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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들>, 세밀한 아날로그의 추격자들

흔적조차 없는 놈의 모든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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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하반기 <월드워 Z>와 맞서는 한국영화 <감시자들>은 경찰과 범죄 조직의 보스가 맞서는, 오롯하게 스릴러 장르만 남은 영화다. 정우성, 설경구, 한효주라는 최고의 배우들이야 당연히 제 몫을 해내지만, 그 외에 <감시자들>이 자신 있게 내세운 키워드는 무엇일까?


<세븐 데이즈>


<몽타주>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서막을 알린 작품으로 2007년의 <세븐 데이즈>를 꼽을 수 있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이자 스릴러 장르는 모험이었다.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븐 데이즈>가 내세운 카드는 두 가지였다. 당시 미드 <로스트>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김윤진을 내세운 ‘모성’이라는 감성적 키워드와 공권력과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두뇌’와 ‘몸’을 이용해 맞서 싸워야 하는 맨 몸 아날로그 액션이 그것이다. 2013년 상반기 <아이언맨>과 맞서 흥행에 성공한 <몽타주> 역시 공소시효가 끝난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사투를 그린다. 되풀이되는 유괴사건을 통해 추적하는 범인과 시간의 순서를 교묘하게 뒤틀어 만들어낸 깜짝 놀랄만한 반전에 ‘공소시효’라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담아낸다. 음성분석기와 CCTV라는 장비를 사용하긴 하지만 범인을 쫓아가는 과정은 한 마디로 ‘손발이 고생하는’ 상황이다. 공권력과 특수 장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하듯 영화 속 엄마는 늘 맨 몸이다. 2013년 하반기 <월드워 Z>와 맞서는 한국영화 <감시자들>은 모성이라는 감성적 키워드를 빼고 경찰과 범죄 조직의 보스가 맞서는, 오롯하게 스릴러 장르만 남은 영화다. 정우성, 설경구, 한효주라는 최고의 배우들이야 당연히 제 몫을 해내지만, 그 외에 <감시자들>이 자신 있게 내세운 키워드는 무엇일까?


<감시자들> 속 경찰은 용의자의 집 근처에 차를 주차해 놓고 우유와 빵을 우적우적 먹으며 며칠 밤을 새우는 그런 경찰이 아니다. 여기에는 피 튀기는 총격전도, 뒤늦게 사이렌 울려가면서 도착하는 경찰의 미개해 보이는 뒷북도, 도심을 가르는 총격전도 없다. 선입견처럼 박힌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감시자들>에서 매끄럽게 쇄신되는 셈이다. ‘감시’라는 소재를 사용하는 만큼 영화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통제하고 꿰뚫어보는 서사 속에 관객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감시 기술을 담아낸다. 정보와 단서를 토대로 범죄에 대한 감시만을 담당하는 감시반을 다루면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와 탐색, 감청, 수색 등의 기술력을 보고 있자면 마치 관객들도 감시의 대상이 되는 듯 서늘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가지만 나의 24시간은 언제 어디서든 CCTV에 기록된다. 그리고 거기에 찍힌 인물의 얼굴과 체형으로 범죄자를 수색해낸다. 그리고 영화에는 감시반이라는 낯선 경찰내 부서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범죄 예상자의 행동반경을 분석하고 잠복, 미행한다. CSI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치밀한 과학 수사 방법과 서로를 감시하면서 쫓고 쫓기는 두뇌싸움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두 그룹을 이끄는 감시반장 황반장(설경구 분)과 조직의 두목 제임스(정우성 분)를 필두로 체스 놀이를 하는 듯한 대립 구조 속에 경찰 하윤주(한효주 분)의 성장담도 녹여낸다. 그녀는 수칙을 외우는 기초적 훈련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맞서게 된다. <감시자들>은 성장담과 민간인 사찰이라는 예민한 이슈도 담고 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진지하거나 훈육적이지 않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테헤란로와 이태원, 신당, 삼각지, 청계천 등을 오가는 서울 전역이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 되어 충분한 볼거리를 주는 점도 재미있다. 첨단 장비가 총동원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하는 키워드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임스는 가로 세로 낱말 퍼즐로 암호를 만들어내고, 하윤주는 디지털의 기록이 아닌 자신의 기억력으로 사건의 열쇠를 움켜쥔다. 감청과 도청, 미행에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대신 2G폰을 사용하는 영화 <몽타주>처럼 <감시자들>의 두 우두머리는 스마트 세상과 멀어진 2G 폰을 사용한다. 앞선 한국형 스릴러 영화가 ‘모성’이라는 공감 가능한 키워드를 내세웠다면 <감시자들>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못지않은 맨 몸 추격전과 아날로그 감성에 여자 경찰의 성장담이라는 감성적 이야기 축을 더해낸다.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이야기를 완급 조절을 통해 꽤 잘 짜인 스릴러로 조율해낸 조의석 감독은 1999년 단편 <환타 트로피컬>로 주목받은 후 2002년 26살의 나이로 <일단 뛰어>라는 작품으로 장편 데뷔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권상우, 송승헌이 주인공을 맡았던 이 영화는 젊은 감독의 재기가 넘치는 작품이었지만, 호불호가 크게 갈리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06년 두 번째로 연출했던 <조용한 세상>은 김상경, 박용우가 주연을 맡았던 진중하고 조용한 스릴러영화였다. 김병서 감독과 공동연출을 하긴 했지만, 데뷔 후 11년 만에 만든 세 번째 작품 <감시자들>을 통해 조의석 감독은 탁월한 연출의 재능을 보인다. 너무 일찍 데뷔한 덕분에 그의 나이는 아직 38세. 젊은 감독의 새로운 발견이 반갑고 기대된다.



배우들의 면면도 영화의 긴장감을 살리는데 기여한다. 연기돌이 된 2PM의 준호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제 몫을 하고, 최근 각광받는 진경 역시 딱딱할 수도 있는 극에 코믹한 요소를 가미해 탄력을 준다. 이미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배우 설경구는 여전히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반창꼬>에서 열연을 펼쳤지만, 다소 덜 주목받았던 한효주의 연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설경구, 정우성이라는 투 탑 사이 여배우라면 대부분 묻히기 마련인데, 한효주는 <감시자들>의 틀 안에 성장담을 녹여내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데뷔 후 첫 악역에 도전한 정우성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철저한 악인으로 변모했다. 극의 분량으로만 따지자면 설경구, 한효주 보다는 작지만 존재감으로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근래에 본 가장 인상적인 악역의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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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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