 위키피디아]

앞서도 얘기했듯이 하이든은 소나타 형식의 완성자로 거론되는 작곡가입니다. 특히 그는 교향곡과 현악4중주에서 이 형식의 전형을 선보였지요. 오늘은 하이든이 1791년 작곡한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을 듣겠습니다. 100곡이 넘는 하이든의 교향곡 중에서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통하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하이든은 1791년 영국 런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교향곡 작곡가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합니다. 중간에 다시 빈으로 돌아와 체류하기도 했지만, 그는 모두 두 차례 영국을 방문해 약 3년간 현지에서 활약했지요. 이 무렵 발표했던 12곡(93번부터 104번까지)의 교향곡을 ‘런던 교향곡’, 또는 하이든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흥행업자 잘로몬의 이름을 따서 ‘잘로몬 교향곡’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그중에는 교향곡 99번처럼 빈에서 작곡된 곡도 포함돼 있습니다만, 어쨌든 당시의 하이든은 런던의 콘서트홀에 모여든 청중을 의식한 듯 대담한 화성과 강력한 리듬의 교향곡들을 속속 써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런던의 콘서트홀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꽤 있었겠지만, 청중의 대다수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부르주아들이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하이든은 그들의 귀를 즉각적으로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음악을 들려줘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런던 부르주아 청중의 음악적 취향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교향곡 94번은 특히 그렇습니다. 하이든은 청중의 지루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을 2악장에 슬며시 넣어둡니다. 느린 악장의 약박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 강력한 포르테시모의 음향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그래서 이 교향곡은 초연 직후에 ‘놀람’이라는 별칭을 얻습니다.


1악장은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자주 그렇듯이 느린 서주로 시작합니다. 목관이 먼저, 이어서 현악기들이 느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주의 느린 템포와 달리 1악장의 전반적 분위기는 활달합니다.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첫번째 주제가 길고 힘차게, 이어서 두번째 주제가 짧게 등장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활달한 고양감으로 충만하고, 두번째 주제는 약박에 오히려 강세를 주면서 음이 튀어 오르는 듯한 미묘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2악장은 ‘놀람’에서도 아주 재미있는 악장이지요. 주제와 4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2분의 2박자의 주제 선율. 아주 귀에 익숙한 악상이 약간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펼쳐집니다. 강약강약의 악센트로 진행되면서 소리가 점점 약해지다가 갑자기 약박에서 ‘쾅!’ 하며 음량이 폭발하듯 커집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 부분이 바로 ‘놀람’의 기원이지요. 하이든은 이처럼 약박에서 오히려 악센트를 주는, 그래서 당김음의 효과를 내는 기법을 교향곡 94번에서 종종 사용합니다.

3악장은 미뉴에트 악장답게 춤곡의 느낌이 완연하지요. 원래 미뉴에트는 프랑스 궁정의 춤(혹은 춤곡)입니다. 아주 우아한 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하이든은 이것을 평민의 춤으로 바꿔놓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템포를 ‘알레그로 몰토’(대단히 빠르게)로 설정해 훨씬 활달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역시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입니다. 당시의 하이든은 궁정의 귀족이 아니라, 런던 콘서트홀의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악장의 경쾌한 율동감은 4악장으로 이어집니다. 악장이 시작되자마자 춤곡풍의 첫 주제가 흘러나오고, 곧 이어 바이올린이 짧은 음형들을 연주하면서 호른이 가세합니다. 이어지는 두번째 주제는 좀더 여유롭고 부드러운 느낌의 춤이지요. 하지만 곧바로 포르테로 음량이 커집니다. 종결부(코다)에서는 2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팀파니의 활약이 두드러지지요. ‘자, 이제 곡이 끝납니다’라는 느낌을 팀파니가 아주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마지막 방점을 찍습니다.

p.s. 피에르 몽퇴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해 녹음한 음반(Decca)은 현재 품절 상태인 모양입니다. 이 음반이 눈에 띄면 망설이지 않고 구입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든의 교향곡 94번 ‘놀람’을 거론할 때 전통적인 명반으로 손꼽히는 음반입니다. 물론 조지 셸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Sony), 안탈 도라티가 필하모니아 훙가리카를 지휘한 음반(Decca)도 나이 지긋한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명연들입니다. 이 두 녹음에 비하자면 피에르 몽퇴와 빈필하모닉의 연주는 한결 고급스럽고 화려합니다. 특히 몽퇴의 박진감 넘치는 드라이브, 그러다가 시치미 뚝 떼는 특유의 능청스러움도 즐겁습니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ㆍ고음악 아카데미(Academy of Ancient Music)/1984년/L’Oiseau-Lyre

국내에서는 그다지 팔리지 않는 음반이다. 하지만 원전악기를 사용한 소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놀람’으로는 1순위로 추천할 만하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템포는 다소 빠르다. 하이든을 고전의 지평에서 바라보는 감상자들, 하이든의 음악이 낭만으로 채색되는 것이 못 마땅한 감상자라면 단연 이 음반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현대악기 연주에서는 좀체 맛볼 수 없는 악기와 악기 사이의 공간감마저 느낄 수 있는 연주다. 음악의 진행은 전체적으로 견고하고, 지휘자와 악단의 일심동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원전악기를 사용한 또 하나의 좋은 연주로 프란츠 브뤼헨과 18세기 오케스트라의 연주(Phillips)도 자주 거론되지만, 호그우드 쪽에 좀더 호평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ㆍ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우/1990년/WarnerClassics

원전연주(당대연주)로 일가를 이룬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84)가 로열 콘세르트헤보우의 지휘봉을 들었다. 당연히 현대악기 연주다. 아르농쿠르의 당대적 해석에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가 현대악기로 호응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하이브리드적 연주’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악단의 음색은 그 어느 오케스트라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빼어나다. 특히 금관 파트가 출중하다. 원전악기로는 연출하기 어려운 적절한 스케일감도 좋다. 2악장에서 터져 나오는 팀파니의 타격,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펼쳐지는 팀파니의 종결어미는 실제보다 다소 강조된 해석처럼 들린다. 이 부분에는 다소의 이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덕분에 ‘놀람’의 의미가 한층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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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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