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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 동네 8월은 거봉이 익어가는 계절 - 거제 거봉

그 지긋지긋했던 여름마저 고맙게 느껴졌던 포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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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우선 바구니에 있는 커다란 거봉을 하나씩 입에 넣었다. 일 년 만에 만난 것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넝쿨에서 따온 것이니 맛에 대한 기대 역시 그만큼 컸다. 그리고 우리는 곧 동시에 “으음~” 하는 감탄사를, 입도 열지 않고 코로 내뱉었다. 워낙에 알이 굵어 겨우 한 알임에도 입을 가득 채우는 포만감, 그보다 더 흐뭇하게 만드는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는 과육을 삼켰을 때 코끝에 맴도는 신선한 향기까지 무엇 하나 기대에 미치지 않는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포도를 좋아한다. 물론 봄소식을 알리는 딸기도 좋아하고 초여름 달콤한 참외와 손가락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껍질을 벗겨먹는 귤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포도를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에 순서를 만드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 얘기하곤 하는 아내지만, 포도를 가장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지난 여름, 거제에 포도밭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주 드물게, 나보다 먼저 나갈 채비를 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모습은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섬에서 만난 포도밭


거제에서 포도를 많이 재배하는 곳은 둔덕. 시인 유치환의 생가가 있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하지만, 시장에서 만나기가 힘들다. 농원이 몇 곳 몰려 있긴 하지만 대규모 출하를 할 만큼 그 생산량이 많은 것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몇 대의 자동차가 서 있는 걸로 봐서는 직접 판매하는 비중이 더 높지 않나 싶었다.

“내다 파는 건 별로 없어요. 와서 사가니까 출하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여기 포도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맛뵈기로 내놓을 포도를 씻던 아주머니에게 “옆 동네 통영에서는 거제 포도를 본 적이 없다”고 묻자 “거제에서도 거제 포도 보기는 쉽지 않다”며 싱긋 웃었다.

아내와 나는 우선 바구니에 있는 커다란 거봉을 하나씩 입에 넣었다. 일 년 만에 만난 것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넝쿨에서 따온 것이니 맛에 대한 기대 역시 그만큼 컸다. 그리고 우리는 곧 동시에 “으음~” 하는 감탄사를, 입도 열지 않고 코로 내뱉었다. 워낙에 알이 굵어 겨우 한 알임에도 입을 가득 채우는 포만감, 그보다 더 흐뭇하게 만드는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는 과육을 삼켰을 때 코끝에 맴도는 신선한 향기까지 무엇 하나 기대에 미치지 않는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인심 좋은 농장 아주머니가 “얼마나 사가려고 그렇게 먹나?”고 물을 때까지 쉼 없이 거봉을 먹었다. 물론 포도밭에 들어가 어떤 모습으로 포도가 자라고 있는지 구경한 후에 한 박스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게 포도를 구입한 후 도착한 곳은 통영과 거제를 통틀어 유일한 백화점. 쇼핑을 하기 위해 찾은 것은 아니었다. 거봉이 나왔으니 이제 포도 주스가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판매하는 주스도 아니었다. 애초에 식품매장이라 불릴 공간도 없는 곳이긴 하지만.

오층인가 육층에 위치한 영화관 앞에는, 대개의 영화관들이 그러하듯, 이러저러한 주전부리를 파는 곳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곳에서는 아마 전국 어느 곳보다 신선할 게 틀림없는 주스를 사먹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해마지 않는 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등장하는 딸기, 복숭아, 포도를 주문과 함께 믹서에 갈아주는데, 여느 호텔 카페에서 내놓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통영에서도 상영하고 있는 영화를 일부러 거제까지 가서 보곤 했다.


마침내 우리 손에 들어온 포도 주스는 컵의 마개까지 빼곡하게 차올라 있었는데, 단맛을 더하기 위한 약간의 시럽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았기에 말 그대로의 진한 포도색이었다. 맛의 신선함은 가히 조금 전의 거봉과 비견할 만 했고 촘촘한 거름망을 빠져나온, 다시 말해 충분히 먹을 만 한 포도씨의 식감은 마치 갓 포장을 뜯어낸 씨리얼처럼 바삭거렸다. 게다가 캠벨 포도 특유의 새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니 그 지긋지긋했던 여름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그 뜨거웠던, 그리고 끈적거리던 햇살이 없었다면 그 검푸른 포도 역시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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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정환정 글,사진 | 남해의봄날
한 손으로는 들 수 없는 1미터에 가까운 대구, 정감 있는 이름만큼이나 깊은 육수 맛을 내는 띠뽀리, 겨울 추위를 부드럽게 녹이는 푸딩 같은 식감의 생선 물메기, 따뜻한 남쪽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달콤한 여름 과일 비파.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고도 넓은 남해안의 맛의 세계와 그 매력에 풍덩 빠진 서울 부부의 좌충우돌 통영 정착기를 생생한 입담으로 만날 수 있다. 발로 뛰어 찾아낸 남해안 맛 지도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이다.

 



오늘은 이렇게 먹어볼까?

시가 있는 효재밥상
미녀들의 식탁
나를 위한 제철밥상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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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환정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 그리고 절반만 이룬 ‘세계일주’가 오랜 꿈인 프리랜서 여행 작가. 대학에 합격하면 배낭여행을 보내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덕분에 스무 살 여름이 되던 해 여행의 맛에 눈뜨게 됐다. 그 후 잡지사, 여행사, 기업 홍보 에이전시 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북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몇 달 만에 탕진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살려 여행서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를 쓰고,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중남미 여행을 꿈꾸며 프리랜서 작가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맛보는 일을 하던 중 한 여인을 만나 계획을 수정해 우선 서울 탈출을 모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년 후 아내가 된 그 여인과 함께 한반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통영에서 날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행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먼 길도 마다 않는 서울 토박이 부부. 낯선 남해 바닷가 도시 통영에 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 정 깊은 사람들, 그리고 신선한 맛에 조금씩 눈뜨고 있다. 서울 살 때는 미처 몰랐던 남해안의 펄떡이는 맛과 멋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게스트하우스 ‘뽈락하우스’를... 열고, 운영하며 그것들을 여행객들과 나누기 위해 고심 중이다.
www.bbollak.com
blog.naver.com/j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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