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기 <서정>
롤러코스터 같은 일렉트로닉 사운드 홍수 속에서 ‘오래된 음악’ 포크는 저편 어딘가에서 조용한 사운드를 갈망하는 일각의 사람들을 위해 소생의 군불을 땐다. 그러한 노력의 선봉은 이제 ‘포크의 파수꾼’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는 베테랑 박학기다.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 3>에 수록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김현철 곡)가 발표한 해가 1988년이니까 올해로 정확히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8년 두 딸 정연, 승연과 함께 한 「비타민」을 계기로 기력을 회복한 그는 방금 내놓은 새 미니앨범
<서정>에서 다시금 포크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진취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핵심은 ‘고집하면서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 피크 없이 손가락으로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멜로디, 화음, 리듬을 몽땅 표현하는 이른바 핑거스타일주법의 곡 「Yellow fish」는 어쿠스틱음악에의 헌신인 동시에 기성 연주로부터의 탈피라는 역설적 두 지향을 성공적으로 교배했다.
오랜 역사에 의해 쌓인 정통성의 고수는 누구나 품는 이상이겠지만 거기에 변화를 주라는 현실의 주문을 수용했다고 할까. 2002년에 나온 구(舊)곡이라는 점만 빼면 타이틀곡으로도 손색이 없다. 드라마 <프라하의 봄>에 소개된 「그대 미소」도 다를 바 없다. 두 신곡 「아직 내 가슴속엔 니가 살아」와 「온종일 비가 내려」는 박학기의 승부수인 멜로디와 그것을 전달하는 미성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듣기 좋은 포크 발라드다.
나이 50줄이 됐어도 과거 「향기로운 추억」, 「이미 그댄」, 「자꾸 서성이게 돼」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 때의 보이스에 비교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경이롭다. 그것은 심적이든 체력이든 관리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포크 노장으로 그가 누리는 ‘신뢰’가 여기서 비롯하는 것 아닐까.
다만 「아직 내 가슴속엔 니가 살아」는 앨범 전체 기조라는 측면에서 스트링 편곡 아닌 어쿠스틱 기타 중심으로 단출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있다. 고교1년생이라는 딸 승연의 보컬을 내건 리메이크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는 원곡과 또 다른 터치의 훌륭한 보너스 트랙이다. 역시 노래는 무기교 무가공이라야 공감을 산다. 어쿠스틱 기타음악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는 동시에 살짝 새로움으로 향하는 베테랑의 노고가 읽히는 앨범이다. 그 접점을 어느 정도 찾았다는 점에서 이 미니 신보가 거둔 성과는 결코 미니 수준이 아니다.
글/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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